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신탁방식 재개발·재건축… 역할·원칙 깨졌다
빛바랜 신탁방식 재개발·재건축… 역할·원칙 깨졌다
신탁사, 시공자 선정시 입찰보증금 받아 사업비로
자금조달 책임진다는 원래 역할은 사실상 사라져
  • 문상연 기자
  • 승인 2021.11.1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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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징헤럴드=문상연 기자] ‘자금조달은 신탁사, 건설사는 단순 도급’. 신탁방식 재개발·재건축사업의 핵심 사업구조다. 하지만 신탁사들이 시공자를 선정하면서 입찰보증금 조건을 당연시 하고 사업비를 시공자 입찰보증금으로 조달하면서 신탁사의 역할이 무의미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아가 공공지원제로 인해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시공자 선정을 할 수 있는 서울시내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시공자를 빨리 선정하기 위한 꼼수로 쓰일 뿐, 신탁사의 사업시행자 및 사업대행자의 역할은 거의 전무하다는 오명까지 더해지고 있다.

지난 8월 DL이앤씨를 시공자로 선정한 북가좌6구역은 입찰보증금으로 500억원을 납부토록 했다. 이밖에도 현재 시공자 선정을 앞두고 있는 불광1구역(30억원), 관악미성아파트(50억원), 신림1구역(300억원) 등의 현장 모두 입찰보증금을 요구했다.

신탁방식 도입초기부터 지금까지 시공자 선정 시 입찰보증금 조건이 당연시 여겨지고 있다. 조합방식과 마찬가지로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입찰보증금을 받아 이를 사업비 대여금으로 전환하고 있다. 사실상 초기 사업비 조달을 신탁사가 아닌 시공자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조합방식으로 추진 중인 구역에서는 내역입찰제도로 인해 시공자 선정을 사업시행인가 이후에나 할 수 있지만, 신탁방식은 사업단계와 관계없이 사업시행자 혹은 대행자 지정 이후에 곧바로 시공자 선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북가좌6구역, 신림1구역 등 신탁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대부분의 현장들이 신탁사 선정 후 곧바로 시공자 선정에 돌입하고 있다. 

신탁방식의 또 다른 장점인 공사비 절감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방식과 비교해 신탁방식의 공사비 절감 효과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지만, 신탁방식만 유일하게 내역입찰제도를 적용받지 않아 타 현장과 공사비 비교분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신탁사의 사업비 조달이라는 본래 역할을 살리고, 공사비 절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 기준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건설사가 단순 도급공사만 할 수 있도록 신탁방식에도 내역입찰제도를 적용하고 입찰보증금에 대한 기준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현재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본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시공자 선정 시점만 앞당길 수 있다는 장점밖에 남지 않았다”며 “공사비 절감 효과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내역입찰제도를 적용해야하고, 신탁사들도 자금조달의 본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입찰보증금을 받지 않거나 사업비 대여금으로 전환하지 않는 등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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