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초과이익환수 피하려한 '졸속 관리처분' 분쟁 속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피하려한 '졸속 관리처분' 분쟁 속출
조합장 해임·시공자 교체…곳곳에서 부작용
  • 최진 기자
  • 승인 2020.09.23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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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6구역, 대안설계 변경못한 조합장 해임
신반포15차, 공사비 인상으로 시공자 교체
반포주공1단지, 추가이사비 지원 싸고 시끌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쫓겨 사업을 서둘렀던 서울 재건축 현장들이 해임총회와 시공자교체 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2017년 하반기부터 유행처럼 퍼졌던 졸속 관리처분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집행부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된 것이다.

집행부 해임과 시공자 교체가 일어나는 대다수의 현장들은 사업이 초과이익환수제를 벗어난 후 시공자 대안설계 적용과 설계변경에 따른 분담금 산정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실정법을 벗어난 과도한 대안설계가 건축심의에 부딪혀 이행되지 못하거나 대안설계에 따른 분담금 상승으로 조합과 조합원, 건설사간의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이미 지난 2017년 초과이익환수제를 벗어날 때부터 졸속 관리처분과 비현실적인 대안설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왔다”라며 “정비사업의 안정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시한부 규제,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건설사들의 초법적인 대안설계, 그리고 시간에 쫓기던 조합들의 졸속 업무처리가 겹치면서 만들 낸 상황”이라고 말했다.

▲졸속 관리처분 속도전에 예고된 부작용

올해 서울 재건축현장은 정부의 규제강화와 더불어 조합장 해임과 시공자 교체 등으로 한파를 겪고 있다. 특히  지난 2017년 초과이익환수제 회피를 위해 관리처분계획인가에 속도를 냈던 현장들이 미뤄놓은 건축심의변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이 커지는 모양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 조합원 1인당 평균개발이익이 3천만원을 초과하면 초과이익에 대해 최고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제도가 시행된 것은 지난 2006년이지만 2012년부터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 유예됐다. 

하지만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는 “내년(당시 2018년) 1월”부터 초과이익환수제를 시행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당장 유예기한이 6개월가량 남은 상황이기 때문이라 재건축 조합들은 사활을 걸고 관리처분계획인가에 매진했다. 제도시행 이전에 관리처분 인가를 받는다면 소급 문제로 규제를 피할 수 있어서다.

속도전으로 방향이 잡힌 관리처분계획으로 많은 구역들이 재초환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졸속 관리처분으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성 없는 대안설계… “일단 급하니까”

서울 서초구 방배6구역 재건축사업은 지난달 29일 임시총회를 통해 조합장 해임과 직무정지를 결정했다. 해임사유는 지난 2016년 11월 시공자 선정 당시 대림산업이 제안한 3가지 대안설계(폐도·브릿지·통합주차장)가 건축심의변경안에 모두 반영되지 못했다는 이유다.

당시 대림산업은 구역을 가로지르는 15m 폭의 도시계획도로를 없애는(폐도) 설계를 기반으로 단지를 잇는 브릿지와 통합주차장을 제안해 시공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도시계획도로 폐도는 정비사업의 기초말뚝이라고 할 수 있는 정비계획을 변경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설계라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대림산업의 대안설계는 현실화되지 못했고 조합장은 대림산업과의 유착 의혹으로 해임됐다.

서울 송파구 미성·크로바 재건축사업도 대안설계가 반영되지 않은 문제로 지난 3월 집행부가 교체됐다. 시공자인 롯데건설이 제안한 특화설계가 서울시 특별건축구역 건축심의에 걸려 설계변경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롯데건설은 지난 2017년 시공자 선정과정에서 단지특화를 위해 미디어파사드·스카이브릿지 3개·커튼월 등을 적용하는 특화설계를 내놓았는데, 빛 공해에 따른 민원과 주거환경 개선과 관련 없는 공사비 인상 등이 지적되면서 서울시 건축심의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인상이 시공자 교체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 재건축은 대우건설과의 공사비 인상문제로 이주·철거를 마친 후에도 일반분양을 하지 못한 채 수개월간 표류하다가 결국 지난해 12월 시공자 교체에 나섰다.

서울 동작구 흑석9구역은 층수를 높이고 동수를 줄이는 롯데건설의 대안설계가 서울시 도시계획 상한 층수를 초과하면서 답보상태가 됐다가 결국 조합 집행부 8명과 시공자를 교체하는 수순을 밟았다.

▲사업안정 고려 없는 시한부 규제

신속한 사업추진이 사업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정비사업이지만, 속도에만 집착해 졸속으로 사업단계를 밟은 경우 오히려 사업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시공자를 서둘러 뽑았던 재건축 현장들은 이후 계약이행 절차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재건축사업은 현대건설이 시공자 선정 당시 조합원들에게 공약했던 내용을 이행하지 않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현대건설이 국토교통부의 시정명령 때문에 추가이주비 지원이 불투명하고, 초과이익환수제 적용을 이유로 특화설계 적용이 어렵다면서도 공약 불이행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건설이 공약을 발표한 시점부터 추가이주비 지원이 도시정비법 상 위법행위 논란이 있었고, 특화설계와 관련해서는 도시계획도로 위를 지나는 스카이브릿지와 덮개공원이 서울시의 인허가가 있어야 가능했던 불확실한 공약이었던 만큼, 이를 이행하지 못한 것에 상응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많은 재건축조합들이 건설사들의 공약 불이행에 관한 귀책사유 범위와 이에 대한 보상책임 문제를 명확하게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을 봉합할 법리적 바탕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시공자 선정과정에서 꼼꼼히 검토돼 계약서에 명문화 돼야 했지만,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는 것에 속도전을 벌이며 졸속으로 처리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수주전이 과열되면서 쏟아지는 현실성 없는 공약은 조합이 계약서를 통해 공약실천 기준을 정하고 공약 불이행 시의 책임과 보상에 대한 사항을 짚어야 했다”라며 “하지만 당시 재건축 조합들은 재초환이라는 강력한 규제를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고 시공자와의 협의가 길어질 수도 없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당시 조합 입장에서는 재초환을 피하지 못하면 당장 해임총회가 열릴 판이기 때문에 대안설계 현실성을 검토해볼 여력이 없었다”라며 “정부가 정비사업 안정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촉박하게 유예기한을 정했기 때문에 사실상 추가적인 검토 여력이 없는 부실한 계약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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