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 기획 '정비사업 규제혁파'... 재건축 안전진단
창간14주년 기획 '정비사업 규제혁파'... 재건축 안전진단
노후아파트 녹물·석면 노출로 건강 위협 받아도 재건축 불가
  • 문상연 기자
  • 승인 2018.05.23 1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조안전성 문제있을때만 허용 … 졸속규제 논란
양천·노원·강동구 지역 아파트 주민들 반발 확산 

[하우징헤럴드=문상연기자] 지난 3월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 시행으로 인해 재건축을 준비하는 전국의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국토교통부가 구조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재건축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행정예고 후 불과 10일 만에 기습 시행하는 꼼수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고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던 양천구, 노원구, 강동구 등의 주민들은 허탈감과 분노에 휩싸였으며 졸속으로 이뤄진 안전진단 강화에 대한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낡아도 구조에 문제없으면 재건축 불허…주거환경 및 설비노후도 가중치 대폭 하향

지난 2월 20일 국토교통부는 재건축사업의 구조안전성 확보, 주거환경 개선 등의 제도 취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안전진단 기준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무분별한 재건축을 막기 위해 재건축사업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특히, 안전진단 기준의 항목별 가중치 중 구조안전성 부문을 기존 20%에서 50%로 상향했다. 사실상 구조안전에 이상이 없으면 재건축을 불허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또한 이번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기준을 통해 주거환경 비중과 건축마감·설비노후도 비중을 각각 40%→15%, 30%→25%로 낮췄다. 노후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안전진단 종합판정을 위한 평가항목별 기준에서 ‘주거환경’과 ‘설비노후도’ 비중을 낮추고, ‘구조안전성’ 배점을 높인 것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그동안 재건축사업의 추진을 결정하는 첫 단추인 안전진단의 절차와 기준이 지속 완화돼 왔다”며 “이번 제도개선을 통해 앞으로 재건축사업이 구조안전 확보, 주거환경 개선 등 재건축 취지에 맞게 사업이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21일 발표된 ‘안전진단 정상화 방안’을 10일 간의 행정예고를 거쳐 3월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국토부는 예고기간 동안 제출된 의견 중에서 최근 안전과 관련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소방활동의 용이성 △세대당 주차대수에 대한 가중치를 확대·조정키로 결정했다. 주거환경분야 세부 평가항목 가운데 ‘소방활동의 용이성’과 ‘세대당 주차대수’의 가중치를 각각 0.175에서 0.25, 0.20에서 0.25로 상향 조정한 것이다.

또한 주거환경 평가에서 전체 등급이 최하인 E등급을 받으면 구조안전성 등 다른 평가 없이 바로 재건축을 할 수 있게 하는 개선안도 마련했다. 아울러 국토부는 재건축 연한(30년)을 채운 아파트 단지가 안전진단에서 D등급인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은 경우 건설기술연구원과 시설안전공단의 적정성 검토를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구조안전 문제없으면 새 기준에선 C등급으로 재건축 불가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이 시행되면서 당장 재건축사업을 추진하던 단지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강동구의 재건축 예정단지들은 이미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새로운 안전진단 기준을 적용받게 되면서 재건축 추진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동구청에 따르면 해당 단지들은 지난해 현장조사를 실시해 안전진단이 필요하다고 인정돼 정밀안전진단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국토부가 지난 2월 21일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을 행정예고한 후 단 10일만에 기습시행에 들어가면서 안전진단기관을 선정·계약하고 안전진단에 들어간 단지에 한해 종전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앞길이 막힌 상황이다.

이들 단지들은 기존 안전진단 기준을 적용했을 경우 D등급 이하의 판정을 받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안전진단 기준을 적용할 경우 비중이 50%나 되는 구조안전성 항목에서 B등급 이상을 받게 되면서 전체 안전진단 등급이 C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안전진단에서 D등급 판정을 받더라도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의무화했기 때문에 기존과 같은 조건부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실제로 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2차아파트 재건축준비위는 안전진단 관련 기관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은 결과 새로운 안전진단 기준 적용시 전체 61.2점을 받아 C등급으로 재건축 추진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노후도와 주거환경평가, 비용분석에서 D등급이 예상되지만, 구조안전성에서 B등급을 받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구조안전성 평가 기준에서 건축물 기울기 및 기초침하에서 A등급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삼익그린2차아파트 재건축추진 준비위원회 최재형 위원장은 “우리 단지는 작년 2월에 예비안전진단을 획득했으나, 국토부가 기습적으로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해 현행법으로는 재건축 추진이 불가능해 졌다”며 “지금 기준으로는 준공 후 40년이 넘어도 재건축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는 노후아파트의 열악한 환경 속에‘생활’이 아닌‘생존’하고 있는 주민들의 생명과 삶의 질을 억압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주거환경평가 E등급도 사실상 불가능

국토교통부는 강화된 안전진단기준에 대해 열악한 주거환경을 고려하는 동시에 구조안전성 확보라는 재건축사업의 본래 취지에 맞는 제도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층간소음이나 주차장 부족 등의 주거환경 평가 결과가 E등급을 받은 경우 다른 평가 없이 바로 재건축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주거환경평가에서 E등급을 받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삼익그린아파트2차 준비위원회가 밝힌 주거환경 가상 평가 기준에 따르면 심각한 주차난과 층간소음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고 있지만, 예상점수는 36점으로 D등급에 불과해 주거환경평가로 재건축 추진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의 주거환경분야 평가항목 가중치를 살펴보면 △도시미관 2.5% △소방활동의 용이성 25% △침수피해 가능성 15% △세대당 주차대수 25% △일조환경 10% △사생활 침해(층간소음) 10% △에너지 효율성 5% △노약자와 어린이 생활환경 5% △실내생활 공간의 적정성 2.5%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기준을 삼익그린2차아파트에 적용해 볼 경우 세대당 주차대수가 0.4대로 E등급을 받게 되지만 다른 항목에서 B~D등급을 받아 결국 주거환경평가에서 D등급을 받게 돼 재건축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주거환경평가에서 E등급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이라며 “결국 구조안전성에 문제가 없을 경우 재건축을 아예 할 수 없도록 막는 게 현행 안전진단 기준의 내용이다”고 말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