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기능없는 재개발·재건축 공사비 검증… 시공사·조합 분쟁 ‘불씨’될라
조정기능없는 재개발·재건축 공사비 검증… 시공사·조합 분쟁 ‘불씨’될라
정비사업장 ‘공사비검증 의무화’에 대혼란
  • 최진 기자
  • 승인 2019.12.06 1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피하려던 조합들에 사업 ‘발목’
결과 수용 안할땐 갈등 불가피… 법적 분쟁도 가능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국토교통부가 분양가상한제에 이어 공사비 검증 의무화 제도를 현장에 적용하면서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현장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검증기관인 한국감정원이 검증결과에 대한 조정기능이 없어, 자칫 조합과 시공자 간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피하려던 조합들은 검증기간 소요로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도 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분양가상한제 6개월 유예적용을 받는 재건축 단지가 한 곳도 없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 공사비 검증 시행에 조합들 신청 이어져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은 재개발·재건축 조합과 건설사 간에 발생하는 공사비 관련된 분쟁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가 새롭게 도입한 제도다. 건설사의 무분별한 공사비 증액을 막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시공자가 공사비 증액을 요청할 경우 조하의 전문성 부족으로 그 적정성을 따지기 힘들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5일 국회를 통과한 도시정비법에는 공사비 증액 규모가 일정 가준 이상이 될 경우 공사비 검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내용이 담겼다.

도정법 제29조의2 1항에 따르면 조합은 시공자와 계약 체결 후 △조합원 20% 이상이 공사비 검증을 요청한 경우 △건설사가 일정비율 이상 공사비를 증액(5~10%)하려는 경우 △공사비 검증 완료 후 증액비율이 3% 이상이면 검증을 의뢰해야 한다. 검증은 한국감정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수행한다.

국토부는 지난 18일 공사비 검증의 방법과 절차, 검증 수수료, 검증 기간 등의 세부 실행 내용이 담긴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기준’을 고시했다. 검증제도가 시행된 직후 조합들의 검증신청이 이어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시행일 당일에만 둔촌주공을 포함한 3곳의 조합이 신청의사를 밝혔다. 

▲ 조정기능 없는 검증…분쟁 요소만 남길 수도

문제는 실질적인 검증기관인 한국감정원이 검증에 따른 조정기능이 없어, 자칫 사업만 지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조합이나 건설사들 중 한 곳이라도 공사비 검증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를 조정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검증기준에 따르면 한국감정원은 변경 전·후 공사비 내역, 변경 전·후 설계도, 지질조사서, 자재설명서, 물량산출서 등 50여 가지 서류를 제출받아, 시공자가 제시한 공사비가 적절한지를 검토한다. 그리고 정해진 처리기간을 거쳐 검증결과를 조합에게 전달해야 하고, 조합은 결과 보고서를 총회에서 공개해야 한다.

공사비가 적절할 경우에는 상관이 없지만, 공사비가 과도하다는 검증 결과가 나올 경우 조합과 시공자는 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추가적인 공사비 협상이 가능하다. 시공자가 검증 결과를 받아들일 경우 조합과 협의를 통해 공사비를 낮춰 사업을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시공자가 공사비 검증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라면 조정과정이 복잡해 진다. 공사비에 대한 주민 간 분쟁, 시공자 변경, 법적 분쟁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한국감정원이 검증 결과에 대한 조정권한이 없기 때문에 조합과 시공자 간 분쟁이나 법정 소송이 진행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검증결과 문제로 조합과 시공자 간의 분쟁이 발생한다면 시공사 재선정과 법정 소송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만약 한국감정원이 엄정한 검증을 과시하기 위해 과도한 잣대를 휘두른다면 건설사가 검증으로 인한 감액부분을 예측해 미리 공사비를 올릴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공사비 검증이 자칫 공사비를 더 오르게 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감정원 공사비 검증 담당자는 "그동안 조합은 전문성 부족으로 공사비 증액 과정에서 건설사들에게 끌려 다녔던 것이 현실"이라며 "공사비 검증 제도로 적정한 공사비를 조합이 사전에 알 수 있어서 이제야 조합과 건설사가 대등하게 공사비 증액을 협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해명했다.

▲ 검증기간 소요로 정비사업 지체

공사비 검증 시행에 가장 타격을 받은 곳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갈길이 바쁜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6개월의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을 마련했지만, 공사비 검증기간이 최소 2개월, 최장 3개월 이상으로 예측되면서 내년 4월 29일까지 입주자 모집공고를 하려는 계획이 무산될 상황이다.

지난 18일 고시된 공사비 검증기간에 따르면 공사비 총액이 1천억원 미만 사업지는 60일의 검증기간을, 1천억원 이상 사업지는 75일 내로 검증을 마치도록 기간을 정했다. 여기에 부득이한 경우 10일 이내로 한 차례 기한 연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연장 기간까지 모두 포함할 경우 검증기간은 최대 85일이다.

또 한국감정원은 신청서와 부대서류를 검토한 뒤 서류의 보완을 요청할 수 있다. 이때 서류보완이나 추가서류 요청을 할 경우 걸리는 기간은 검증기한과 별도다. 서류보완에 대한 요청은 횟수나 기한의 제한이 없다.

건설사 관계자는 “전국 정비사업 구역에 대한 공사비 검증을 한국감정원 한곳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검증 과부하가 걸릴 시 사업진행에 차질은 불가피하다”라며 “전문성과 인력 확보, 검증 사례에 대한 것도 아직 입증된 것이 없기 때문에 검증제도 도입이 성급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만약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던 조합들이 공사비 검증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게 된다면 논란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유예기간을 주면서 분양가상한제 소급적용 논란을 피했는데, 공사비 검증으로 다시 논란이 된다면 실효성 없는 분양가상한제 자체가 다시 도마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