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2)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2)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
  • 승인 2015.10.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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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과 재개발의 시공자 선정시기를 구분하여 명시한 것이다.

아울러 제2항을 근거로 건설교통부장관 고시 제2006-331호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기준〉이 마련된다. 동 기준 역시 2006년 8월 25일 시행되었는데 부칙 제2조 경과조치로 인해 일선 현장에 혼선이 발생하게 된다.

제2조 (경과조치) 주택재개발사업 및 도시환경정비사업의 경우에는 2006. 8. 25. 이후 최초로 추진위원회 승인을 얻은 분부터 적용한다.

요컨대, 2005년 4월 2일 추진위원회 승인을 득한 안암6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의 경우에는 위 경과조치에 따라 위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다수 현장들이 이러한 이유로 동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고 결국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이러한 법개정으로 시공자 선정시기에 관한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사업자금 조달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시공사 선정시기가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늦춰지면서 그동안 시공사가 담당하던 사업자금 대여를 정비업체가 떠안으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우선 이것은 정비업체 용역대금이 대폭 인상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공사가 선정될 때까지 수억원을 무이자로 대여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정비업체들이 이를 명분으로 용역대금을 대폭 인상시킨 것이다. 자본이 이윤을 낳는 자본주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러한 정비업체 용역대금의 대폭적인 인상은 정비업체들간 수주경쟁으로 이어졌다. 하나의 현장에서 수십억원의 용역대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 정비업체들로 하여금 물불 안 가리게 만든 것이다.

서울의 경우 16개 구역으로 재정비촉진지구 지정이 이루어진 장위뉴타운과 신길뉴타운에서 치열한 수주전이 벌어졌다. 한 현장에 두세 개의 (가칭)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서로 동의서 징구 전쟁을 벌이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오래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과도한 출혈 경쟁이 상호 파멸을 초래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게 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정비업체간 담합으로 이어졌다.

현주피엠씨의 민익선과 미래씨엠씨의 송기호가 김현수와 박두수를 앞세워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 징구 경쟁을 벌이다가 통합논의를 하게 된 것 또한 이러한 맥락이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부터 시작된 재건축재개발 광풍이 전국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면서 잘 나가는 정비업체들은 수십 개의 현장을 수주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비업체의 과다한 현장 수주는 회사 자금사정 악화로 이어지고 만다. 수주한 현장의 운영비와 사업비를 대여해 주어야 하는데 그 금액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2007년 정비업체 대표들과 시공사 임원들이 줄줄이 구속 기소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도정법 시행 이전 시공사의 선봉대 역할을 하던 컨설팅 업체였던 정비업체들은 태생적으로 시공사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고, 이러한 관계는 도정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시공사 선정시기가 늦춰지면서 정비업체가 추진위원회나 조합에 자금을 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자금은 시공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나중에 시공사를 선정할 때 정비업체가 시공사의 뒤를 봐주기로 밀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2007년도에 일어난 일련의 구속사태는 이러한 밀월관계가 수사당국에 포착하면서 발생하였다. 시공사가 정비업체에게 수주용역비 또는 현장조사비 명목으로 자금을 지급하는 행위가 건설산업기본법에 위반된다는 것이었다.

시공사로부터 더 이상 자금을 지원받을 수 없게 된 정비업체들은 더 이상 운영비와 사업비를 지원할 수 없게 되었고 많은 현장들이 개점 휴업상태에 들어서게 된다. 이에 2009. 2. 6. 도정법 제11조가 또 다시 개정시행된다.

제11조 (시공자의 선정) ① 조합은 제16조에 따른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후 조합총회에서 국토해양부장관이 정하는 경쟁입찰의 방법으로 건설업자 또는 등록사업자를 시공자로 선정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하의 정비사업의 경우에는 조합총회에서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선정할 수 있다. (2009. 2. 6. 시행)

재건축재개발 구분 없이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건축조합의 시공자 선정시기가 앞 당겨진 것 뿐이었지만 이것은 정비업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조합설립인가 이후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때까지 통상 2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특히 건축심의를 받기 위하여 많은 업체들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비 부담이 매우 크다. 사업비를 조달하지 못하여 건축심의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던 재건축 조합들이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재건축 조합들이 즉시 시공사 선정절차를 추진하였고, 시공사가 선정되면서 대여금과 용역대금을 일거에 회수하게 되면서 정비업체들의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시공자 선정 시기를 둘러싼 법리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공사 선정시기를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늦추면 조합원 1인당 1억원 이상의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공공관리제도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1년 6월 23일, 백두건설 임원회의실.

법무팀장이 최종 검토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사업 본부장과 박남진 부장이 긴장한 얼굴로 경청하고 있다.

“어차피 안암6구역은 시공사를 새로 선정해야 합니다.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기준〉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법규에 따라 경쟁입찰은 해야 한다는 것이 법무팀의 결론입니다.”

그나마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건설교통부장관이 만든 시공사 선정기준은 실질적인 경쟁입찰을 보장한다는 명분하에 온갖 제한규정을 두고 있었다.

“도급순위 상위 회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에 제한경쟁입찰은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일반경쟁입찰로 할 것인지 지명경쟁입찰로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백두건설 입장에서 볼 때 안암6구역은 어떻게 해서든 수주해야만 하는 현장이었다. 지금까지 공식 투입 금액만 35억원, 비공식 비용까지 포함하면 70억원이 넘는다.

일반경쟁입찰로 진행하면 경쟁사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당초 사업성이 좋은 현장이었는데 용적율까지 상향되면서 군침을 흘리는 회사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라건설이 문제였다. 2005년에 수주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후 다른 현장에서 수차 접전을 벌이면서 어느덧 회사 간 자존심 대결 양상으로 변해 있었다. 한라건설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지명경쟁입찰로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가능하면 지명경쟁입찰로 가야하는데, 현장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법무팀장이 브리핑을 마무리하며 재건축재개발사업 본부장에게 바통을 넘겨버린다. 임원들의 시선이 본부장을 향하자 본부장이 잠시 뜸을 들인다. 본부장 뒤에 앉아 있는 박남진 부장이 오히려 더 긴장한 모습이다.

“비대위가 벌써 몇 건의 소송을 제기한 현장입니다. 지명경쟁입찰로 하겠다고 하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일단 지명경쟁입찰로 밀어부치되,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일반경쟁입찰로 정면승부를 봐야할 것 같습니다.”

2011년 7월 1일 오후 4시, 안암6구역 조합 사무실.

이동호 부장이 대의원회의 사회를 보고 있다.

“다음은 제4호 안건 시공사 선정방법 결정의 건입니다. 제안사유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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