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원의 국토이야기>독도, 폭파해 버립시다
<김의원의 국토이야기>독도, 폭파해 버립시다
  • 하우징헤럴드
  • 승인 1999.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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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9 11:52 입력
  
김의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독도의 귀속을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은 해방 50여년이 지났어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독도로 명명한 것은 1881년이란 설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어쨌든 이때부터 우리는 이 섬에 등대를 설치했고 1906년의 울릉군수의 보고서에는 독도를 우리의 영토로 기술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1904년에 시네마 주민이 이를 자기에게 불하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것을 근거로 그들은 1905년 각의에서 이를 자기 영토로 선언하고 섬 이름을 죽도라 명명했다. 동시에 이에 근거해서 토지대장을 만들고 시민들로부터 토지사용료를 징수했다.
 
그런데 1946년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으로부터 정치 및 행정상 분리하는 지역을 지정했는데 독도는 여기에 포함됐다. 따라서 일본어선의 조업정지 지역으로 지정된다.
 
1952년 우리나라는 독도를 포함해 이승만 라인을 설정하고 우리나라 해안경비대를 출동시켜 침범하는 일본어선을 나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5년 이른바 한일회담 때 ‘한일 기본조약’이나 ‘분쟁 해결에 대한 교환공문’에서 독도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 미해결인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기에 일본은 매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일본이 이 문제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장차 궁극적으로 국제재판소에 가야하기 때문에, 그럴 경우 재판상 유리한 입장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각료회담 때는 으레 독도 문제가 거론돼 왔다. 일본측의 주장은 첫째, 우리는 시아네껜에 토지대장이 있는데 한국은 독도가 자기 영토라면 영토관리를 한 실증이나 기록이 있는가 하는 점이었고, 둘째는 일본은 일로전쟁 때 독도에 무선탑을 설치한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도쿠가와 막부 중기에 하야시 시해이라는 경세가가 있었다. 그는 48세 때인 1785년에 ‘삼국통설도설’이란 극동지역의 지도를 그렸다.
 
그 지도를 보면 조선반도를 무 조각처럼 그려놓고 동해에는 울릉도와 그 옆에 독도를 표시한 후 주석을 달기를 ‘조선지지야(朝鮮之持也)’라 했다. 이 지도를 근거로 우리는 독도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측의 반응은 달랐다. 그것은 일본사람이 그렸다 해도 개인이 그린 것이지 일본정부가 발행한 지도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독도에 얽힌 또 하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동경올림픽의 전년 한참 한일국교 정상화를 위한 예비회의가 진행 중이던 때 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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