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영세조합원 잡는 이주비 규제… 재개발 뜨거운 논쟁
원주민·영세조합원 잡는 이주비 규제… 재개발 뜨거운 논쟁
  • 권동훈 기자
  • 승인 2019.07.09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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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비 규제 원주민과 영세조합원만 울려
실수요자 보호 위해 선별적 완화 필요

지난해 12월 서울·수도권의 주요 재건축·재개발조합 주민들이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를 방문해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정책의 시급한 개선을 요구하는 모습.
지난해 12월 서울·수도권의 주요 재건축·재개발조합 주민들이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를 방문해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정책의 시급한 개선을 요구하는 모습.

[하우징헤럴드=권동훈기자] 정부가 대출규제를 강화하면서 시공사들이 수주권을 따내기 위해 정부 규제를 틈타 이주비 지원책을 과도하게 펼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일례로 서울 구로구 고척4구역 재개발사업 시공자 선정을 두고 대우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이주비 지원과 관련해 시비가 붙은 바 있다.

대우건설이 입찰제안서에 사업촉진비 명목으로 제시한 무이자 150억원의 추가지원비에 대해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자 선정을 위해 제공하는 재산상 이익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우건설은 추가이주비에 대한 무이자를 분명히 명시해 무상지급이 아니라고 맞대응했다.

▲이주비 지원이 도대체 뭐길래

이주비 지원이 이토록 뜨거운 감자가 된 데는 2017년 정부가 내놓은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8·2대책)’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이 발표에서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60%에서 40%로 낮추며 부동산 투기과열을 막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대출 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실수요자인 세입자와 조합원이 오히려 피해를 입고 있다는 말이 많다. 

대출기준 강화로 공사 기간 동안 거주할 집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전세입자에게 지불해야 할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집주인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업 지연으로 인한 손실비는 물론 임대인과 임차인 간 보증금반환소송도 발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LTV 기준 강화가 실수요자의 주거 문제를 해소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이들의 이주와 재정착을 막고 있어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기 잡으려다 원주민 잡는다

현행 대출규제는 부동산 투기를 막는다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정비사업이 주택공급을 원활히 하고 구도심을 재활성화시키는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부동산 과열을 조장한다고 평가해 대출규제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이에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대출규제를 정비사업 대출에 그대로 시행하는 것은 합리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이 깐깐해짐에 따라 영세조합원과 같은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마련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출이 필요하다는 것은 결국 자금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하므로 원주민인 영세조합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시간문제다. 

실제 서울 시내 한 재개발구역 관계자는 “구역 내 조합원 1/3 이상이 이곳에서 40~50년간 거주한 어르신들인데, 이분들은 대출한도가 줄어들어 집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현 정부의 이주비 대출 규제는 자금여력이 부족한 영세조합원들을 결국 그 지역에서 내모는 것이다”고 전했다.

다가구주택 조합원도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어 세입자들도 걱정이 늘어가고 있다. 집주인이 이주비 대출을 받아도 전세보증금이 부족해 ‘전세금 미반환’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재개발구역의 전세 거주자는 “곧 이사를 가야 해 집주인에게 새 전셋집에 입주하는 날 전세금을 반환해 달라 요청했지만, 집주인의 대출이 막힐 경우 돈을 제때에 마련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해 새 집의 전세계약이 깨질까봐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인근 부동산 전문가는 “기존의 LTV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결국 현실적으로 건설사나 각자 친인척의 도움을 받아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과 일반인들을 모두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애꿎은 주민들이 더 크게 피해를 봐서는 안 되므로 선별적으로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세조합원에게는 LTV 규제 완화해야

한국금융연구원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LTV 규제는 원래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을 담보하고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을 유지하는 목적에 따라 취하는 조치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정부는 2003년부터 LTV 규제를 주택시장의 경기가 과열되면 강화하고, 경기가 위축되면 완화하는 형태로 적용해왔다. 즉, 주택시장 조절이라는 명목 아래 LTV 규제를 너무 획일적으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노후화 지역을 살리는 정비사업에 부동산 투기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부터 잘못된 시각이라는 비판이 많다. 

한 업계 전문가는 “재개발·재건축을 떠나 정비구역에는 1가구 1주택자로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조합원들이 다수인데도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세력과 동일하게 대출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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