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재개발사업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재개발사업
  • 박순신 / (주)이너시티 대표이사
  • 승인 2019.06.2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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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징헤럴드=박순신 대표] 4차 산업시대이다. 5G 통신서비스가 개시되었고, 자율주행자동차가 미국과 유럽에서는 벌써 운행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아마존은 드론으로 물건을 배달한다. 사물인터넷(IoT)으로 가정, 학교, 직장에서의 변화가 하루가 다르게 회자된다.

이런 시대에 도시는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가? 입지 좋은 곳에는 4차 산업시대에 최적화된 최첨단 빌딩과 주거단지가 들어서고, 초국적 엘리트들이 일하고 거주할 것이다.

그렇지만 4차 산업의 긍정적인 변화가 곧바로 도시 곳곳에 다다르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인터넷과 연결시킬 최첨단 사물들이 없거나 5G망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노후화된 주거지에서는 여전히 불편하고 쇠퇴한 주거지일 가능성이 크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재개발사업은 그런 주거지에서 계속될 것이다.

재개발사업의 대상지가 되는 지역은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해있다. 오래되고 낙후된 주거지역이기에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용도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기 십상이다. 연령, 직업, 생활양식이 다른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잠시 머무르거나 평생을 살아간다. 입지 좋은 첨단 아파트단지에서 흔히 발견되는 전문직 중상류층이라는 사회인구학적 동질성과 비교하면 그 이질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재개발사업의 대상지가 되는 지역은 대부분 주거시설, 상업시설, 교육 및 업무시설, 또 때로는 공업시설이 혼재한다. 낙후된 지역이기에 혼재하는 시설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거주자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일부 상업시설 정도가 근근히 작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복잡한 지역이다.

재개발사업은 지금껏 관성적으로 복잡한 도시기능을 가진 지역을 단일한 기능, 주거지역으로, 전환했다. 그 과정에서 노후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고령자들과 저소득층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부분 수입이 많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첨단아파트와 같은 새집으로 이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법과 제도는 재개발사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만한’(affordable) 집보다는 ‘최고의’ 주택단지를 건설하라고 강제한다. 그곳에는 폭넓은 도로, 널찍한 공원, 세대별 주차장 등을 반드시 계획해야만 새집을 짓는 허가가 난다.

최고의 집은 재개발사업지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에게는 너무 벅차다. 재개발로 신축되는 첨단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는 사람은 안정적인 직장, 상당히 높은 소득이 보장된 4차 산업의 주역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에게 거주지를 내준 원주민들은 또 다른 쇠퇴한 도심이나 외곽도시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4차 산업시대가 가져올 낙관적인 미래를 그리는 전문가는 많지만, 4차 산업시대에도 여전히 비숙련·저소득층이 거주하고 있는 노후한 재개발사업 대상지가 되는 지역에 관심을 갖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4차 산업이 부상하고,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의 반열에 들어서고, 세계 최고의 업무단지가 강남에 만들어져도, 그 이면에서 낡은 재개발사업 방식과 제도가 여전히 관철된다.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균등발전에서 재개발사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전문가는 더욱 찾기 힘들다.

4차 산업이 이루어지는 최첨단의 업무지구, 초국적 엘리트들이 거주하는 스마트한 주거단지는 땅 위에만 지을 수 있다. 그 땅은 배후도시와 그림자 노동을 쉽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입지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배후도시와 그림자노동을 배려하지 않는 혁신도시, 창조도시, 문화도시 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름답고 편리하고 쾌적하여 살만한 도시는 첨단 건물이나 뛰어난 경관을 만든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혜택을 고루 누리고 함께 활력있는 도시문화를 만들 때 가능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재개발사업은 오랫동안 사업성이 뛰어나고, 보기에 좋고 멋진 도시공간을 조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노후지역이나 배후도시로 내몰리는 저소득층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는 사회적 의제에서 사라졌다. 국가·지자체·정치인·전문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오로지 재개발사업을 시행하는 토지등소유자의 몫이었다.

아름답고, 편리하고, 쾌적한데다 4차 혁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살만한 도시는 특정 계층에게 과도한 책임이나 혜택을 지울 수 있다. 재개발사업에서 사회전체가 지불하고 누려야하는 비용과 혜택을 모호하게 설명하고, 특수한 이해관계를 숨기고,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정책적, 정치적 결정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울 것이다.

도시재개발사업은 오래되고 복잡한 도시공간구조를 과도하게 단순화시켰다. 복잡한 도시공간에 담겨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지도 못했다. 원래의 취지와 다르게 도시 저소득층이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용을 상승시켰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른 용도, 다른 기능으로 존재했던 수많은 사물들이 인터넷으로 결합돼 새로운 용도, 기능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사물로 태어난다.

우리의 도시도 새롭게 태어나야한다. 오래된 관행과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와 법을 고집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보기에만 아름답고 좋은 도시, 일부 계층만 살기 좋은 도시가 아니라, 오래되고 낙후된 지역의 거주민들도 함께 살만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발상을 뒷받침하고 이끌어 줄, 긴호흡으로 도시의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와 전문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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