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1)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1)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
  • 승인 2015.09.16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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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법이 시행된지 벌써 7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확립되지 않은 매뉴얼이 많았다. 조합설립변경인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합설립변경동의서를 걷어 조합설립변경인가를 신청하고 조합설립변경인가가 날 때까지 조율할 일들이 무척 많았다. 이런 식의 조합설립변경인가를 처음 하는 구청 공무원들 또한 무척 조심스러웠다.

이동호 부장으로부터 수시로 전화가 걸려왔다. 구청 담당자가 미심쩍어하는 사항이 생기면 어김없이 전화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강치호 변호사는 검토의견서나 질의회신서로 뒷받침했다. 조합설립변경인가가 나지 않으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디어 조합설립변경인가가 난 것이다. 강치호 변호사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서면을 작성했다. 고치고 또 고쳐 보기 싫을 정도가 되어서여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판사 출신인 원고측 변호사도 만만치 않았다. 정교한 논리와 반박 주장들이 제기되었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숨 막히는 공방이 계속되었다. 드디어.

2010년 12월 10일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 220호.
재판장이 오후 재판 변론에 앞서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2010구합10021호, 원고 김세훈 외 4인, 피고 성북구청장, 피고 보조참가인 안암6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1.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판결이 선고되자 법정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판결을 들으러 온 김현수 조합장과 안암6구역 조합원들이 순간 환호성을 지른 것이다. 재판장이 놀라 고개를 듦과 동시에 법정 경위가 벌떡 일어나 방청객들에게 주의를 준다. 법정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재판장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사건을 호명하자, 김현수를 비롯한 10여명이 방청석에서 일어선다. 법정 경위가 엄격한 표정으로 출입문으로 유도하자 조합원들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복도로 나온 조합원들이 다투어 인사를 건넨다.

“조합장님 인자 옷 안 벗어도 되것네유. 그나저나 얼마나 다행이어유.”

“축하드려요. 조합장님.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주무셔도 되겠네요.”

김현수가 뭐라고 대답해 보려 하지만 가슴이 울컥하고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한다. 격려의 손을 내미는 조합원들과 악수를 나누는 김현수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2011년 6월 15일 재정비촉진계획변경고시가 났다. 용적률이 기존 229.05%에서 256%로 상향 조정된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임기 말인 2010년 3월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변경하여 재개발 기준용적률을 20%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였고 그해 6월 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재선되었다.

안암6구역은 조합설립변경총회 개최 당시 ‘용적률 상향을 위한 촉진계획변경 추진의 건’을 의결하고 즉시 업무에 착수했었다. 3~4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매뉴얼 미비로 거의 1년 만에 겨우 변경고시를 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 절호의 찬스입니다. 용적률 상향을 명분으로 시공사 선정총회를 다시 하는 겁니다. 백두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것이 2005년 9월입니다. 그때는 용적률이 얼마가 될지도 몰랐고 무려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마침 시공사선정결의가 무효라는 고등법원 판결까지 난 상황이니 이 기회에 시공사를 다시 선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동호 부장의 말에 민익선 회장의 머리가 바빠진다. 백두건설이 응할 것인지 계산해 보는 것이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만난 백두건설 박남진 부장은 고등법원 패소 판결로 코가 쑥 빠져 있었다. 대법원에서 뒤집힐 보장도 없다며 술만 들이켰었다.

‘그래, 일단 이야기나 한번 해 보자.’

“시공사 선정 총회를 다시 한다고요?”

“그래, 이번 기회에 공사비도 현실화하면 좋잖아?”

민 회장의 말에 박 부장이 생각에 잠긴다. 충분히 가능한 방안이다.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소송은 질 것이고, 이번 기회에 하자를 치유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지도 모른다.

“총회는 어떻게 할 건데요?”

“어떻게 하다니?”

“백두건설만 단독으로 올려서 찬반을 물어도 되나요?”

“그게 되겠어? 기왕에 하려면 완전히 새로 해야지?”

재건축·재개발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핵심 이슈가 바로 시공사를 언제 어떻게 선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도정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재개발은 도시재개발법, 재건축은 주택건설촉진법에 근거하여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시공사 선정시기와 그 방법에 어떠한 제한도 없었다. 이에 사업 초기단계부터 시공사가 개입하여 사업을 주도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많은 문제가 양산되었다. 조합과 시공사가 공동시행자가 되다보니 토지등소유자가 주인인 사업에 시공사가 주인 노릇을 하면서 숱한 비리와 부정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도정법은 재건축재개발조합이 단독 시행자가 되고 시공자는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사업내용이 확정된 후 경쟁입찰의 방법에 따라 선정하도록 규정을 신설하였다.

제11조 (시공자의 선정) ① 조합 또는 토지등소유자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건설산업기본법 제9조의 규정에 의한 건설업자 또는 주택건설촉진법 제6조의3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건설업자로 보는 등록업자를 시공자로 선정하여야 한다.
② 조합 또는 토지등소유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시공자를 조합의 정관등이 정하는 경쟁입찰의 방법으로 선정하여야 한다. (2003. 7. 1. 시행)

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재개발사업이 전혀 추진되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재건축에 비해 사업성이 떨어지고 노후 열악한 단독주택단지에서 추진되는 재개발사업의 경우 사업추진 동력이 제공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2005년 3월 18일 도정법 제11조가 개정되었다.

제11조 (시공자의 선정) ① 주택재건축사업조합은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건설업자 또는 등록사업자를 시공자로 선정하여야 한다.
② 주택재건축사업조합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시공자를 건설교통부장관이 정하는 경쟁입찰의 방법으로 선정하여야 한다. (2005. 3. 18. 시행)

재건축에 대해서만 규정을 두고 재개발은 쏙 빼버린 것이다. 이후 사업이 지지부진 했던 재개발 추진위원회들이 시공사를 선정하게 된다. 안암6구역이 2005년 9월 30일 백두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것도 이 기회를 틈탄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하라는 도정법의 입법취지에 반하는 것이었다. 시공사 선정은 조합의 고유권한으로서 추진위원회 단계에서의 시공사 선정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는 이에 근거한 것이었다.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시공사를 선정하는 현장들이 속출하면서 도정법 시행 이전의 폐단이 재연될 것을 우려한 건설교통부는 다시 시공사 선정시기를 명시하게 된다.

제11조 (시공자의 선정) ① 주택재개발사업조합 및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은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후, 주택재건축사업조합은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건설업자 또는 등록사업자를 시공자로 선정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합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시공자를 건설교통부장관이 정하는 경쟁입찰의 방법으로 선정하여야 한다. (2006. 8. 25.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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