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정비업체 임의해지 못할 수 있다
조합, 정비업체 임의해지 못할 수 있다
  • 홍봉주 대표변호사 / H&P법률사무소
  • 승인 2020.03.1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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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징헤럴드=홍봉주 변호사] 조합과 정비업체가 체결하는 계약은 행정업무대행계약으로 민법상 위임계약에 해당한다.

민법 제689조 제1항은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하면서, 2항은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하여 위임계약 해지자유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비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조합은 원칙적으로 정비업체가 특별히 채무불이행을 하지 않더라도 정비업체와의 행정용역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정비업체에게 채무불이행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판결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민법 제689조 제1, 2항은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당사자의 약정에 의해 위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그 내용을 달리 정할 수 있다.

그리고 당사자가 위임계약의 해지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에 관해 민법 제689조와 다른 내용으로 약정을 체결한 경우, 이러한 약정은 당사자에게 효력을 미치면서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거래의 안전과 이에 대한 각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고 볼 수 있으므로, 이를 단순히 주의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당사자가 위임계약을 체결하면서 민법 제689조 제1, 2항에 규정된 바와 다른 내용으로 해지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을 정했다면, 민법 제689조 제1, 2항이 이러한 약정과는 별개 독립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약정에서 정한 해지사유 및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또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당사자 간 법률관계도 위 약정이 정한 바에 의해 규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가령, 조합과 정비업체 사이에 체결된 용역계약에 조합이 해제 또는 해지를 할 수 있는 사유를 정비업체의 채무불이행과 관련된 내용으로 한정하면서, 일정기간의 계약이행 기간을 둘 것과 서면통보가 이루어질 것까지 절차적 요건으로 설정하고,

반대로 정비업체가 해제 또는 해지를 할 수 있는 사유를 조합의 채무불이행에 관한 내용으로 정하면서, 조합의 해제 및 해지와 마찬가지로 충분한 계약이행 기간을 둘 것과 서면통보가 이루어질 것을 절차적 요건으로 둔 경우에는 위임계약 해지지유원칙이 제한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조합과 정비업체간에 각자 해제 또는 해지를 할 수 있는 사유와 절차를 별도로 정해둔 경우에는, 당사자가 이 사건 용역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시키는 것을 위와 같은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로 제한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볼 여지가 있다.

또한, 조합이 정비업체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사유에 관해 규정하면서, 특히 조합이 그 책임 있는 사유로 정비업체와의 용역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시키는 것을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원인으로 삼고 있다면, 이러한 내용은 위임계약의 당사자가 자유롭게 해지를 할 수 있고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해지한 경우에 한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한 민법 제689조의 규정과 양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의규정인 민법 제689조 제1, 2항은 조합과 정비업체 사이의 약정에 의해 그 적용이 배제되고, 조합이 행정용역계약을 적법하게 해지하기 위해서는 행정용역계약에서 정한 사유 중 어느 하나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합이 한 해지통보는 행정용역계약에서 정한 사유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해지통보는 효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약정해석을 통한 대법원의 위와 같은 위임계약 해지자유원칙에 대한 제한은 일응 타당한 면이 있다. 대법원의 이와 같은 입장은 조합이 시공사와 체결하는 공사도급계약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민법 673조가 도급계약도 임의해제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뢰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위임계약에서 신뢰관계가 파탄 났는데도 위와 같은 약정내용을 근거로 계약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위임계약제도의 취지를 몰각시킬 수 있고 조합에 심각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결국, 조합이 대법원의 위와 같은 입장으로부터 불측의 상황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행정용역계약이나 공사도급계약에 민법 제689(위임의 상호해지의 자유)나 제673(완성전 도급인의 해제권)가 배제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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