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3)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3)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
  • 승인 2015.10.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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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안사유

지난 2005. 9. 30. 추진위원회 주민총회에서 이루어진 시공사 선정이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시공사를 새로 선정하고자 합니다. 건설교통부장관이 제정·고시한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기준〉은 일반경쟁, 제한경쟁, 지명경쟁의 방법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사회 심의 결과 우리 조합의 경우 지명경쟁입찰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금일 대의원회에서 시공자 선정방법을 지명경쟁입찰방식으로 확정하고자 합니다.

“법적근거는 도시정비법 제11조,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기준 제5조, 제7조, 조합정관 제25조, 제27조이고, 의결 주문은 제4호 안건 시공자 선정방법 결정의 건에 대하여 찬성 또는 반대의 의결을 한다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이동호가 제안설명을 마치고 대의원들을 둘러본다. 일부 대의원들은 회의자료를 보고 있고, 나머지는 사회자를 바라보고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무슨 내용인지 아시겠어요?”
이동호가 물어보지만 대답이 없다.
“대의원님들이 이해를 돕기 위해 국토부에서 만든 시공자 선정기준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회의자료를 한 장 넘기시면 되는데요. 제3장 시공자 선정의 방법, 제5조 입찰의 방법과 제7조 지명경쟁에 의한 입찰 규정을 읽어보겠습니다.”

제5조 (입찰의 방법) 조합은 시공자를 선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경쟁입찰의 방법으로 선정하여야 하며, 건설업자등의 자격을 제한하거나 지명하여 경쟁에 부칠 수 있다.
제7조 (지명경쟁에 의한 입찰) ① 조합은 제5조의 규정에 의하여 지명경쟁에 의한 입찰에 부치고자 할 때에는 5인 이상의 입찰대상자를 지명하여 3인 이상의 입찰참가 신청이 있어야 한다.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지명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동호가 규정을 다 읽어갈 즈음 안경 쓴 대의원 한명이 손을 들고 발언을 요청한다.
“네. 오판수 대의원님. 발언하시지요.”

“6년 전 시공사를 선정할 때 백두건설과 한라건설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습니다. 최근에 보니까 한라건설 직원들이 조합원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홍보하고 있던데, 한라건설도 지명대상에 포함되는 겁니까?”

“아, 예. 바로 그 점 때문에 이사회에서 지명경쟁입찰 방법을 제안한 것인데요.”

“아니, 이 부장은 가만히 있고 조합장이 대답하세요. 조합장의 답변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이동호가 대답하려고 하자 오판수가 조합장의 답변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선다. 의장석에 서 있던 김현수가 이동호를 바라보자 이동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2주일 전 이사회 회의자료가 발송되고 난 후 어떻게 알았는지 한라건설측 홍보요원들이 조합원들을 찾아다니며 홍보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의원님들을 많이 찾아다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오판수 대의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6년 전 시공사 선정시에 백두건설과 한라건설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고 그로 인해 후유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차제에 그런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저를 비롯한 이사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게다가 입찰공고도 나가기 전에 시공사 홍보요원들이 조합원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는 것은 위법입니다. 이 부장 선정기준 몇 조지요? 그 규정 좀 읽어 줘 봐요.”

김현수의 주문에 이동호가 기다렸다는 듯 시공자 선정기준 제13조 제3항을 읽는다.

제13조 (건설업자등의 홍보) ③ 건설업자등관련자는 조합원을 상대로 개별적인 홍보를 할 수 없으며, 홍보를 목적으로 조합원 또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등에게 사은품 등 물품·금품·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을 약속하여서는 아니된다.

“한라건설은 조합원을 상대로 개별적인 홍보를 할 수 없다는 이 규정에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으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조합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금품을 제공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지명경쟁입찰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동호의 설명에 오판수가 아예 단상 앞으로 나와 발언하기 시작한다.
“이 부장, 우리가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은 것이 언제지요?”

“2005년 4월 2일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시공사 선정기준 부칙 제2조를 한 번 읽어봐 줄래요?”
“부칙 제2조를요?”

“예. 부칙 제2조를 보면 우리 조합의 경우에는 시공사 선정기준이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되어 있을 겁니다.”

오판수의 주문에 이동호가 부칙 제2조를 읽기 시작한다.

제2조 (경과조치) 주택재개발사업 및 도시환경정비사업의 경우에는 2006. 8. 25. 이후 최초로 추진위원회승인을 얻은 분부터 적용한다.

“어떻습니까? 우리 조합은 2006년 8월 25일 이전인 2005년 4월에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시공자 선정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잘 해보려고 하는 업체를 뺄 이유가 없습니다. 한라건설이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는데 참여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은 조합원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구역은 사업규모가 크기 때문에 일반경쟁입찰로 진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일반경쟁입찰로 진행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오판수의 발언이 끝나자 많은 대의원들이 ‘옳소’를 외치며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한라건설이 이미 상당수 대의원들을 삶아 놓았고 그 선봉장이 오판수였던 것이다.

이후 2시간 넘게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일반경쟁입찰로 가닥이 잡혔다. 며칠 뒤 신문에 시공사선정입찰공고가 나가고 일주일 뒤 현장설명회가 벌어졌다. 현장설명회는 대성황이었다. 국내 20위권 내 시공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2주일 뒤인 2011년 7월 27일 입찰마감과 동시에 대의원회가 개최되었다. 현장설명회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는 백두건설과 한라건설 둘 뿐이었다. 백두건설과 한라건설이 홍보사무실을 차려놓고 홍보전을 벌이는 바람에 다른 시공사들은 모두 발을 빼버린 것이다.

현장설명회 이후 2주일 동안 안암6구역은 한라건설과 백두건설이 뿌려대는 홍보물 쓰레기로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김현수 또한 온갖 유언비어에 시달려야 했다. 조합장이 백두건설과 야합한 대가로 수십억원을 받아 먹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이에 맞서 조합장 선거에서 떨어진 박두수가 한라건설을 등에 업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횡횡했다.

조합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양사의 입찰 참여조건이었다. 무상이주비는 얼마나 되고 이사비는 얼마나 지원될 것인지, 무엇보다 공사비는 얼마인지가 핵심이었다.

입찰참여제안서 개봉 결과 공사비는 별 차이가 없었다. 백두건설 385만3천원, 한라건설 385만5천원으로 불과 2천원 차이였다.

철거비가 포함된 공사비이다. 2010년 4월 15일 도시정비법 개정으로 공사도급계약에 철거 공사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라는 규정이 신설되었기 때문이다.

제11조 (시공자의 선정 등) ④ 사업시행자는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라 선정된 시공자와 공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기존 건축물의 철거 공사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여야 한다.

일부 철거업체들의 과도한 욕심이 이러한 법개정을 초래한 것이었다. 이들은 가칭 추진위원회 단계에서부터 임원들에게 접근하여 관계를 설정하고 낙마하지 않도록 물심양면 뒤를 봐 준다. 수년 뒤를 내다보고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다. 임원들은 철거업체를 선정할 때 각종 편의를 봐주는 등 보답하는데, 여기서 욕심이 과했던 것이다.

철거업체들은 철거관련업무를 세분화, 정형화하여 용역금액을 부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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