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 낡아 생활 아닌 생존하는 중인데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주민들 불만고조

김하수 기자l승인2018.03.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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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환경·설비노후도 가중치 대폭하향 조정 
사실상 재건축 금지 … 졸속행정 강력 비판 

[하우징헤럴드=김하수기자]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이 지난 5일부터 적용, 시행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안전진단을 받기 위해 속도를 내던 단지들은 허탈감과 분노에 휩싸였으며, 주민들의 생존권과 안전권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난달 21일 개정안 발표 이후 행정예고, 시행까지 불과 2주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지면서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게 일고 있다.

▲낡아도 위험하지 않으면 재건축 불허…5일 이후 안전진단 의뢰 단지부터 적용

5일 국토교통부는 아파트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방안을 시행, 안전진단 기준의 항목별 가중치 중 구조안전성 부문을 기존 20%에서 50%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구조안전성 부문에 이상이 없으면 재건축을 불허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국토부는 주거환경 분야 세부 평가항목 가운데 ‘소방활동의 용이성’과 ‘세대당 주차대수’의 가중치를 상향 조정해 등급평가기준을 완화했다. 개정된 안전진단 기준이 5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이날부터 안전진단기관에 안전진단을 의뢰하는 단지는 개정 기준이 적용된다.

아울러 안전진단 개정과 함께 발표했던 △현지조사에 공공기관 참여 △시설물안전법상 D, E 등급을 받은 경우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가능 등의 내용이 포함된 시행령 개정안은 3월 6일부터 입법예고를 거쳐 4월 중 시행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 중 제출된 의견을 검토한 결과 이중 주차 등으로 인한 소방 활동의 어려움, 주차장 부족에 따른 생활불편 등의 사례가 많아 소방활동의 용이성 및 세대당 주차대수에 대한 가중치를 확대·조정했다”며 “다만 ‘적용유예 요청 등 시행시기 조정’에 대해서는 추가 유예 없이 예정대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거환경 및 설비노후도 가중치 대폭 하향…업계 “사실상 재건축 금지 대책”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로 노후 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주거의 질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안이‘안전’을 생각한 조치라기보다는 재건축을 늦추거나 아예 금지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정부가 안전진단 종합판정을 위한 평가항목별 기준에서 ‘주거환경’과 ‘설비노후도’ 비중을 낮추고, ‘구조 안전성’ 배점을 높인 것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기준을 통해 주거환경 비중과 건축마감·설비노후도 비중을 각각 40%→15%, 30%→25%로 낮췄다. 집값 불안을 안정시키겠다는 방침에 매몰된 나머지 국민들의 생활 건강을 걷어찬 정책이라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전문 컨설팅업체 리삭의 한용욱 대표는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연한은 70년, 철골 건물의 경우 100년이 넘는 내구연한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가 이번 안전진단 평가에서 주거환경과 설비노후도 비중을 낮추고, 구조 안전성 부문에 가중치를 둔 것은 결국 재건축을 하지 말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하면서 노후 아파트에서 오래된 설비시설을 사용하는 기간이 늘어나 주민들의 생존권과 안전권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설치되는 설비시설의 노후도를 판단할 법적 내구연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비업계 관계자는 “제조사들이 정한 자체 내구연한은 있지만 법적으로 정해진 연한은 없다”면서 “이 때문에 노후화로 성능이 떨어진 설비시설을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강북의 재건축단지 주민은 “배관이 노후화돼 녹물이 나오거나 배관이 터지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강과 인접해 있는 한 아파트단지의 경우 1층 화장실 변기에서 쥐가 나올 정도로 설비시설이 노후화돼 있다”며 “30년 이상 노후화된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은 ‘생존’이지 ‘생활’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후 설비시설만 따로 교체하는 방안도 있지만 비용이나 구조적인 측면에서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공동 설비시설의 경우 가구별로 공사를 진행하기 어렵고 주민동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배관 파손으로 인한 침수 등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설비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 방침과 관련해 정부는 안전진단 본래 취지를 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집값 조절용 카드로 안전진단에 손을 댄 정황이 역력하다”며 “재건축 투기를 일시적으로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일으켜 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하수 기자  hskim@hou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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