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서 재징구해도 변경인가 못 받으면 조합 취소
동의서 재징구해도 변경인가 못 받으면 조합 취소
대법원 확정 판결에 담긴 의미와 파장
  • 심민규 기자
  • 승인 2010.09.15 0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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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5 12:15 입력
  
하자치유 불가판결은 변경인가와는 별개 사안
전문가 “변경인가 받았다면 새 인가처분 인정”
 

“조합설립동의서를 재징구하더라도 하자가 있는 행정행위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고 대법원이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변경인가가 이뤄지지 않고 동의서 재징구로만 조합설립인가의 하차를 치유하는 길은 사실상 막혀버렸다.
 
문제는 이번 판결이 이른바 ‘백지동의서’로 설립한 조합들의 구제 방안으로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내주겠다는 국토해양부 방침의 효력여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행정행위 치유 불가’가 조합설립 변경인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과 조합설립 변경인가는 별개의 사안으로 봐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즉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받을 경우 행정행위에 대한 하자치유가 아닌 소송을 제기한 이익을 두고 다투는 사안이어서 이번 판결과는 다른 사안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행정처분 당시 법령, 사실 상태로 판단… 원칙적으로 치유 불가”
 
대법원 제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윤모씨 등 용두5구역 주민 9명이 동대문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재개발정비사업조합 설립인가 취소’ 소송에서 “행정소송에서 행정처분의 위법 여부는 행정처분이 있을 때의 법령과 사실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흠이 있는 행정행위의 치유는 행정행위의 성질이나 법치주의 관점에서 볼 때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합설립인가 처분은 설권적 처분의 성질을 갖고 있다”며 “흠의 치유를 인정하더라도 원고들을 비롯한 토지등소유자들에게 아무런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조합패소 판결을 내렸다.
 
즉 행정처분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정행위에 대한 하자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이 ‘행정처분 하지치유 불가’ 판결을 내림에 따라 조합설립인가의 유·무효를 놓고 동의서를 재징구함으로써 하자가 치유됐다는 조합 측의 논리는 사실상 힘을 잃게 됐다.
 
H&P법률사무소의 박일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조합설립인가가 설권적 처분으로 구성되는 이상 행정행위의 하자치유에 관한 일반적인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취지”라며 “조합설립인가처분 역시 일반적인 행정처분과 동일한 차원에서 기존의 확립된 하자치유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함준표법률사무소의 함준표 변호사는 “행정처분은 대세적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단 발효가 되면 이를 신뢰하는 제2, 제3의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만약 추후 보완을 통해 소급 변경시키게 되면 예측 불가능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행정처분은 처분시점을 기준으로 그 적법성 여부가 판단되는 것이므로 사후에 하자가 보완된다는 것 자체가 부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하자의 치유가 무조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법무법인 우면의 김영진 변호사는 “용두5구역의 경우 백지동의서를 징구했을 뿐만 아니라 동의서를 교체하거나 변개하는 등의 하자가 매우 중대하고 명백하기 때문에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라고 볼 여지가 있는 사안”이라며 “나아가 원고가 인가취소만을 구한 경우여서 하자의 치유에 관해 심도있게 다룬 판결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번 판결이 조합설립인가 처분이 설권적 처분이기 때문에 바로 하자의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확대 해석하기는 이르다”고 주장했다.
 
즉, 조합설립동의서가 교체됐거나 변개돼 있는 등의 하자만으로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가 될 수 있었던 사안인만큼 행정처분에 대한 하자치유는 심도있게 다룬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조합설립인가 ‘무효’가 아닌 ‘취소’를 다툰 문제인만큼 동의서 교체, 변개 등이 없었다면 ‘무효’ 소송에서는 대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동의서 2쪽(신축건물의 설계개요,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이 모두 공란으로 돼 있었던 사실 △조합설립인가 신청시 피고에게 제출된 동의서 중 100장은 작성 연월일이 변개됐거나 서명날인란의 기재와 다른 필기구가 사용된 사실 △동의서에 첨부된 인감증명서는 정비구역 지정 이전에 발급된 것이며 교체 흔적이 있는 사실 등을 들어 토지등소유자의 3/4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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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동의서로 조합… 재징구 후 하자치유 주장… 끝내 취소
 
■ 용두5구역 소송 진행 어떻게

이번 소송이 진행된 동대문구 용두5구역은 지난 2004년 10월 사업구역 내 토지등소유자 330명 중 173명의 동의로 추진위원회를 승인받았다.
 
