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와 임대주택 불편한 동거… 벌써 외면받는 공공재건축
럭셔리와 임대주택 불편한 동거… 벌써 외면받는 공공재건축
8·4 부동산대책 이후… 서울 주택공급 방안 논란
  • 최진 기자
  • 승인 2020.08.1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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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 사업장들 임대주택 부담에 아예 거론조차 안해
업계 “주택공급 실적 채우기위한 수단… 현실성 떨어져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정부가 8·4공급대책으로 서울 도심에 대규모 주택공급 방안을 내놓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서울 주택공급의 핵심으로 꼽히는 재건축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정비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의 출발점이 주민들의 정비사업 추진의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공공참여 방안이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재건축 단지에 외면 받는 ‘공공재건축’

정부가 8·4대책에서 공공재개발·재건축으로 서울 도심에 공급하겠다고 밝힌 주택공급량은 총 9만호다. 이중 공공재건축은 5만호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강남의 재건축단지들은 임대주택을 대폭 늘려야 하는 조건 때문에 공공재건축 방안은 거론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다.

재개발과 달리 재건축은 주택 노후도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현장에서 사업이 진행된다. 열악한 주택노후 상태는 공통점이지만, 집밖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생활편의시설과 다양한 도시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재건축사업은 아파트단지의 미래가치가 얼마나 상승할 수 있느냐가 핵심적인 사업추진 동력이 된다. 특히, 강남의 경우 랜드마크 아파트단지로 거듭나는지 여부에 따라 주택가격이 급격하게 벌어진다.

강남구의 한 재건축아파트 소유자는 “10년이 넘도록 추진위 단계에 머물면서 사업시행계획인가 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정부의 주택공급 실적을 채워주기 위한 임대주택을 떠안으려고 그 시간을 감내해온 게 아니다”라며 “강남 재건축단지는 주민들이 단지 고급화를 위한 방안을 놓고 고민하는 현장인데, 임대주택을 늘리는 공공재건축은 고민거리조차 되지 못 한다”고 선을 그었다. 

송파구의 한 재건축 추진위원장은 “용적률이나 층수 규제가 완화돼 아무리 아파트가 고층으로 올라간다 하더라도 결국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쾌적한 주거환경과 이에 뒤따르는 내 집의 미래가치 상승에 있다”라며 “임대주택 비율이 높을수록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주변으로부터 평가도 좋지 않으며 주거환경의 질도 떨어지기 때문에 일정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임대주택 수용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고 말했다.

▲정부규제·사업지연도 싫지만 ‘임대주택’더 싫다

강북 재건축현장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서대문구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임대주택 임차인들은 자신의 집이 아니기 때문에 주택관리가 소홀하고 입주자들이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주민들과의 소속감 저하에 따른 갈등이 발생한다”라며 “조합 입장에서는 공공재건축 참여 여부를 조합원들에게 묻는 순간부터 조합운영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분쟁조정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전문가는 “강북만 하더라도 아파트 소유자와 임대주택 임차인들 간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라며 “아파트 소유자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노력해서 얻어낸 가치를 임대주택 임차인들이 평등하게 누리는 상황을 오히려 불공정하게 느끼며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주택공급 실적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공공재건축 카드를 꺼내든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재건축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바탕으로 주택공급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비사업은 토지등소유자가 분담금과 사업기간을 감내할 만큼 매력적이여야만 추진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소유자 입장에서 사업참여의 동기를 부여할 ‘당근’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밝힌 공공재건축 5만호 공급은 서울 내 사업시행인가를 받지 않은 단지들 중 20%가 사업에 참여할 것이라는 막연한 수치를 산정한 것인데, 국민에게 발표하는 주택정책을 얼마나 무성의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라며 “정부가 정비사업을 서울 주택공급의 대책으로 고려한다면 기본적인 사업추진 원리부터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주택시장 정상화가 주택공급 현실화

전문가들은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주택시장 정상화를 통한 주택공급 활성화가 절실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정비사업의 경우에도 과도한 규제와 이에 대한 조건부 규제완화보다는 토지등소유자 및 조합원으로부터 나오는 사업추진 동력을 통해 주택공급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외곽 지역에서 사업추진이 어려운 일부 재건축단지를 제외하곤 정상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대부분의 서울 재건축단지들은 이번 정부의 공공재건축 참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라며 “임대주택 수용을 상쇄할 만한 규제완화와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향후 공공재건축을 통해 공급하겠다고 밝힌 5만호는 사실상 공수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정부가 공공재건축 참여 시 혜택으로 꺼내든 용적률·층수 규제완화를 민간 정비사업에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이번 8·4대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재초환·분상제로 주택구매 기대수익률을 낮춰 수요관리의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면 더 이상 민간재개발·재건축에 용적률이나 층수 제한 등을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실수요자에게 주택이 공급될 수 있는 주택시장의 환경을 정부가 만들었다고 밝혔기 때문에 더 이상 용적률이나 35층 층수제한으로 주택공급량을 축소시키는 것은 주택공급이 시급한 상황에서 무의미한 일”이라며 “용적률·층수제한 규제만 완화되더라도 다수의 재건축 현장들이 원활하게 사업을 추진해 안정적으로 신축 아파트가 공급되는 상황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 달이 멀다하고 추가대책을 발표할 정도로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주택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거나 조절하는 것에 실패하고 있으며 국민들로부터도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정부가 주택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흐름을 존중하고 주택시장이 자생할 수 있도록 재초환이나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의 과도한 규제들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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