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96개 중 37곳 현설보증금 요구… 무너지는 공정입찰
재개발·재건축 96개 중 37곳 현설보증금 요구… 무너지는 공정입찰
[창간17주년 기획] 주거환경연구원 입찰보증금 요구 실태 분석
  • 문상연 기자
  • 승인 2021.05.27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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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금액도 5천만원부터 25억까지 천차만별
보증금 규정을 시공자 선정기준에 명시해야 

[하우징헤럴드=문상연 기자]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의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현설보증금 요구를 막고자 국토부가 지난해 12월 입찰보증금 제도를 개선했지만, 시공자 선정기준이 아닌 일반 협력업체 선정 시 적용하는 일반계약 처리기준에 관련 근거를 명시해 개정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거환경연구원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개정 전까지 현설보증금을 요구한 사례가 무려 38%에 달하고 있어 또다시 현설보증금이 악용되기 전에 정비업계에 혼란을 주지 않도록 신속히 기준 내용 전체를 검토해 모호한 규정들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국 96개 정비사업 현장 중 37곳 현설보증금 요구‘일상화’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은 마련된 지 약 3년만인 지난해 12월 첫개정이 이뤄졌다. 개정은 그동안 꾸준히 논란이 돼왔던 시공자 선정 과정 중 현장설명회에 입찰보증금 중 일부를 납부토록 하는 일명‘현설보증금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지난 2018년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도입하면서 일반경쟁입찰과 전자입찰을 의무화했지만, 입찰보증금 제도를 악용해 변칙적인 제한경쟁입찰을 하고, 결국 수의계약을 유도한다는 주장이 지속 제기됐기 때문이다. 

개정 직전까지 대규모 사업장뿐만 아니라 규모가 작은 현장에서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현금을 현장설명회 참석 전까지 요구하는 추세가 확산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주거환경연구원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부터 개정 직전인 2020년 11월까지 시공자를 선정한 전국 96개 정비사업 현장 중 무려 38%에 달하는 37개 현장에서 입찰공고에 현설보증금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현장설명회 참석시 현금으로 입금해야 할 현설보증금 규모도 5천만원에서 부터 많게는 25억원까지 요구하면서 공정한 입찰경쟁을 저해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연구원은 입찰보증금도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지역, 사업규모 등에 따라 다르지만 입찰보증금은 일반적으로 조합이 기 투입된 비용에 준해 조합의 상황에 맞게 책정하게 되는데 적게는 5억원에서 많게는 1천500억원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사 결과 전국 96개 구역 중 약 49%에 해당하는 47개 구역이 입찰보증금으로 50억원 이상을 요구했고, 100억원 이상은 34%(33개)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의 경우 50억원 이상의 입찰보증금을 요구한 조합은 총 28개 사업장 중 21개 구역으로 약 75%, 100억원 이상은 13개 구역으로 4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거환경연구원 진희섭 연구부장은 “정비사업계약업무 처리기준 이후 천억원대에 이르는 입찰보증금을 요구하는 등 과도한 입찰보증금과 현설보증금을 요구하면서 변칙적인 제한경쟁입찰을 진행하고 있다”며 “사업규모별 일정금액 범위 내에서 기준을 세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공정한 경쟁입찰을 위해 입찰보증금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호한 규정에 헛발질 개정 논란…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재정비해야

지난해 12월 시공자 선정 과정 중 현장설명회에 입찰보증금 중 일부를 납부토록 하는 일명 현설보증금을 금지하기 위해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시행 후 첫 개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개정 내용이 모호해 재정비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가장 핵심인 현설보증금 금지 조항이 법조문대로라면 시공자 선정 과정에 현설보증금 금지에 관련된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지 여부가 모호한 상태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6일 국토교통부는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일부 개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 기준에 따르면 사업시행자등이 입찰에 참가하려는 자에게 입찰보증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경우 입찰 마감일부터 5일 이전까지 입찰보증금 납부를 요구할 수 없다.

문제는 해당 규정이 시공자 선정 기준 항목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일반계약 처리기준 항목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은 △총칙 △일반계약 처리기준 △전자입찰 계약 처리기준 △시공자 선정기준 △보칙 등 5개의 장으로 구분된다. 이에 개정된 입찰보증금 관련 규정은 시공자 선정 기준의 하위 규정으로 포함돼야 할 내용이었다.

일반 협력업체가 아닌 시공자는 ‘시공자 선정기준’에서 별도로 규정하고 있고 시공자 선정 기준안에 일반계약 처리기준을 준용한다는 내용이 없다. 이에 일반계약 처리기준에서 정한 입찰보증금 관련 규정을 시공자 선정 기준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모호한 상황이다. 

입찰공고를 한 사업의 적용 범위도 문제다. 기준 개정 전 최초 입찰 공고가 유찰된 경우 2차 혹은 재입찰 공고 때 종전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다. 

부칙 규정에서 ‘최초’라는 단어를 제외하고‘고시 시행 전 입찰공고를 한 사업’이라고만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재입찰의 경우 ‘동일한 사업’으로 봐야한다는 입장과 ‘별도의 사업’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진상욱 법무법인 인본 대표변호사는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현설보증금을 막겠다고 개정했지만, 법해석에 따라 이 같은 개정 취지가 적용되지 않는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신속히 기준을 재정비해 현설보증금 규정을 시공자 선정기준에 근거를 담고 ‘기준 시행 후 최초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최초로 시공자나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를 선정하는 경우’ 등으로 명시해 논란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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