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 기획 '정비사업 규제혁파'… 재건축 재개발 계약업무 처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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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 선정 때 전자입찰 의무화… 사실상 제한경쟁입찰로 변질
  • 김하수 기자
  • 승인 2018.05.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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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적격심사 평가 … 조합·업체 ‘짬짜미’ 우려
일반경쟁·전자입찰 실효성 논란 … 법 개정 시급 

▲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음.

[하우징헤럴드=김하수기자] 재건축·재개발조합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지난 2월 9일 시행된 정비사업 용역 일반경쟁입찰 및 전자입찰시스템 등록 의무화 제도가 시장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리의 온상지가 돼버린 정비사업 용역업체 선정을 개선한다는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일반경쟁입찰과 전자입찰 도입이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다.

일반경쟁입찰 시 조합들이 적격심사방식을 활용해 허무맹랑한 배점기준을 내세워 특정 업체를 제외시키는 등 사실상 과거의 제한경쟁과 유사한 입찰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협력업체 선정시 ‘일반경쟁+전자입찰’ 의무화…업계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업계에서는 정비사업 협력업체 선정시 의무화된 일반경쟁입찰과 전자입찰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반경쟁입찰과 전자입찰 도입이라는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다.

제도가 바뀌기 전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용역업체 입찰은 일반경쟁·제한경쟁·지명경쟁 등으로 진행돼 왔다. 이중 지명경쟁입찰과 제한경쟁입찰은 일부 업체들의 소위‘들러리 수주’수단으로 악용돼왔던 게 사실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9일 전부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과 함께 하위규정인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공식 발표했다. 기준에 따르면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정비사업에 대해서는 ‘전자조달의 이용 및 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조달청 누리장터의 전자입찰 방식을 통해 일반경쟁방식으로 협력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이 경우 조합은 대의원회를 통해 △최저가방식 △적격심사방식 △제안서평가방식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전자입찰 절차를 진행하도록 했다.

최저가방식은 최저가로 입찰한 자를 선정하며, 적격심사방식은 입찰가격과 실적·재무상태·신인도 등 비가격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선정하는 방식이다. 제안서평가방식은 입찰가격과 사업참여제안서 등을 평가해 선정하는 방법이다.

계약업무 처리기준 시행 이후 조합들은 용역업체 선정 시 대부분 적격심사방식을 택하고 있다. 업체의 적격성을 심사하는 실적·부채규모·기술인력 등의 배점 항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조합이 특정업체를 염두에 둔 자체적인 평가기준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정비업체 대표는 “민간 조합방식의 경우 제한경쟁입찰 적용 규정이 현재 법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현행 계약업무 처리기준 하에서는 조합이 자체 평가기준을 내세워 특정 업체를 제외시킬 수 있다”며 “사실상 무늬만 일반경쟁입찰이지 과거의 제한경쟁입찰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조합-사무실 거리·소속 변호사 수’ 등 조합 주관적 평가기준 논란

문제는 적격심사 시 업체 선정을 위한 평가 항목들이 조합의 입맛에 맞춘 매우 주관적인 기준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입찰공고에 명시된 업체의 적격성을 심사하는 실적·부채규모·기술인력 등의 배점 기준 항목들을 살펴본 결과 다소 억지스러운 평가 항목들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도 수원시의 한 재개발조합의 경우 적격심사방식으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구역 이해 및 접근성’ 평가항목에 ‘사무소 위치’를 평가 기준으로 삼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조합사무실과 업체사무소 직선거리를 △반경 15km 이내(30점) △반경 30km 이내(15점) △반경 30km 초과(5점) 등으로 평가등급을 분류한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이 정비업체 선정 시 ‘용역수행 실적’, ‘구역 이해도’ 등에 높은 비중을 두고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해당 조합이 ‘사무소 위치’를 평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는 조합이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편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변호사 선정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조합은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업무를 담당할 변호사 선정 과정에서 ‘소속 변호사 수’를 평가 기준으로 삼아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조합이 △120명 초과(5점) △90~120명(4점) △60~89명(3점) △31~59명(2점) △30명 이하(1점)로 평가등급을 분류해 대형법인만 입찰참여 및 선정 가능성이 있도록 배점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홍봉주 H&P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변호사 선정의 경우 평가기준으로 관련 소송의 실적, 수행 능력 등이 우선시돼야 하는 데 조합이 단순히 법인에 소속된 변호사 수를 배점 기준으로 내세워 대형법인만 입찰 참여 및 선정가능성의 길을 열어놓은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향훈 법무법인 센트로 대표변호사는 “실제 정비사업에 전문성이 부족한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 뒤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사건을 진행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게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격심사방식 뿐만 아니라 제안서평가방식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초기 단계 사업장이 협력업체를 선정할 경우 제안서를 만들 수 있는 기초자료가 부족해 제안서 평가방식의 실효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정비업체 관계자는 “제안서평가방식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기초 자료가 충분하고, 이를 토대로 사업에 참여하려는 협력업체의 각오, 방침 등이 제시돼야 하는데, 정비계획 수립 단계 등 사업초기 단계에서는 기초자료 부족으로 제안서평가방식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 “일반경쟁·전자입찰 실효성 의문…법 개정 시급”

업계에서는 정비사업 협력업체 선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도입된 일반경쟁입찰과 전자입찰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조속한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실제 협력업체 선정 업무에 적용해 보니 이 기준이 얼마나 부실하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 정해진 2월 9일의 시행 날짜에 맞추기 위해 국토부가 급하게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만들려다가 결국 미완성 상태에서 발표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진희섭 주거환경연구원 부장은 “국토부가 성격이 각기 다른 방대한 정비사업 협력업체를 ‘계약업무 처리기준’이라는 단일 기준에 억지로 집어넣으려다 보니 발생한 사달이다”며 “조속한 제도 보완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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