이후 서울시에서는 사업구역을 종전 4만1천430㎡에서 3만7천408㎡로 축소하고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추진위는 2008년 토지등소유자 322명 중 243명의 동의를 얻어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했다. 이에 동대문구청은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3/4 이상의 동의로 조합설립동의율을 충족했다고 판단하고 조합설립인가를 내줬다.
 
하지만 윤모씨를 비롯한 일부 주민들은 “사업구역이 축소·변경되기 전에 미리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동의서를 제출 받은 후 임의로 축소·변경된 사업구역에 맞게 교체해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했다”며 “변조된 동의서를 제외하면 토지등소유자의 3/4 이상의 동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조합설립인가는 취소돼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은 “동의서 중 일부는 육안 상으로도 변개된 흔적이 명백하다”며 “변개된 동의서를 제외하면 조합설립인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조합설립인가처분은 위법하다”며 조합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조합에서는 조합설립 동의율을 초과하는 조합설립동의서를 새롭게 징구해 하자가 치유됐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도 “행정소송에서 행정처분의 위법 여부는 행정처분 당시의 법령과 사실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조합설립 인가처분은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행정주체로서 설권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 것이므로 하자가 치유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해 또다시 조합이 패소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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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처분 하자치유 불가 판결
국토부 변경인가에 영향 줄까
 
■ 전문가 진단

대법원의 ‘행정처분 하자치유 불가’ 판정이 내려짐에 따라 업계에서는 국토부의 조합설립 변경인가도 효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동의서를 재징구한 후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받은 구역들의 소송과는 무관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법무법인 동인의 맹신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행정처분의 하자치유 여부만 판단한 것”이라며 “새로운 동의서에 기한 조합설립 변경인가처분이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급심에서 변경인가를 받은 조합은 새로운 행정처분으로서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온바 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우면의 김영진 변호사는 “조합설립변경인가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심도 있게 다뤄진 상급심 판결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판결의 항소심에서는 조합이 조합설립동의서를 새로 받은 사실만이 판단됐을 뿐 변경인가 여부나 효력에 대한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동의서를 재징구한 후 조합설립 변경인가까지 받았다면 조합설립인가가 유효할 것이란 ‘우세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법무법인 영진의 강정민 변호사는 “용두5구역의 경우 조합설립인가 처분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으로 인해 조합이 새로 징구한 조합설립동의서를 근거로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신청하지 못한 사안”이라며 “만약 조합이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신청해 변경인가를 받았다면 결론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조합설립 변경인가제도를 인정하고 있다”며 “변경인가가 이뤄졌다면 변경전의 행정처분에 대해서는 다툼의 이익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조합설립인가 후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을 받은 조합들의 경우 변경인가를 받았다해도 조합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지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법률사무소 국토의 김조영 변호사는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받은 것은 새로운 행위로서 그 이후부터는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며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받는다고 해서 기존 인가의 하자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존 조합설립행위에 기초해 행해진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 인가는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박일규 변호사는 “변경인가를 적법하게 받았다면 기존의 조합설립인가에 대한 소의 이익은 부정돼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조합설립 변경인가 이후 소의 이익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업시행인가나 관리처분인가 등 후속 처분이 있거나 토지등소유자에게 조합이 매도청구권과 같은 권한을 행사한 경우 취소나 무효를 구할 소의 이익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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