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홍봉주 변호사>법제처의 한심한 유권해석
<열린광장 홍봉주 변호사>법제처의 한심한 유권해석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1.06.3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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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30 16:52 입력
  
홍봉주
변호사/H&P 법률사무소
 

헌법재판소는 1997년 4월 24일 행정사의 겸직금지를 규정한 행정사법 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선고했다. 겸직금지규정을 둔 그 자체만으로는 위헌적이라 할 수 없으나, 행정사의 모든 겸직을 금지하고 그 위반행위에 대하여 모두 징역형 등으로 형사처벌 하도록 하는 것은 공익의 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정도를 넘어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다시 말해 행정사 업무의 난이도 등 그 성질에 비추어 행정사 업무의 공정성만을 위해 행정사 업무 외의 모든 업무의 수행을 금지하고 그 위반행위에 징역형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얼마전 법제처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정비업체)의 업무를 규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66조제1항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 해석요지는 ‘총회를 위한 서면결의서 징구업무’와 ‘투개표 업무’는 반드시 정비업체 등록을 하여야 행할 수 있는 업무이고 그에 위반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까지도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법제처의 이와 같은 유권해석은 타당한가. 우선 헌법재판소의 위 행정사 겸직금지규정에 대한 위헌결정취지에 비추어 살펴보자. 그 위반행위를 징역형까지 동원하여 처벌하려면 그 위반행위 관련 업무는 정비사업 특유의 전문성과 관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다른 사업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정비사업 업무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비사업 업무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비사업은 〈도정법〉에 의하여 추진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정비사업 업무는 당연히 〈도정법〉에 규정된 업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정법〉 제69조제1항 각호의 업무는 모두 〈도정법〉에 규정된 정비사업의 업무다. 조합설립의 동의나 조합설립인가신청 업무는 〈도정법〉 제16조에 의한 업무이고,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는 가령 〈도정법〉 제20조제3항에 의한 정관변경업무다. 나머지 업무도 모두 〈도정법〉에 의한 업무다.
 
그렇다면 서면결의서 징구업무나 투개표업무는 어떤가. 〈도정법〉 어디에도 이 업무에 관한 규정은 없다. 다만 〈도정법〉은 총회의 의결방법에 관하여 정관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도정법〉 규정은 일반 조직이나 사업과 관련된 〈민법〉이나 〈상법〉 규정과 다를 바 없다.
 
이에 따라 서면결의서 양식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단지 안건의 찬성·반대만을 표시할 수 있는 양식이면 족하다. 조합설립동의서와 같이 신축건물의 설계개요나 총사업비가 기재되어야 한다거나 비용분담사항이 일정부분 구체화될 필요가 없다. 또 서면결의서에는 인감도장을 날인하든 일반도장을 날인하든 서명을 하든 자신의 의사만 표시하면 된다. 조합설립동의서와 같은 인감날인 및 인감증명서 첨부와 같은 제한이 없다.
 
투개표 업무도 마찬가지다. 투개표 업무는 어떤 조직이든 의사결정과정에 수반하는 업무다. 양식도 필요없다. 투표자의 의사만 표시되어 그 의사대로 집계하면 된다. 한마디로 정비사업조합에 특유한 업무가 아니다. 법제처 유권해석에 따르면 어느 조직에서나 의사결정과정에서 제한없이 행해지는 위와 같은 일반업무를 정비사업과 관련하여서는 일정 자본금 등을 갖추어 등록하지 않고 행하면 형사처벌하게 된다. 나아가 상습으로  위반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 실제 인신구속형인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정비사업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서면결의서 징구업무나 투개표업무를 정비업체 등록 후 행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 등으로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것은 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취지로 볼 때 지나친 직업의 자유 침해다.
 
다음으로 죄형법정주의 입장에서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보자. 〈도정법〉 제69조제1항 각호는 벌칙규정인 〈도정법〉 제85조제9호와 연계되어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한다. 범죄구성요건은 유추해석이 금지된다. 그런데 〈도정법〉은 개인적 의사결정인 ‘동의’와 단체적 의사결정인 ‘결의’를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동의’는 의사표시에 반드시 인감날인을 요하고 일정조건하에서 의사표시의 철회가 인감날인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총회를 통해 의사표시를 할 필요는 없다. 반면 ‘결의’는 반드시 총회를 통해 의사가 표시되어야 하고 결의가 된 이상 의사표시의 철회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감날인 방식일 필요는 없다.
 
이와 같은 양자의 차이와 앞에서 본 동의업무(정비사업 특유의 업무)와 결의업무(일반업무)의 성질을 고려하여 〈도정법〉 제69조제1항제1호는 범죄구성요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즉 그 전단의 ‘조합 설립의 동의’가 〈도정법〉 제16조의 동의이고 후단의 ‘정비사업의 동의’가 〈도정법〉 제17조의 동의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결국 법제처의 이번 유권해석은 이와 같은 법률해석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유추해석금지원칙을 근간으로 한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한다. 법제처의 이번 유권해석은 멀쩡한 〈도정법〉 규정을 직업의 자유와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한 위헌규정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행정기관이라 하지만 법제처의 기능에 비추어 한심한 유권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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