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변곡점에 선 주택정책의 고민
인구절벽 변곡점에 선 주택정책의 고민
  • 김우진 / (사)주거환경연구원원장
  • 승인 2018.05.3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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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징헤럴드=김우진 원장] 변곡점이란 수학적 용어로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위의 점이다. 주택에 있어서 그 첫 번째 변곡점을 꼽으라면 인구절벽 현상이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2022년까지 1인가구 증가 등의 영향으로 가구 수가 미미하게 증가하다가 2023년부터는 줄어든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주택문제는 주택부족과 가격급등 그리고 투기로 공식화 되었고, 주택정책은 어떻게 공급하느냐 혹은 어떻게 수요를 억제 하느냐 였다면 이제는 주택문제와 해법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국가성장의 터전은 도시였다. 가발, 봉제로 대표되던 경공업에서 조선, 제철 등의 중공업, 그리고 전자, 자동차산업으로 이어지는 산업화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도시는 인구의 자연증가에 더해 농어촌을 떠나온 가구들의 증가로 급격히 성장했다.

이러한 와중에 주택은 항상 부족했고, 주택가격은 하락하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만들어졌으며, 주택투기는 자산 불평등의 주범으로 사회 문제였고, 주택문제는 도시문제와는 또 다른 별도의 장르였다.

그러나 2010년으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흐름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지속적 성장을 이끌 새로운 먹거리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3% 성장률이 고착되기 시작했다. 3% 성장도 굴뚝산업들은 쇠퇴하는 가운데 전자, 자동차 등 일부 수출산업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과거 우리경제를 이끌었던 산업들 중심이었던 도시나 지역들이 그 화려한 영화를 뒤로하고 침체와 쇠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경제가 지속적 성장을 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기의 주택문제는 어느 도시나 도시 내 어떤 지역이든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조선산업이 침체기에 빠져드는 거제시의 주택문제와 삼성전자 연관업체들이 속속 들어서는 화성시의 주택문제는 같을 수 없다. 또한 한 때 굴뚝산업의 중심지였던 영등포구와 금융・서비스 산업의 중심지인 강남의 주택문제 역시 확연히 다르다.

이제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고 있다. 주택보급률 100%라는 의미는 가구수(일반가구)와 주택수가 같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새로운 주택이 지어진다면, 가구 수가 증가하지 않는 한 한 가구는 공가로 남는다는 이야기이다.

신규주택이 지어지면 그 주택에 들어올 가구는 지역경제가 기울어 가고, 따라서 주변 환경은 악화되는 지역에 살던 가구와 도시 외곽의 낡은 주택에 살고 있던 가구일 확률이 높다. 노후화된 지역에 공가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지역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서구의 슬럼(Slum)을 걱정해야 할 단계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주택에서만 찾을 수 없다.

또한 도시문제와 주택문제도 별개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지역경제가 쇠퇴하고 주변 생활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용적률을 조금 높여 준다고 재개발・재건축사업이 원활히 추진되지 않는다. 반면 지역경제가 쇠퇴하는 지역에서 세제강화나 LTV, DTI 규제 강화는 재정비 사업의 치명적 제약이 된다.

강북의 국민주택규모 A사 주택과 강남의 같은 규모 A사 주택과는 구조나 실제 건설비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가격이 2배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거주환경의 차이 때문이다. 직장과 가깝고 혹은 직장과의 교통이 편리하고, 생활편익이 잘 갖추어져 있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더욱 문제는 고가의 주택이 몰려있는 단지에는 유명한 의사들이 개업하고, 명문 학원도 모여든다. 주택가격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 소득의 불평등, 자산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건강이나 학력의 불평등까지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 보급률 100%시대에 낙후 된 근린생활환경은 내 버려두고 신규 공공주택의 대량공급은 열악한 기존 도심의 공가를 양산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인천의 경우 송도, 청라 등 대규모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도심 가구가 신도시로 빠져 나가고, 주택가격은 하락하며, 도심은 쇠퇴일로를 겪고 있는데도 재정비사업이 추진되지 않고 있는 것을 직접 보고 있지 않는가?

서구에서 보는 슬럼이 우리나라에 생기기 전에, 지역 간 양극화가 더 이상 악화되기 전에, 주택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정책의 수립, 집행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이제는 신규주택 공급이나 주택담보 대출규제와 같은 주택정책보다는 도시문제 특히 근린생활환경 재생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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