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6)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6)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
  • 승인 2015.07.0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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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취지에 입각하여 대법원은 관할 행정청이 조합설립인가 요건을 검토할 때 토지등소유자의 조합설립동의가 적정한지 심사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었다.

도시정비법상의 재개발조합 설립에 토지등소유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요구하고 그 동의서를 재개발조합설립인가 신청시 행정청에 제출하도록 하는 취지는 서면에 의하여 토지등소유자의 동의 여부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동의 여부에 관하여 발생할 수 있는 관련자들 사이의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나아가 행정청으로 하여금 재개발조합설립인가 신청시에 제출된 동의서에 의하여서만 동의요건의 충족 여부를 심사하도록 함으로써 동의 여부의 확인에 불필요하게 행정력이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한 데 있다.

따라서 재개발조합설립인가신청을 받은 행정청은 재개발조합설립인가의 요건인 토지등소유자의 동의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동의의 내용에 관하여는 동의서에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26조 제1항 각 호의 법정사항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동의의 진정성에 관하여는 그 동의서에 날인된 인영과 인감증명서의 인영이 동일한 것인지를 기준으로 각 심사하여야 하고, 위 기준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는 동의서에 대하여는 이를 무효로 처리하여야 하고, 임의로 이를 유효한 동의로 처리할 수는 없다.

법리검토를 마친 노평래 변호사는 박두수와 상의하여 서울행정법원에 조합설립인가처분 취소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시공사선정 결의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김현수 조합장이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가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굵은 땀방울이 등골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놈의 날씨는 왜 이리 더운 겨, 인자 6월 초순인디.”

골목길을 따라 우측으로 꺾어 드는데 갑자기 매캐하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햇볕이 들지 않는 하수구에 음식물이 고여 썩고 있었다. 하수구 바로 위 담장으로 조그만 창문이 하나 나있는데, 거미줄처럼 금이 간 창문에는 테이프가 붙어 있다.

“이렇게 냄새나는 하수구 옆에서 어떻게 산담.”

김현수가 바지춤에서 꼬깃꼬깃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하는 소리다.
김현수가 새벽부터 좁은 골목길을 오르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 놈의 빌어먹을 조합설립변경동의서를 받기 위해서이다. 750-19번지에 살고 있는 박씨와 겨우 통화가 된 것은 어제 저녁의 일이었다. 오후 내내 전화를 열 번도 더 걸었는데, 저녁 7시가 넘어서야 겨우 통화가 된 것이다.

“조합장님 지송혀요. 지가 노가다를 나가고 있어서요.”

아침 5시에는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봐야 한단다.

“어이! 박씨 있는가?”

김현수가 녹슨 철문을 두드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금새 대답소리가 들린다.

“조합장님! 오셨써요.”

박씨가 문을 열고나오며 반갑게 맞는다. 철문 안으로 들어가니 1평 남짓한 마당에 2명이 겨우 앉을 만한 걸상이 하나 놓여 있다. 김현수가 반갑다는 듯 걸상에 털썩 않는다.

“뭔 놈의 날씨가 이렇게 덥당가? 아직 새벽인디.” 

“그러게요. 오늘도 겁나게 덥것는디요.”

“그건 그렇고, 인감은 띠어 놨지?”

“지송혀서 어쩐대요. 지가 아침 일찍 일 나갔다가 저녁에나 들어 온 게, 동사무소에 들릴 시간이 없어서라.”

“아 이 사람아, 인감 띠어 노랑게 그걸 여태 안 띠어 놨어?”

“저 참에 한 번 디렸는디, 또 내야 헌가요?”

“아, 글쎄, 거 새마을금고 박 사장이 조합설립인가 취소소송인가 뭔가를 걸어오는 바람에 다시 걷어야 된다잖여. 나가 뭣 헌다고 이놈의 조합장은 맡아가지고 이렇게 생고생인가 모르것고만. 그거 안내면 재개발이고 뭐고 다 물 건너간다고 그러는디. 언제나 되것는가?”

김현수가 머쓱한 표정으로 박씨를 바라본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처지라서요. 비나 와서 일 못 허는 날이나 동사무소에 갈 수 있을 판인디. 다음 주까지는 꼭 준비혀 놓을께요. 죄송혀요.”

4주전 조합사무실로 소장이 날아들었다. 박두수가 제기한 조합설립인가 취소소송과 시공사선정결의 무효확인소송의 소장이었다. 다음 날 김현수는 이동호와 함께 강치호 변호사를 찾았다.

“소송이 들어왔으니 대응은 해야겠지만 이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시공사를 선정한 것이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가 나와 있고, 조합설립인가 취소소송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비대위를 전담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면서 사소한 하자까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죽을똥 살똥 고생 고생해서 겨우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놨는디, 여기서 주저앉으라고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혔는디,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김현수의 간절한 말에 강치호가 도정법 법령집을 펼치더니 설명을 시작한다.

“아직까지 한 번도 시도된 방법은 아니지만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그게 뭐시다요?”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받는 겁니다.”

“조합설립변경인가요?”

이동호가 되묻는다. 

“네. 도정법 제16조 제1항을 보면 조합설립변경인가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16조 (조합의 설립인가 등) ① 주택재개발사업 및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추진위원회가 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때에는 토지등소유자의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관 및 국토해양부령이 정하는 서류를 첨부하여 시장·군수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인가받은 사항을 변경하고자 하는 때에도 또한 같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미한 사항을 변경하고자 하는 때에는 조합원의 동의없이 시장·군수에게 신고하고 변경할 수 있다.  
 
“조합설립인가 취소소송이나 무효소송은 기왕에 받은 조합설립인가에 하자가 있다는 겁니다.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중간에 조합설립인가를 다시 받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하자를 완벽하게 치유해서 조합설립인가를 다시 받는다는 겁니다.”

강치호 변호사의 느닷없는 질문에 이동호가 조문을 다시 읽어본다. 분명 조합설립변경인가라는 매뉴얼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합의 정관이 변경되거나 조합임원, 조합원 수가 변경되었을 때 사용되는 것이다. 제16조 제1항 단서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조합설립 자체를 변경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글쎄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디요.”

“조합설립동의서를 다시 받아 조합설립변경인가를 신청한다는 겁니다. 기왕에 받은 조합설립인가는 취소나 무효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공정력이라고 해서 효력이 있기 때문에 형식은 조합설립변경인가가 되지만, 조합설립인가를 새로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기왕에 받은 조합설립인가에 하자가 있는데,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받는 것이 가능한가요? 걸래는 빨아도 걸레이고,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리갈 마인드(legal mind)가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한 질문이었다. 강치호 변호사는 이동호 부장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한참 설명했고, 이동호도 결국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례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어찌어찌해서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받는다고 해도 법원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게다가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받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조합설립동의서를 걷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무엇보다 구청에서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내줄 지도 의문이었다. 이런 류의 조합설립변경인가에 대해서는 매뉴얼이 없다. 공무원들은 매뉴얼이 없으면 해주지 않는다. 결국 담당자들을 논리적으로 납득시키고 설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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