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장 정치성향 따라 남용... 재개발·재건축 '일몰제 폐지' 시급
지자체장 정치성향 따라 남용... 재개발·재건축 '일몰제 폐지' 시급
주민 77% 재개발 원해도 단순 시간 경과하면 구역해제
이해·설득 통한 갈등해소 강조하면서 일몰제 강행은 '모순'
  • 문상연 기자
  • 승인 2019.08.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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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동의에 의한 직권해제로 충분... 일몰제 시행은 불합리한 겹규제

[하우징헤럴드=문상연기자] 일몰제에 의한 구역해제가 주민의사보다는 지자체장의 정치성향에 따라 남용되고 있어 폐지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정비사업은 사업규모와 주민 수 등 구역 특성에 따라 조합설립까지 길게는 십년 이상 소요되는데 일몰제는 모두 무시한 채 일정기간만 지나면 지자체장이 무조건 해제토록 하기 때문이다.

이에 주민동의에 의한 구역해제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몰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구역해제로 몰아붙이는 이중삼중의 불합리한 겹규제 구조라는 지적이다. 정비사업은 개인의 재산권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이해관계자 간 충분한 협의와 시간을 통해 신중히 결정해야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번 구역해제가 결정되면 신축 원룸·빌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주거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노후도 요건이 맞지 않아 정비사업 재추진조차 불가능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단순 시간경과로 정비사업 존폐여부를 결정짓는 일몰제를 하루빨리 폐지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일괄적 기준 적용, 기한 연장은 거부…구역해제 수단으로 전락한 일몰제

정비구역 일몰제는 일정 기간 동안 사업에 진척이 없는 정비구역에 대해 시·도지사가 직권으로 구역을 해제하는 제도다. 

문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 일몰제 적용은 기속행위지만, 일몰제 적용 연장 여부가 시·도지사의 재량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장의 정치성향에 따라 구역해제를 밀어붙일 경우, 구역사정에 상관없이 일몰제 적용 연장을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0조에는 “정비구역의 지정권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정비구역등을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부 규정으로 △정비구역 지정 예정일로부터 3년 동안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 △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된 날부터 2년 동안 조합설립추진위원회의 승인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 △토지등소유자가 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된 날부터 3년 동안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지 않은 경우(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않는 경우) △추진위원회가 추진위원회 승인일로부터 2년 동안 조합 설립인가를 신청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또한 도정법에서는 “시·도지사는 토지등소유자 100분의 30이상의 동의로 일몰기한 도래 전까지 연장을 요청하거나 정비사업의 추진상황을 판단해 존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해당 기간을 2년의 범위 내에서 연장해 정비구역등을 해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구역별 특수성을 고려해 일괄적인 규정을 적용하지 말고 주민의사를 충분히 반영해 일몰제 적용기간을 결정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일몰제 연장을 거부당하며 주민 대다수가 재개발사업 추진을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역해제로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1호로 일몰제를 적용받은 은평구 증산4구역 재개발사업은 2014년 8월 11일 조합설립 추진위원회를 승인 받았지만, 2년이 넘도록 조합설립을 하지 못해 일몰제 적용을 받게 됐다.

이에 추진위는 일몰기간이 도래하기 전인 2016년 6월 27일 전체 토지등소유자 32%의 동의를 받아 은평구청에 일몰기한을 연장 신청했지만, 서울시가 재량행위로 “2년 연장해도 사업추진(조합설립)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부동의 결정하면서 일몰제 적용을 받았다. 

추진위는 부동의 결정이 시청의 재량권 남용이라고 반박했다. 법에서 정한 연장 동의율 30%를 충족했는데도 추측에 불과한 ‘사업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만으로 부동의 처분을 내린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라는 입장이다. 나아가 추진위는 지난해 주민 동의가 조합설립 동의율 기준 75%를 넘긴 77%를 충족해 시의 추측성 판단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증산4구역 추진위는 일몰제 연장 부동의 결정에 대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지만, 지난 1월 31일 대법원은 추진위의 일몰제 기한 연장 취소신청에 대해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법원은 일몰기한 연장 여부를 서울시의 재량권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은평구 증산뉴타운 중 최대 규모인 증산4구역 재개발사업은 사업 추진 13년 만에 서울시 1호로 일몰제를 적용받아 구역 해제됐다.

▲올 10월 주민동의 직권해제 부활…일몰제는 폐지해야

구역해제 제도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이유는 구역해제가 이중삼중의 과도한 겹규제 형태의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구역해제 제도는 현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제20조(정비구역등의 해제)와 제21조(정비구역등의 직권해제)에 따라 주민동의·시장직권·일몰제 등 3가지 방법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에 가장 불합리하게 운용되고 있는 일몰제 제도에 대한 폐지 요구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일몰제는 주민 간 찬반 등의 이유로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이 오랜 기간 지연될 경우 주민 갈등이 심해지고 매몰비용 부담이 커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2012년 도입됐다. 하지만 최근 지자체가 주민의사와 관계없이 단순 시간의 경과로 일몰제를 적용해 구역해제를 결정하고 있어 본래 도입취지마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또한 최근 도정법 개정을 통해 주민동의에 의한 구역해제 방법이 부활되면서 그나마 있던 일몰제의 필요성마저 사라졌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주민동의에 의한 구역해제 방법은 추진위 구성 이전에만 직권해제가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추진위가 구성된 구역들은 주민 대다수가 사업추진에 반대할 경우 일몰제를 통해 구역해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4월 도정법이 개정돼 오는 10월 24일부터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거나 조합이 설립된 정비구역에서 토지등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로 정비구역의 해제를 요청하는 경우 시장이 직권으로 정비구역을 해제할 수 있게 된다. 이에 주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시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일몰제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정비사업 존폐는 주민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할 사안”이라며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시간의 경과만으로 시가 일방적으로 구역해제를 몰아붙이고 있는 현행 일몰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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