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집단대출 옥죄기에 정비사업장 ‘돈맥경화’ 심화
금융당국 집단대출 옥죄기에 정비사업장 ‘돈맥경화’ 심화
  • 김하수 기자
  • 승인 2017.05.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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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대출거부·중단 사태로 사업장마다 위기감 확산
2금융권까지 중도금 집단대출 거부 … 정비업계 ‘빨간불’

금융당국의 집단대출 옥죄기가 국내 부동산시장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 차원에서 제1금융권에 이어 최근 제2금융권까지 집단대출 고삐를 죄면서 분양시장 뿐만 아니라 도시정비시장에도 먹구름이 드리운 것이다.

재건축·재개발사업은 사업비가 순조롭게 마련돼야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된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집단대출 규제 강화 움직임으로 중도금 및 이주비 대출 창구가 막혀 이주가 늦춰지는 정비사업장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방 정비사업장들의 경우 사업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어 그 피해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1금융권 이어 2금융권까지 집단대출 거부 움직임 확산

금융권이 아파트 집단대출을 본격적으로 조이기 시작한 것은 1년도 채 안됐다. 2012년 963조원이던 가계부채가 매년 늘어 지난해 말 1천344조원에 이르게 되자 지난해 8월 정부는 ‘가계부채관리대책’을 발표하며 집단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주택금융공사의 중도금 대출을 90%로 낮추고 1인당 보증 건수도 최대 4건에서 2건으로 줄였으며, 금융감독원을 통해 시중은행의 대출심사를 강화하도록 했다.

올해 1월부터는 잔금대출에 대해서도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대출자의 상환능력 평가와 분할상환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추가됐으며 3월부터 상호금융권과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의 대출심사도 대폭 강화됐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분양물량 급증에 따른 미분양 우려가 높아지면서 은행들이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대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특히 사업장이 기반시설이 없는 외진 곳에 떨어져 있거나, 과도한 분양가 책정으로 미분양 리스크가 존재할 경우 대출 승인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 집단대출 거부로 이주 막힌 정비사업장 속출

금융당국이 집단대출에 대한 문턱을 높이자 주택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실제 한국주택협회의 ‘중도금 집단대출 협약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부터 올 1월 말까지 중도금 집단대출 협약을 맺지 못한 주택사업장은 전체 52개 분양 사업장 가운데 37곳에 달했다. 총 9조원, 3만8천여가구가 중도금을 빌려줄 은행을 구하지 못한 것.

특히 단지규모와 중도금대출 금액이 큰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18곳의 경우 금융권의 대출 기피, 분할대출 요구 등으로 전체 사업장 중 72.2%가 대출협약 미체결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권의 집단대출 거부 움직임이 확산되자 시공자를 선정해 착공에 들어가야 할 재건축·재개발조합들은 이주비 대출 은행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주택경기가 좋았을 당시 은행들이 서로 대출을 해주겠다고 줄을 섰던 것과 달리 이제는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 서울 동대문구의 한 재개발조합은 정부의 집단대출 규제 강화 이후 두 번의 이주비대출 은행 섭외 실패 후 최근 가까스로 이주비대출 은행을 구했다.

조합 관계자는 “애초 6월에 이주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대출을 받지 못해 사업이 지연돼 왔다”며 “이자율이 3% 중반대로 높은 편이지만 현재 더 오르고 있어 이마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방 정비사업장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관리처분인가를 통해 행정절차를 완료한 대전 서구의 한 재개발조합은 진행 중이던 원주민 이주를 중단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원주민들이 다른 곳에 잠시 이주할 수 있도록 이주비 대출을 진행하던 은행이 대출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해당 조합 관계자는 “사업비와 중도금대출 은행이 지정되지 않자 이주비 담당 은행이 중간에 철수했다”며 “시공자가 대기업인데도 불구하고 사업비를 조달할 은행이 섭외되지 않고 제2금융권은 6%가 넘는 터무니없는 금리를 요구해 사업이 진퇴양난에 빠져있다”고 토로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최근 금융당국이 집단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 거부나 대출금액 감액, 금리 인상 등으로 사업추진이 지연되는 정비사업장들이 늘고 있다”며 “이는 주택사업자 뿐만 아니라 사업 지연에 따른 이자 부담 등으로 조합원 등 실수요자까지 피해가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00% 계약 사업장도 집단대출 거부…속 타는 건설사

정부의 집단대출 규제 강화 움직임으로 건설업계 역시 ‘빨간불’이 켜졌다. 제1금융권에서 집단대출을 구할 수 없는데다 금리까지 오르면서 금리가 5%를 웃도는 제2금융권에 집단대출을 신청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

최근에는 새마을금고와 신협 등 제2금융권까지 아파트 중도금 집단 대출을 거부하며 일부 건설사들은 중도금 대출 창구를 마련하지 못해 한숨만 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방 소재 A건설사의 사업장은 분양률 100%에도 불구하고 지방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중도금대출 보증이 불가능한 제2금융권과 대출을 진행했다.

다른 B건설사가 분양한 아파트는 공공택지 사업장으로 계약률도 90%를 넘었지만 시중은행으로부터 대출이 거절된 사례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사 자체적으로 금융회사에 직접 보증을 서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올해 1월 ‘방배아트자이(방배3구역 재건축)’를 분양한 GS건설은 자체 보증 방식으로 방배 아트자이에 대한 중도금 대출을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의 중도금 대출 규제 이후 분양가 9억원이 넘는 단지가 중도금 대출을 시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GS건설 관계자는 “분양성 재고를 위해서 중도금 대출 보증을 결정했다”며 “보증해야 하는 가구 수도 크지 않고, 보증에 따른 리스크도 적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활한 분양을 목적으로 건설사가 중도금 대출 보증을 제공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며 “하지만 계약해지나 미입주 사고가 발생하면 부실이 건설사로 전이될 수 있다는 불안 역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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