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맞지만 아직 시기상조”… 찬반논란 고개드는 아파트 후분양제
“취지 맞지만 아직 시기상조”… 찬반논란 고개드는 아파트 후분양제
  • 김하수 기자
  • 승인 2017.03.09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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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부동산시장 근간 흔들수 있어 파장 예상
건설업계 “다시 도입 땐 분양가 10~15% 상승”

2003년 참여정부 시절 재건축 아파트 대상으로 도입됐다가 5년 만에 철회된 후분양제가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권에서 후분양제 도입을 위한 주택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으며,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후분양제 관련 연구용역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여론이 뜨거워지고 있다.

후분양제는 분양 및 부동산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 제도 도입시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신규 주택 공급의 80~90%를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서울의 경우 후분양제 도입이 자칫 주택공급 기회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3년 만에 재등장한 ‘후분양제’ 논의

후분양제는 그동안 주택시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온 논쟁거리였다. 모델하우스만 보고 입주 전에 돈을 내고 아파트를 구입하는 선분양제와 달리 후분양제는 공사의 80% 이상이 진행된 후 분양절차를 밟는다.

현재 선분양제나 후분양제를 규정하고 강제하는 법은 없다. 국토교통부령인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착공과 동시에 선분양제가 허용된다.

정부 차원에서 후분양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3년. 당시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의 투기 과열을 식히고 아파트 분양원가 투명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에 도입 검토를 지시하면서 부터다.

하지만 대한주택공사(현 LH 한국토지주택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의 부채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까지 터지면서 후분양제 도입은 흐지부지됐다. 현재 SH공사 등 일부 공공기관만 제한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에서 후분양제를 정책화하려는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윤영일 의원(국민의당,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은 지난 14일 후분양제 도입으로 소비자 중심의 주택공급이 가능하도록 주택법과 주택도시기금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주택의 건설공정이 전체공정의 80%에 도달한 이후에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하는 후분양제를 주택법에 명시했다. 앞서 정동영 의원(국민의당, 국토교통위원회 위원)도 후분양제와 선분양 때 사전입주예약제 도입을 골자로 한 주택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최근 후분양제 관련 연구용역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후분양제 도입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19일 성명서를 통해 “기존 선분양제는 소비자가 살 수 있는 물건 중 가장 비싼 물건인 아파트를 만들기도 전에 파는 반시장적 제도”라며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보호할 수 있으며 부실시공을 예방할 수 있는 후분양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선분양제가 분양권 전매를 통해 투기를 유발하며, 확정되지 않은 개발 이득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잘못된 제도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주택 과잉공급도 선분양제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경실련은 지적했다. 선분양제도 아래에서는 아파트 입주자들이 미리 제공하는 계약금, 중도금 등으로 공사가 진행돼 건설사들이 공급조절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후분양제 시행 후 가격 상승을 우려하지만 이는 후분양의 문제가 아닌 잘못된 주택 가격 책정방식과 제도, 부동산 거품의 문제”라며 “소비자를 현혹해 선분양하고 이후 책임은 모두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피해를 막아야한다”고 덧붙였다.

▲후분양제 도입시 사업비 끊겨…재건축사업장 올스톱 우려

이에 전문가들은 후분양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후분양제 전면 도입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건설사들이 일반분양 수익금을 통해 조달하던 공사자금을 다른 곳에서 끌어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금융비용을 수반해 분양가가 덩달아 오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특히 후분양제 도입 시 신규 주택 공급의 80~90%를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서울 및 대도시의 경우 자칫 주택공급 기회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업주체인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로서는 준공 때까지 자체적으로 사업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8년 9월 재건축 후분양제를 공식 폐기한 바 있다. 정책 도입 당시 내세웠던 취지와 달리 효과가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입 당시만 해도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부실시공 및 입주 지연 등의 문제가 해소되고 모델하우스 설치비 절감 등으로 분양가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분양가는 오히려 급등했다. 후분양 아파트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하게 책정되다 보니 공사 기간 중 주변 집값이 오를 경우 오히려 분양가가 더 비싸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건설사 역시 각종 금융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한 탓에 고분양가 문제 해결은 더 멀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후분양제가 시행될 경우 아파트 건설비 조달에 필요한 금융비용과 미분양에 따른 리스크 비용과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일반분양가가 10~15% 가량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분양에 따른 건설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금융비용 때문에 분양원가가 더 뛸 것이라는 전망이다. 후분양제가 도입될 경우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조합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선분양이 허용되는 현 시점에서는 일반분양 수익금으로 공사비 재원을 마련할 수 있지만,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현금흐름상 문제가 발생해 사업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재건축 조합관계자는 “후분양제도가 시행되면 공사비는 투입되는데 분양수익금은 들어오지 않으니 금융기관을 통해 별도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며 “결국 그 과정에서 필요한 금융비용은 조합원 추가분담금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조합관계자는“재건축 조합이나 시행사는 소규모인데 도급공사비 조달 부담과 은행 대출 문제 등을 겪다보면 추후 사업시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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