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체결 결의무효’ 판결에도 사전에 몰랐다면 ‘무죄’
‘계약체결 결의무효’ 판결에도 사전에 몰랐다면 ‘무죄’
  • 심민규 기자
  • 승인 2010.08.31 0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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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1 16:39 입력
  
수원지법 “재건축결의 변경한 시공사 계약은 2/3 동의”
전문가 “계약 체결 땐 총회 의결… 예산안 수립 요주의”
 
 

총회결의가 무효라도 범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최근 대법원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한 후 사후 추인을 받은 조합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직후 내려진 판결이어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후 총회에서 사후 추인을 받은 조합들은 이번 판결이 조합에 다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은 유효한 사전결의 없이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대법원과 공통점이 있다”면서도 “위법성의 인식에 따른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한 것이어서 계약체결 전 사전결의를 받아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와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즉 사전 결의 없이 계약을 체결한 행위는 여전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수원지법 “총회결의 무효라도 위법성 인식할 수 없었다면 처벌 불가”=수원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경호)는 지난 7월 22일 총회에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도 시공자와 계약을 체결해 〈도정법〉 위반으로 기소된 C재건축조합장 이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C재건축조합은 지난 2005년 12월 총회에서 총 공사대금과 조합운영비, 이주비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시공사 본계약서(안) 의결의 건’을 조합원 51%의 동의로 통과시켰다.
 
이에 조합원 중 일부는 총회결의의 효력을 정지하고 시공자와 공사도급계약 체결금지 등을 구하는 ‘조합원 총회결의 효력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에 따라 조합에서는 전체 조합원 1천901명 중 약 94%에 이르는 1천798명(전체 조합원 4/5 이상과 각 동별 조합원 2/3 이상)에게 ‘주택재건축 정비사업 결의 및 사업계획 변경 동의서’와 ‘서면 결의서’를 제출받고 2006년 5월 공사도급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은 “‘시공사 본계약서(안) 의결의 건’은 당초 재건축결의 중 조합원의 비용분담 등에 관한 사항을 실질적으로 구체화해 정하고 있으므로 도정법상 총회에서 조합원 2/3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과반수 동의로 통과시켜 계약을 처벌한 것은 도정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조합장을 형사·고소했다.
이에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무효인 결의를 바탕으로 시공자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도정법〉 위반에 해당된다며 피고인 조합장 이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조합장 이모씨는 “정관에 시공자 본계약 의결의 건에 대한 의결정족수는 1/2로 규정하고 있으며 총회 후 서면결의서로 2/3 이상을 충족했다”며 “본계약 체결시 결의가 유효하다고 판단해 위법성을 인식할 수 없었다”며 항소했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제4형사부는 총회의 결의가 무효라 할지라도 위법성을 인식할 수 없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조합에서 총회의 의결을 거쳤다고 오인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형법〉 제16조에는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시공자와의 계약서에 포함될 내용’에 관한 안건을 총회에 상정해 의결하는 경우 계약서에 포함될 내용이 당초 재건축결의시 채택한 조합원의 비용분담 조건을 변경하는 때에는 특별다수의 동의 요건인 조합원 2/3 이상의 동의를 요한다”고 전제한 뒤 “재건축조합의 정관 규정이 당초의 재건축 결의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2/3 이상의 의결 정족수에 못 미치는 동의로 가결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재건축사업의 원활한 진행에 상당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과반수로 시공자 본계약 안건에 대한 결의는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조합장인 피고인이 S건설 등과 시공계약을 체결할 당시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아니한 채 임의로 시공계약을 체결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재건축사업의 추진경과 등에 비춰 시공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총회의 의결을 거쳤다고 충분히 오인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이므로 도정법 제85조제5호 위반죄로 처벌할 수는 없으므로 무죄”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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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법 85조5호, 형식적 해석으로 처벌하는 폐해 방지”

 
 

■ 전문가 시각

대법원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한 후 사후 추인을 받은 조합장에게 유죄를 선고 했다.
 

하지만 이번 수원지법이 유효한 사전결의가 없는 임의 계약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무효인 결의로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무죄 선고가 나왔다면 사후 추인을 거쳤을 경우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 체결 후 추인을 받아도 〈도정법〉 위반이라는 대법원의 판결과는 직접적인 연관을 맺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이 계약 체결 후 사후 추인이 가능한지에 대해 판단했다면 이번 수원지법 판결은 위법에 대한 인식 여부를 판단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동인의 맹신균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도정법 제85조제5호의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 총회 사전의결이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이다”며 “이번 수원지법은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 형법 제16조의 해당여부를 판단한 것이어서 서로 비교 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동성종합법률사무소의 김태경 변호사는 “수원지법의 판결은 해당 재건축결의 내용에 비춰 해당 안건의 의미와 성격의 특성으로 인해 기존 대법원 판례와 구분된다”며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한 경우 사후 추인결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범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과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와 전제가 다른 사안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에 대한 벌칙 조항을 형식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H&P법률사무소의 박일규 변호사는 “도정법 제85조제5호를 형식적으로 해석할 경우 서면결의서를 징구했다 하더라도 총회를 개최해 적법한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위험성이 있다”며 “재판부는 형식적인 해석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한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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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규모에 상관없이
사전결의 받아야 안전
 

■ 체크 포인트

최근 〈도정법〉 위반에 따른 소송이 늘어나면서 일선 현장에서는 판결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대법원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은 반드시 총회에서 사전 결의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일선 조합들이 긴장하고 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계약 체결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계약 체결 시 총회 의결에 각별한 주의를 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처벌 규정은 있지만 위법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H&P법률사무소의 박일규 변호사는 “사전결의를 거치지 않고 계약을 체결할 경우 〈도정법〉 위반을 구제할 특별한 방법이 없다”며 “벌금형의 액수를 낮춰 조합임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이라는 것도 ‘부담’의 규모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기준 외에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며 “원칙적으로 예산 외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 체결은 비용부담의 규모와 상관없이 반드시 사전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처벌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이란 규정에서 ‘부담’의 규모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는 이상 반드시 사전 결의 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전문가들은 조합의 예산안 작성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사업 단계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거나 지출하게 될 비용을 미리 예측해서 예산안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종합법률사무소의 김태경 변호사는 “조합이 업무를 집행하면서 모든 지출을 매번 총회를 개최해 결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조합은 예산안을 마련할 경우 향후 진행될 사업 내역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예산안을 철저히 반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이어 “예산 편성에 철저를 기한다 해도 사업을 수행할 때 예측하지 못한 지출이 발생할 경우가 있다”며 “이럴 경우를 대비해 예산 내용 중 이사회 등 보다 간략한 절차를 거쳐 집행할 수 있는 긴급 사업비 등의 항목을 책정한 예산안을 총회에서 의결받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영진의 장재원 변호사도 “예산으로 정해진 사항은 총회의 사전결의가 없어도 계약체결이 가능하다”며 “따라서 매년 정기총회에서 예산을 정할 때 지출이 예상되는 항목을 모두 예산으로 정해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예산으로 정할 수 없는 사항이거나 총회결의를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총회 비용이 계약체결 금액보다 다액인 경우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해서는 대의원회에서 사전결의한 후 사후 총회에서 추인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앞선 예외적인 사항에도 똑같은 벌칙 규정이 적용된다면 법의 개정을 통하지 않고는 사실상 구제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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