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3)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3)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5.05.0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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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익선의 단호한 명령이었다. 이동호는 걱정이 앞섰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4월 10일 총회가 개최된다. 그전에 동의서 75%가 걷혀야 총회가 적법하게 열리는 것이다.


용산사태 직후인 2009년 2월 6일 도정법이 개정되면서 창립총회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었다.


제14조(추진위원회의 기능) ③ 추진위원회는 제16조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기 전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 및 절차에 따라 조합설립을 위한 창립총회를 개최하여야 한다. 〈신설 2009.2.6〉


아직 시행령이 개정되지는 않았지만 75% 동의율이 갖추어진 뒤에 창립총회를 개최하라는 개정안이 발표된 상태였다.


“아직 3장이 모자라는데 어쩌죠?”


총회가 2일 앞으로 다가 왔는데도 조합설립동의서 75%가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이동호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민익선이 혼자말 하듯 대답한다.


“어쩌긴 뭘 어째. 그냥 하는 거지?”


“동의율도 충족 안됐는데 총회를 해도 괜찮을까요?”


“창립총회 끝나고 더 걷어서 조합설립인가 신청하면 되잖아. 뭐 문제될 거라도 있나?”


“동의서를 다 걷은 다음 창립총회를 해야한다는 말이 있어서요?”


“지금까지 다 그렇게 해왔어. 창립총회전에 동의서를 다 걷어야 한다는 규정은 아직 없잖아? 설립인가신청 전에만 걷으면 되는 거지. 아무 걱정 말고 그냥 진행해.”


“다음은 제2호안건 조합임원 선출의 건에 대한 표결결과입니다. 먼저 조합장 선출부문입니다. 출석 조합원 총 666명 중 기호1번 김현수 후보 321표, 기호2번 박두수 후보 309표, 기권 및 무효 36표로 기호 1번 김현수 후보가 당선되었음을 의장께 보고 드립니다. 의장께서는 기호 1번 김현수 후보가 당선되었음을 선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강치호 변호사의 멘트에 선거관리위원장이 김현수의 당선을 선포한다.


“안암6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조합장에 김현수 후보가 당선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김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자, 박두수가 회의장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 뒤를 박현길이 뒤쫓는다. 1명이 떨어지는 이사 선출 부문에서 박현길도 낙마한 것이다.


며칠 뒤 성북구청에 조합설립인가신청서가 접수되었다. 민익선의 예상대로 조합창립총회 이후 조합설립동의서를 채우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조합설립동의서 제출을 미루던 사람들 몇 명이 조합창립총회가 원만하게 끝났다는 것을 알고 동의서를 제출해 주었고, 결국 75%에서 3명 더 많은 716명이 조합설립동의서를 제출한 것으로 최종 마감된 것이다.


그런데, 며칠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추진위원회 사무실로 등기우편 하나가 배달되었다.


“아니 이게 뭐래?”


김순례가 놀란 표정으로 등기우편을 김현수에게 건네준다. 김현수가 봉투를 살펴보다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듯하다.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봉투를 뜯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법원에서 자기 앞으로 서류가 날아오니 더럭 겁이 난 것이다.


‘법원에서 도대체 무슨 일로 나에게?’


서울중앙지방법원
 
결 정


사    건   2010카기350 증거보전
신 청 인   박두수
피신청인   안암6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주 문


피신청인은 이 결정을 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별지 목록 기개 문서를 이 법원에 제출하라.


이 유

이 사건 신청은 이유 있으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2010. 4. 15.


판 사 공 정 한


법원에서 제출하라는 서류는 모두 일곱 가지였다.


① 총회 참석 여부가 표시된 출석표(접수처 연명부 내지 조
합원 명부)
② 총회 본인참석 시 ‘참석증’ 일체
③ 총회 대리참석 시 ‘총회참석위임장’ 일체
④ 총회 대리참석 시 그 첨부서류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건강보험증 사본 등)
⑤ 총회 서면결의서 전부
⑥ 총회 개최일 이전까지 우편, 인편 등을 이용하여 회신된 우편봉투 일체
⑦ 총회 현장투표 용지 전부. 끝. 


박두수는 도저히 승복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저 놈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 학벌이 낮기를 해? 재산이 적어? 어느 모로 보나 내가 당선되어야 하는 건데, 이건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질 이유가 없었다.


‘그때 송기호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뭔가 야료가 있는 것이 분명해.’


우선 홍보요원들이 김현수를 찍어야 한다고 조장했을 가능성이 컷다. 사실 조합원들은 조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대부분 생업에 쫓겨 의례 알아서 잘 하려니 생각한다. 서면결의서를 제출할 때도 홍보요원들이 하라는 대로 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 이놈들이 다 짜고 덤빈 것이 분명해.’


다음 날 김득수는 고등학교 동창인 노평래 변호사를 찾았다.


“야, 그런 걸 왜 하려고 그러는데? 조합장 하다가 구속되고 하는 사람들 못 봤어?”


“그거야 돈 받아 먹어서 그런 거고. 돈 안 받고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면 보람도 있고 얼마나 좋은 일이냐.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니까 표 차이는 11표인데 무효표가 36표라 이거지?”


“응.”


“그럼 일단 증거보전신청을 해서 자료들을 받아보고 총회결의무효확인소송이든 효력정지가처분이든 방법을 강구해 보자.”


이렇게 해서 안암6구역의 첫 번째 법적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난생 처음 소송에 연루된 김현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김현수가 부랴부랴 추진위 사무실로 들어서는 이동호 부장에게 대뜸 물었다. 이동호가 소파에 앉아 김현수가 건네주는 결정문을 살펴본다. 잠시 후.


“아무래도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변호사? 그냥 제출하라는 것들 복사해서 제출하면 되는 거 아냐?”


“분명, 소송이 뒤따를 겁니다. 그때 가서는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아예 처음부터 변호사와 상의해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동호는 창립총회를 진행하면서 영 찜찜했었다.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아무래도 재건축재개발 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돈 들어가잖아?”


“돈이 좀 들더라도 확실하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만에 하나 총회에 문제가 있다는 판결이라도 나면 창립총회를 다시 해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더 큰 돈이 들어가잖아요.”


“그렇긴 하지.”


이번 창립총회에도 1억이 넘는 돈이 들었다. OS비용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총회 자체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제가 강치호 변호사에게 연락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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