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징헤럴드=김상규 전문기자] 환경영향평가를 놓고 서울시의 갈팡질팡 행정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2019년 7월 2일까지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신청한 사업은 제외한다고 했다고 9개월이 지나서는 제외할 수 없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지난해 1월 3일 서울시는 사업면적 9만㎡ 이상인 정비사업장에 적용하던 환경영향평가를 연면적 기준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된 환경영향평가 조례를 공포했다. 지난해 1월 8일에는 서울건축사회, 환경영향평가협회, 제1종 환경영향평가업체 27개소에 ‘서울특별시 환경영향평가 조례 개정사항 안내 및 이행 철저 요청’ 공문을 보냈다.
환경영향평가 등 ‘서울특별시 환경영향평가 조례’가 2019년 1월 3일자로 일부 개정 공포됐으니, 2019년 7월 3일부터 공동주택 등 건축물 연면적 10만㎡ 이상 모든 건축물 사업에 대한 사업계획 등의 승인(인허가 등) 전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이행하여 관련 법령을 준수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공문 하단의 단서에 2019년 7월 2일까지 도시정비법 등에 따라 사업시행계획인가(승인 등)를 신청한 사업은 제외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4일 구청에 보낸 공문 통해 입장 바꿔
공문을 발송한 지 약 9개월 후인 지난 10월 4일 서울시는 각 구청에 ‘서울특별시 환경평가 조례 대상사업 관련 안내 변경’이라는 공문을 배포했다. 단서 내용을 적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공문 내용은 “환경정책과-395(2019.1.8.)호 공문과 관련 ‘서울특별시 환경영향평가 조례’ 별표1 제1호 자목 개정에 따른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에 대하여 당초 위 조례 시행 전(2019.7.2) 도시정비법 등에 따라 사업시행계획인가(승인 등)를 신청한 사업은 제외되는 것으로 안내”했으나 “법률자문 및 내부 검토의견 등을 종합한 결과, 2019.7.3. 이후에는 사업시행계획 인가(승인 등)를 신청한 사업을 포함하여 건축허가 전의 연면적 10만㎡ 이상 건축물 사업 전체가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임을 알려드리니 대상사업이 환경영향평가를 준수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공문을 개정된 조례를 소급해 적용한다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 변호사는 “조례의 소급적용으로 해석할 경우 법률의 소급적용에 따른 피해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그것이 경과규정이다”고 지적했다.
▲직격탄 맞은 사업 주민들 피해 확산
서울시의 갈팡질팡 행정으로 직격탄을 맞은 사업구역들의 주민들은 환경영향평가 실시로 인해 사업비가 늘어나고 사업기간이 상당히 지체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조례개정의 피해를 입고 있는 노원구의 한 조합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구역은 사업기간이 약 30개월, 사업비가 약 160억원 정도 늘었다.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크게 증가될 수 있다는 얘기다.
큰 피해가 예상되는 대상 사업지의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의 방침을 믿고 사업을 진행했다가 큰 피해를 보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현재까지 노량진3구역 재개발사업, 상계1구역 재개발사업, 한남하이츠 재건축사업, 상도민영주택사업, 이촌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등 5개 사업이 피해가 예상되는 현장으로 파악되고 있다.
직격탄을 맞은 재개발조합의 한 조합장은 “서울시의 공문은 공식적인 행정행위이다. 조합들은 서울시의 공문을 받으면 시가 요구하는 대로 사업을 진행해 나간다”며 “그런데 서울시가 자신의 행위를 뒤집었다. 시의 안내대로 사업을 추진하던 조합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는데 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례개정을 통해 상위법과의 일관성, 제도운영의 신뢰성 회복해야
업계의 또 다른 전문 변호사는 이번 개정조례는 경과규정을 두지 않아 특정 조합 또한 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석할 경우, 오히려 헌법상 법치주의원리에서 도출되는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반되어 위헌적인 조례가 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법원 판례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7년 판결에서 “법률의 개정에 있어서 구 법률의 존속에 대한 당사자의 신뢰가 합리적이고 정당하며, 법률의 개정으로 야기되는 당사자의 손해 내지 이익 침해가 극심하여 새로운 법률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이 없다면 입법자는 경과규정을 두는 등 당사자의 신뢰를 보호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이와 같은 적절한 조치 없이 새 법률을 그대로 시행하거나 적용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이는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 원리에서 도출되는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고 판시했다.
경과조치가 있는 다른 유사 조례와 비교해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의회는 해당 상임위원회를 열어 조례의 개정을 논의했지만 보류되었다고 한다. 그 사이 해당 구역 주민들의 피해는 점점 현실화 하고 있다. 피해주민들을 팽개치지 않고 구제하기 위한 조례의 개정과 서울시의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