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 변호사] 노후·불량건축물의 판단방법
[박일규 변호사] 노후·불량건축물의 판단방법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2.07.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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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규
변호사/H&P 법률사무소
www.parkhong.com

 


정비구역지정처분을 다투는 소송이 한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소송의 명칭과는 달리 쟁점은 비교적 간단하였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정비구역지정을 위한 대표적 요건으로 ‘노후·불량건축물의 밀집’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때 ‘노후·불량건축물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정비구역지정 권한을 지닌 대부분의 행정청은 도정법 시행령이 규정하는 ‘준공된 후 20년이 지난 건축물’을 바로 노후·불량건축물로 보고 별도로 철거가 불가피한 건축물인지를 판정할 다른 요소를 검토하지 않은 채 정비구역을 지정하여 왔다.

이에 대하여 정비구역 지정을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측의 논리는 단순히 도정법 시행령이 정하는 준공된 후 20년이 경과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노후·불량건축물이라 볼 수 없고 개별 건축물마다 철거불가피성을 판단할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쟁점에 관한 법원의 입장은 사실 소송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상당한 흥미를 가질 정도로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업계에 최초로 정비구역지정취소의 충격파를 던진 판결은 수원지방법원으로부터 나왔다.

노후·불량건축물의 개념에 관한 행정청의 입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정비구역지정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최초로 선고함으로써 정비업계의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것이다(수원지방법원 2007구합10038 판결).

더구나 이어진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 역시 수원지방법원의 입장을 재차 지지하며(서울고등법원 2008누35431 판결) 구역지정처분 취소소송은 조합설립무효소송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수원고등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핵심적 논거가 건축연한 20년이 경과하였다는 것만으로는 해당 건축물이 노후·불량건축물임을 단정할 수 없으며 별도로 철거불가피성을 판단할 충분한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반대하여 인천지방법원을 필두로 서울행정법원, 의정부지방법원, 급기야 최초로 정비구역지정처분 취소의 파장을 불러왔던 수원지방법원 조차도 종래의 입장을 번복하여 준공연한을 경과한 건축물은 특별한 자료를 추가로 구비하지 않더라도 노후·불량건축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곧 이와 같은 1심 법원의 입장변화는 항소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서울고등법원 역시 애초의 입장을 변경하여 “준공연한의 경과는 건축물의 기능적 결함이나 구조적 결함 등을 고려하여 노후·불량건축물의 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한 것이고 준공연한의 경과가 노후화의 대표적인 기준이라 할 것이므로 별도로 철거가 불가피한지 여부를 따져보기 위한 자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기에 이르렀고 곧 이러한 서울고등법원의 논리는 동일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는 소송에서 대부분의 사실심 재판부가 취함으로써 확립된 법리로 자리잡는 듯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0누4461 판결 등).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현저한 입장변화에도 불구하고 대전고등법원은 여전히 최초의 수원지방법원의 판결과 동일한 논거로 철거불가피성을 뒷받침할 별도의 자료가 구비되지 않는 한 노후·불량건축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유지하였다(대전고등법원 2010누519 판결).

그러나 사실 이러한 대전고등법원의 결론에 대하여 크게 우려하는 정비사업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도권 일대의 다수 재판부와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이 이미 확고한 법리를 구축하고 있는 마당에 산발적으로 대전고등법원과 같은 판결이 도출된다고 하여도 이는  대세를 거스르기엔 역부족이고 결국 대법원 판결에 의하여 대세가 옳았음이 명백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정비업계의 낙관론에 부응이라도 하듯 철거불가피성을 뒷받침할 별도의 자료는 불필요하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된 몇몇 사건에서 대법원은 상고이유가 없음이 명백하다는 이유로 ‘심리불속행’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서울고등법원의 해석이 옳았음을 당연히 확인하여 주는 듯하였다(대법원 2011두20895 판결 등).

그러나 대법원의 입장도 일관된 것은 아니어서 일부 판결에서는 준공연한의 경과 이외에 별도로 철거불가피성을 판단할 자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하기도 함으로써(대법원 2008두9270 판결) 도대체 명확한 대법원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두고 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결국 대법원은 종래의 대법원 판결을 번복하거나 대법관 간에 의견이 통일되지 않을 경우 개최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정비구역지정처분 취소소송의 최종결론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대법원의 최종결론은 건축연한 경과만으로 노후·불량건축물을 판정할 수 없으며 개별 건축물마다 철거불가피성을 뒷받침할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하급심에서의 대세적 입장과는 달리 애초 수원지방법원 판결의 입장을 지지하여 준 것이다. 애초 입장을 번복하고 다시 그 입장을 번복하는 여러 재판부의 사분오열적 판단과 대법원 자체 내에서의 일관되지 못한 판결들이 이제라도 일거에 정리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뉴타운 실패의 정치적 선언, 재개발 무용론, 출구전략의 제도화 및 현실화 등 정비사업 반대의 기세가 비등한 작금의 상황에서의 금번 판결은 대법원 역시 시류와 무관할 수 없다는 사법부의 속내를 엿본 것만 같아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문의 : 02-584-2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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