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이주비 대출 ‘절벽’에 재건축·재개발사업 ‘비상등’
조합원 이주비 대출 ‘절벽’에 재건축·재개발사업 ‘비상등’
정비사업장에 불어닥친 금융규제 파장
  • 김하수 기자
  • 승인 2018.04.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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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과열지구 LTV 60% → 40%로 축소
조합원 전전긍긍… 주택 공급 차질 우려 

[하우징헤럴드=김하수기자] 정부의 금융규제 강화 기조로 서울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이주비 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서울 정비사업구역에 비상이 걸렸다. 이주비 대출을 받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이주를 할 계획이었던 조합원들은 자금 계획과 대체 주거지 마련 계획이 틀어져 난감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출 조이기 정책에 투기와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에 대한 구제방안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주비 대출 한도 축소…조합원 “돈 없어 이사도 못가”

이주비 대출은 재건축·재개발구역 철거가 시작될 때 소유자들이 대체 거주지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집단대출이다. 과거에는 조합을 통한 집단대출 방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강남권 재건축에 투자자금이 몰리고 사업비 규모를 줄이려는 조합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개인이 담보대출 형태로 빌리는 게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이주비 대출 시 담보인정비율(LTV) 60%(기본 이주비 30%, 추가 이주비 30%)를 적용받았지만 지난해 8·2 대책 이후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대출 한도가 40%로 크게 줄었다.

특히 강남 4구와 용산구, 성동구 등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11개 구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이미 한 건이라도 받았다면 추가 대출이 불가하다. 이로 인해 관리처분인가 이후 당장 몇 달 안에 짐을 싸야 하는 재건축·재개발구역 조합원들의 경우 자금 계획과 대체 주거지 마련 계획이 틀어져 난감해 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통상 이주비는 기존 대출을 갚거나,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상환하는 용도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이에 강남 재건축단지 조합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직장 학교 등을 이유로 계속 강남권에 머물기를 원하지만 이주비가 턱없이 부족해서다. LTV 40%로는 전세보증금을 상환하거나 새집을 구할 만큼 돈을 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초구의 한 재건축조합 조합원은 “조합원 대부분이 강남 입성을 위해 대출을 왕창 끼고 들어온 서민들”이라며 “세입자와의 계약기간이 곧 끝나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현재의 대출 한도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단독주택 재건축 사업장의 경우 타격이 더 크다. 구역 내 10여년 이상 장기간 거주한 원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투기꾼과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부의 대출규제 정책으로 투기와는 상관없는 원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방배동의 한 단독주택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이주비 대출과 관련해 조합과 시공자가 1주일에도 몇 번씩 회의를 하지만 매번 답 없이 한숨만 쉬다가 끝난다”며 “강화된 대출규제 탓에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평구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구역 내 조합원별 평균 종전자산 평가액이 1억7천만원에서 2억원 정도 하는데 이들 주택 소유주 대부분이 기존 대출 1억2천만원 정도를 껴안고 있는 분들”이라며 “현재의 이주비 대출로는 혼자 살만한 집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제적 여력이 없는 노인 분들의 경우 이주비 대출이 줄면 다른 방법을 찾기 힘들다”며 “정부의 대출 조이기 정책에 투기와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살아온 분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기 관계없는 재개발구역 1주택자도 피해

재개발 구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세대주가 이주비에서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고 나면 남은 자금이 없어 정작 세대주가 이주할 임시주택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조1구역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40~50년간 산 사람이 대부분이라 이주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나면 집주인들은 이사 갈 돈이 없어 난감한 상황에 봉착해 있다”며 “이주비가 모자라 세도 못 빼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곳 재개발 조합원의 상당수는 오래된 주택 한 채가 재산 전부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강남 재건축을 향한 잣대를 재개발 사업장까지 확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 한남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세입자가 여럿 있는 다가구주택의 경우 합산 보증금액 규모가 수억에 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이주비 대출한도가 줄어들거나 막히면 타격이 크다”며 “마땅한 자금 조달 방법이 없는 조합원에게는 가격을 낮춰서라도 거래가 막히기 전 입주권 처분을 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주비 대출 규제로 주택 공급 차질 우려

이주비 대출 규제 강화로 이주지연 등 재건축·재개발 사업진행 속도가 느려질 경우 전반적인 주택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이주비 갈등으로 이주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 뿐만 아니라 재개발 사업진행에 차질이 생기면서 결국 예정된 시기에 공급돼야 할 주택물량이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며 “이는 수급 불균형에 따른 시장 전반의 주택가격 폭등 우려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최근 금융당국이 집단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 거부나 대출금액 감액, 금리 인상 등으로 사업추진이 지연되는 정비사업장들이 늘고 있다”며 “이는 주택사업자 뿐만 아니라 사업 지연에 따른 이자 부담 등으로 조합원 등 실수요자까지 피해가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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