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 변호사-- 노후·불량건축물의 법적기준
박일규 변호사-- 노후·불량건축물의 법적기준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0.06.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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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7 10:43 입력
  
박일규
변호사(H&P법률사무소)
 

정비구역지정취소소송 과정에서 늘 제기되는 주장 하나. “건축물에 따라서는 100년이 지나도 문제없는 경우가 있는데 일정 준공연한이 지났다는 사유만으로 철거가 불가피한 노후·불량건축물로 분류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별도로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사정이 안전진단 등의 결과를 통하여 확인되어야 한다.”
일견 타당해 보이며 이러한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재판부도 적지 않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철거불가피성’이라는 추상적 기준만을 제시하여 위임의 한계를 설정한 후 하위 법령인 시행령과 조례에 노후·불량건축물의 구체적인 개념정립을 위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위법령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건축물을 노후·불량건축물로 규정하여야할 것인가. 이 문제는 보다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판단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노후·불량의 개념은 건축공법·건축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각 지역별·시대별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후·불량건축물의 개념을 법률로써 직접 확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입법정책상 타당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정법〉의 위임에 따라 시행령 및 시·도 조례는 일정한 준공연한이 경과한 건축물을 일률적으로 노후·불량건축물로 관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일정 준공연한이 지났다고 모두 철거가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냐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건축물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없는 건축물이 철거가 불가피한 노후·불량건축물로 관념될 수 있고, 이때 건축물로서의 기능이라 함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으며, 시대적·공간적·지역적 상황에 따라 변천할 수밖에 없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예를 들어, 건축물이 단순히 비와 눈 등을 피하게 하여 주거나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공격을 막아주면 그것으로서 그 기능을 다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 이후의 건축물은 좀 더 나아가 여름에는 더위로부터 겨울에는 추위로부터 인간의 신체를 보호하고 벽과 문으로 공간을 구분하여 시각적 측면에서 최소한의 사생활 보호를 도모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였을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진일보하여 시각적·청각적 측면에서의 사생활 보호는 물론 입식부엌, 건물 내 화장실 설치 등 생활의 편리를 고려한 공간배치와 냉·난방에서의 효율성·경제성 등의 기능을 두루 갖추었을 때 비로소 건축물로서의 기능을 다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현시대의 건축물은 어떠한가. 과연 입식부엌과 실내화장실, 일정한 내구성 만을 갖추고 있으면 건축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건축물 내·외부의 디자인적 요소, 주변 환경과의 조화, 환경친화적 냉·난방 시스템, 독립된 주차공간, 쇼핑시설·병원 등 각종 근린생활시설의 접근성, 교통편의성, 보다 고도화된 사생활 보호,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천재지변·화재 등 비상사태 발생시 접근가능한 비상대피시설, 인간다운 생활환경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녹지공간, 외부 휴식시설에 해당하는 공원 등 건축물 자체만이 아니라 주거환경의 주요요소가 되는 기반시설이 상당한 수준으로 정비되어 있을 때 비로소 현시대에 걸맞는 주거로서의 기능을 다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일정 연한이 경과한 건축물을 노후·불량건축물로 분류한 〈도정법〉시행령과 조례는 건축 당시의 건축기술, 주거문화 및 기반시설의 수준 등을 고려하여 해당 건축물이 준공 당시 보편적으로 요구되었던 주거로서의 기능에 충실하였을지는 몰라도 현시대에 요청되는 주거로서 다양한 기능을 충족하기는 어렵다는 전문적·기술적 판단을 기초로 한 입법적 결단이다.
 
단순히 건축물자체의 내구성에만 초점을 두어 철거불가피성을 판단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현대 건축물에 요구되는 다양한 기능적·환경적·생활편의적 요소를 간과한 것이고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인다는 〈도정법〉의 입법목적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최근 서울고등법원과 수원지방법원이 노후·불량건축물의 확정을 위하여 굳이 안전진단 등 실사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결을 낸 바 있다. 뒤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철거불가피성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한 적절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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