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늦춰 전세난 막겠다고?… 조합 피해 책임은
재개발·재건축 늦춰 전세난 막겠다고?… 조합 피해 책임은
국토부, 이주시기 조정에 조합들 초비상
  • 문상연 기자
  • 승인 2020.12.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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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허가 늦어지면 사업지연 불가피… 금융비용 등 급증
전세기간만료 앞둔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도 ‘골칫거리’

[하우징헤럴드=문상연 기자] 정부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24번째 부동산대책에서 전세난 가중을 막기 위해 정비사업 이주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내놓자, 이주시기 조정에 따른 사업 지연을 우려하는 조합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이주시기 조정으로 인가가 늦어지면 사업비가 증가하고, 이에 따른 각종 비용 부담도 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도 정비사업의 이주시기를 늦추는 게 전세난 해소에 효과는 미미하고, 오히려 신규 주택 공급이 늦춰져 주택시장의 불안만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비사업의 이주시기를 늦춘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전세 대기 수요가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현 전세난 해소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당장 전세 수요는 억제할 수 있지만 재건축사업 지연으로 조합원 피해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주택 공급 부족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정비사업 이주시기를 조정해 전세 수요 낮추겠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24번째 부동산대책인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서 국토부는 특히 단기간 내에 공급할 수 있는 전세형 주택을 최대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수도권 30만호 공급 등은 2023년 이후에나 본격적인 입주가 가능해 향후 2년간 일시적 공급 부족이 우려되는 만큼 단기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정비사업 이주시기를 조정해 전세 수요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재개발·재건축 이주수요가 특정 시기에 몰릴 경우 전세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서다. 국토부는 내년 상반기 수도권 내 정비사업에서 약 9천600가구, 하반기에는 2만8천800가구 등 총 3만8천400여가구의 이주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수도권 지자체와 협의체를 구성해 이주수요를 모니터링하고 특정 시기 이주수요가 집중될 경우 이주시기를 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정비사업 이주시기를 조정하는 것은 전세난 해소에 큰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정비사업 지연으로 신규 주택 공급이 늦춰져 주택시장 불안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8·4 부동산대책에서 공공재개발과 공공재건축을 도입, 정비사업을 활성화해 양질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한지 3개월 만에 정비사업을 지연시키겠다는 정책을 내놓은 것에 대한 반발도 큰 상황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공공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양질의 임대주택 등의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해놓고 전세대책으로 정비사업을 지연시키겠다는 앞뒤 안 맞는 정책을 내놨다”며 “이주시기를 연기하면 단기적으로는 인근의 전세 수요는 억제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신규 주택 공급이 늦춰지면 입주 물량도 감소해 부작용이 더 크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정비사업 이주 시기 조정은 과거 전세대책에서 국지적 전세난을 차단하기 위해 활용해온 방법”이라며 “정비사업 추진과 주택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신중하게 지자체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주시기 조정되면 사업비 금융이자·공사비 증가로 조합원들 피해막심

조합들은 비상이 걸렸다. 이주시기 조정으로 인가가 늦어지면 사업비가 증가하고, 이에 따른 각종 비용 부담도 늘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은 통상 시공자 선정시 착공기준일까지 공사비 변동 없는 확정공사비로 계약을 하지만 실착공시기가 계약서상의 착공기준일을 넘길 경우 물가상승률 등에 따라 공사비가 인상된다. 조합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부 당국의 이주시기 조정으로 인해 실착공이 착공기준일을 넘어가게 되는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업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도 문제다. 특히, 이주는 정비사업에서 가장 큰 비용이 발생하는 시기로 이주시기가 크게 늦어질 경우 조합의 막대한 금융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해당 조합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전세시장 안정화라는 명분으로 정비사업의 이주시기를 조정하겠다고 밝히자 선의의 조합원들의 피해를 양산하는 졸속행정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이주시기 조정의 방법은 관리처분인가 시점을 연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에 따르면 대규모 주택 멸실로 부동산 전·월세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우려될 때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관리처분인가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

시기조정 심의대상 구역은 △정비구역의 기존 주택수가 자치구 주택재고수의 1%를 초과하는 경우 △정비구역의 기존 주택수가 2천호를 초과하는 경우 △정비구역의 기존주택수가 500호를 초과하고, 같은 동 안에 위치한 정비구역의 기존 주택수를 더해 2천호를 초과하는 경우다. 인가 시기는 상위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최대 1년까지 조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서울시는 2017년 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회피를 위해 관리처분인가가 몰리자 전·월세난 등 주변 주택시장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두 차례 개최한 주거정책심의를 통해 총 7곳의 재건축조합의 이주시기를 조정한 바 있다. 

세부적으로 △송파구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7월)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10월) △방배13구역(9월) △한신4지구(12월) △신반포3차·경남(7월)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12월) 등으로 6개월에서 10개월가량 관리처분인가 시기를 미뤘다.

한편 이주시기 조정으로 인한 피해는 조합원과 세입자 사이에 전세보증금 미상환 문제로 불거질 전망이다. 통상 정비사업에서 조합원들은 관리처분인가가 난 이후 집단 이주비 대출을 통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는 게 일반적이다. 

조합이 관리처분인가를 받지 못하면 이주비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이주시기가 수년 이상 남았을 경우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기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반환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주시기 조정대상 조합원들은 이주시기가 수개월 지연됐다는 점에서 수개월동안 한시적으로 거주할 세입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서초구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대부분 관리처분인가 이후 2~3개월 뒤 이주가 시작되기 때문에 사업시행인가 이후 대략의 관리처분인가 시점을 고려해 조합원들이 대부분 세입자와의 계약을 진행한다”며 “이주시기 조정을 통해 당초 계획보다 약 6개월에서 1년가량 지연되면 조합원들은 전세만료를 앞둔 기존 세입자들의 보증금 반환을 두고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조합이 관리처분인가를 받지 못해 이주비대출을 받을 수 없고 전세보증금을 낮춰도 수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거주할 세입자를 찾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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