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4)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4)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
  • 승인 2015.11.10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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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관리, 수용재결, 석면해체, 범죄예방, 공가관리, 세입자실태조사 등등. 철거용역비가 평당 20만원이 넘어서자 심각성이 불거졌고 결국 시공사 도급공사비에 철거공사비를 포함시키도록 법이 개정된 것이다.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임시총회 일자는 입찰마감 한 달 뒤인 2011년 8월 27일 토요일 오후 2시로 정해졌다.

“윤 사장, 이번에 잘못되면 큰일 나는 거 알지?”
백두건설 박남진 부장과 믿음컨설팅 윤서희 사장이 밀담을 나누고 있다.
“결국 서면결의서 싸움 아니겠어? 돈 아끼지 말고 과감하게 해야지. 한 장이라도 많이 걷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잖아? 한라도 이번에는 단단히 각오하고 있는 것 같던데, 언니들 얘기 들어보니까 장난이 아니더라구.”
“뭐라고 그러는데?”

“한라가 이기면 언니들한테 보너스로 한 장씩 더 주겠다고 했다나봐.”
“정말?”
박남진 부장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수주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OS들이다. OS가 얼마나 열심히 해 주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다. 한라건설이 이번 싸움에 대비해 웃돈을 주며 유능한 OS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소문은 진즉부터 업계에 파다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수주에 실패하면 승승장구하던 박남진의 앞날에 시커먼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이다. 그동안의 업적이 있으니 잘리지는 않겠지만 본부장의 눈총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본부장도 이번 싸움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이기기만 하라구.”

근 한 달 동안 백두건설과 한라건설 사이의 치열한 수주전이 전개되었다. 선물공세와 식사접대, 술접대가 이어지고 돈봉투까지 등장하였다. 약삭빠른 조합원들은 막판까지 서면결의서를 제출하지 않고 버티며 눈치를 보았고, 할 일 없이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동네 백수들은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술판을 벌였다.

드디어 2011년 8월 27일 토요일.

“제2호 안건 심의 종결해도 되겠습니까?”
사회를 보는 강치호 변호사의 질문에 총회장을 가득 메운 조합원들 몇몇이 ‘예’하고 대답한다.
“대답을 해주셔야 진행이 됩니다. 제2호 안건 심의 종결해도 되겠습니까?”
“네."
조합원들이 목소리가 우렁차진다.

“이의 없으십니까?”
“네~.”
“자, 그러면 제2호 안건 2011년도 예산안 수립의 건에 대한 심의를 종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조합원님들께서는 심사숙고하셔서 찬반의 의사를 결정하시고 투표로써 본인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오늘의 하이라이트 제3호 안건 시공자 선정의 건에 대한 심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조합원님들께서는 총회 책자 45페이지를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제안사유를 보겠습니다.”

강치호 변호사의 능숙한 진행에 조합원들이 총회 책자 45페이지를 펴고 제안사유를 본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2. 제안사유
우리 조합은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미 시공사를 선정한 바 있으나 일부 조합원이 제기한 시공사선정결의 무효확인소송에서 패소하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입니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원활한 사업수행을 위하여 차제에 시공사를 다시 선정하기로 의견을 정하고 일반경쟁입찰 방식에 의하여 시공사선정절차를 진행해 왔습니다. 지난 2011년 7월 27일 최종 입찰마감 결과 백두건설과 한라건설 두 회사가 입찰에 참여하였습니다. 이에 오늘 총회에서 두 회사 중 하나를 안암6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시공자로 선정하고자 합니다. 오늘 선정된 시공사와는 입찰제안서에 첨부된 가계약서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조합원님들께서는 심사숙고하시어 시공사를 선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법적 근거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1조, 조합정관 제12조, 제21조, 제22조가 되겠고, 의결주문은 안암6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시공자로 기호 1번 백두건설 또는 기호 2번 한라건설 중 하나를 선정한다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총회책자를 보며 제안설명을 마친 강 변호사가 조합원들을 둘러보며 안건 심의 방법을 설명한다.

“본 안건에 대한 심의는 먼저 양사의 홍보영상을 본 다음 양사 담당자들을 단상으로 불러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조합원님들께서는 홍보영상을 보시면서 질문하실 내용을 메모해 두셨다가 질의응답시간에 질의해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총회 직전에 양사 담당자가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는데요. 먼저 기호 2번 한라건설의 홍보영상을 보시고 바로 이어서 기호 1번 백두건설의 홍보영상을 보시겠습니다. 기호 2번 한라건설 준비됐습니까?”
“네.”

“그럼 바로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치호 변호사의 멘트가 끝나자 총회장 내 조명이 모두 꺼지고 단상 정면의 대형 스크린에 한라건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홍보영상이 비춰진다. 웅장한 음악과 역동적인 영상들이 조합원들의 눈과 귀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한라건설의 홍보영상은 주로 백두건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한라건설의 제안내용이 백두건설에 비해 어떻게 유리한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라건설의 홍보영상이 끝나자 조합원들이 박수로 환호한다.

“네. 기호 2번 한라건설의 홍보영상을 보셨습니다. 다음은 기호 1번 백두건설의 홍보영상을 보시겠습니다.”

강 변호사의 멘트가 끝나고 스크린에 백두건설의 홍보영상이 비춰진다. 백두건설의 홍보영상은 감미로운 멜로디와 감정에 호소하는 듯한 서정적인 분위기로 시작하고 있었다.
안암동 일대의 눈에 익은 풍경과 그 속에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이 서정적인 음악과 여자 성우의 감성적인 목소리와 어우러져 조합원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더니 어느새 경쾌한 음악과 영상으로 백두건설을 홍보하고 안암6구역이 재개발된 이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라건설과는 달리 상대 회사와 비교하지 않고 백두건설의 제안 내용만을 강조하더니 다시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멜로디로 마무리한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한 편의 영화같은 홍보영상이다. 조합원들의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이어진다.

“네. 기호 1번 백두건설의 홍보영상을 보셨습니다. 그럼 이제 양사를 대표하여 질의응답에 응할 담당자들을 단상으로 모시겠습니다. 양사 담당자 분들은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 변호사의 멘트가 끝나자 백두건설의 박남진 부장과 한라건설의 이수익 부장이 단단히 긴장한 표정으로 단상 위로 올라선다.
“자, 그럼 먼저 조합원님들께 인사부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호 순서대로 인사해 주시지요.”

4시간 뒤.
“의장께서는 제2호 안건 예산안 수립의 건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개표가 종료되고 강 변호사가 투표 결과를 발표하며 각 안건의 가결 여부에 대한 선포식을 진행하고 있다. 김현수 조합장이 의사봉을 들고 제2호 안건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

“다음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제3호 안건 시공자 선정의 건에 대한 투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총 출석 721명 중 기호 1번 백두건설 372표, 기호 2번 한라건설 343표, 기권 및 무효가 6표. 기호 1번 백두건설이 출석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얻어 안암6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시공자로 선정되었음을 의장께 보고드립니다. 의장께서는 기호 1번 백두건설이 선정되었음을 선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3호 안건 시공자 선정의 건 심의 결과 기호1번 백두건설이 시공자로 선정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탕!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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