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개인정보 무방비 노출… 재개발·재건축사업 피해 속출
조합원 개인정보 무방비 노출… 재개발·재건축사업 피해 속출
비대위, 조합에서 받은 개인정보 활용해 조합원 괴롭히기 '성행'
  • 최진 기자
  • 승인 2020.07.23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합원의 알권리’ 보장위해 도정법 124조에 명문화
민원·소송도 급증… 주민피해 예방차원서 보완필요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개인정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보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합이 도시정비법에 따라 조합원 명부를 제공하면서 발생하는 피해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고강도 규제로 조합장 해임이나 시공자 교체 등을 위한 비대위 활동이 늘어나면서 개인정보와 관련한 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시정비법이 조합의 정보제공 의무규정뿐 아니라, 정보의 범위나 정보주체의 동의, 그리고 불법적인 정보사용에 대한 규제와 처벌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멍청해서 말귀를 못 알아먹냐”

서울 강북의 한 재개발구역 조합원 A씨는 지난 4월 갑자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같은 구역의 조합원이라고 소개한 상대방은 A씨에게 조합장에 대한 추문과 조합운영 비리의혹 등을 30분간 설명했다. 이후 조합 집행부 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조합장 해임총회 동의서를 요구했다. A씨가 이를 거절하니, 차츰 언성을 높였고 결국 비속어를 내뱉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A씨는 “불명확한 추측성 의혹들만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상황이 몹시 불쾌했는데, 결국 해임총회 동의서를 써주지 않겠다고 하니 욕설을 했다”라며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름과 전화번호가 공개돼, 이런 모욕적인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 국가에서 상식적인 일인가 싶다”고 말했다. 

인천 동구의 재개발 조합원인 B씨도 최근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조합비방 관련 전화를 몇 차례 거절하자, 비대위 관계자가 B씨의 집에 찾아온 것이다. B씨는 수차례 거절의사를 밝혔지만, 비대위 관계자는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B씨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사태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B씨는 비대위 사람들이 자신의 거주지를 알고 있고, B씨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B씨는 “개인정보 유출로 발생한 ‘N번방’ 사건이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났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과 전화번호, 집 주소까지 알아내서 찾아왔다는 것이 너무 당혹스러웠다”며 “내 개인정보가 누구에게 얼마나 퍼졌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두렵고 막막할 따름”이라고 심경을 털어놨다.

▲동의없는 개인정보 제공… 도시정비법에 따른 것

이처럼 조합원의 개인정보가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공개가 되어도 개인정보처리자인 조합은 ‘도시정비법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내놓을 수 밖에 없다. 도시정비법이 ‘조합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개인정보 제공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에 따르면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불가피하게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할 경우 반드시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도록 법령상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정비법 제124조는 조합원이 조합에게 일정한 정보의 열람이나 복사 등의 정보공개를 신청한 경우 조합은 이를 15일 내에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법부는 일반법인 개인정보보호법보다 특별법인 도시정비법이 우선된다고 보기 때문에 조합원이 조합원 명부를 정보공개 신청할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제외한 일체의 정보를 제공하도록 판시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조합원 명부를 요구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비대위가 해임총회 등으로 조합 집행부를 차지하려는 수단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개인정보 관련 민원과 소송도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특히, 시공자 선정총회나 정기총회 등을 앞두고 조합 행정을 마비시키기 위한 악의적인 정보공개 신청의 경우에는 개인정보를 활용한 비대위의 활동과 관련 소송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한파에 개인정보 피해사례 늘 듯

업계는 정부의 규제가 개인정보 분쟁의 잠재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이 정부 규제로 사업지연이 불가피해지자, 비대위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이에 따른 갈등상황도 증가된다는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재개발·재건축을 규제 대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정작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방치되고 있다”라며 “조합에게 무분별한 법적·제도적인 의무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사업비리와 주민갈등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국회가 도시정비법이 개인정보보호법보다 우선한다는 판례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법령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인본 조창흠 변호사는 “개인정보와 관련한 판례는 도시정비법을 근거로 조합이 조합원의 개인정보를 최대한 빠짐없이 제공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조합원의 의사는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수준에 머문다”라며 “정보주체자의 의사가 정보공개 전에 분명하게 확인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로드맵 남기룡 대표변호사는 “최근 조합과 조합원 간의 개인정보 관련 분쟁이 늘어나면서 도시정비법이 더욱 보완돼야 한다는 주장이 업계에서도 나오고 있다”라며 “정보공개신청과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한 경우나 이에 대한 처벌, 조합정관의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동의 의무화 등을 더욱 명확하게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