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자 조기선정 위한 ‘꼼수’인가… 건설사에 떠넘긴 자금조달
시공자 조기선정 위한 ‘꼼수’인가… 건설사에 떠넘긴 자금조달
빛 바랜 신탁방식 정비사업… 이대로 둘건가
  • 문상연 기자
  • 승인 2021.11.18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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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가좌6구역·신림1구역 등
모든 현장 입찰보증금 요구

시공자가 사업비 조달 땐 
조합방식과 별 차이 없어

건설사들에 휘둘리지 않고
투명한 사업 진행 위해선
신탁사 본래 역할 되살려야

 

[하우징헤럴드=문상연 기자] 신탁방식의 시공자 선정 방법이 정비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입찰보증금과 시공자 선정시기 등으로 인해 신탁방식의 장점과 신탁사의 역할이 흐릿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비사업에 신탁방식이 도입된 취지가 신탁사의 자금력으로 사업비 조달을 책임지면서 시공자로부터 조합이 휘둘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만, 시공자 선정 시 입찰보증금을 받아 사업비로 조달하면서 신탁사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신탁사가 자금조달?… 시공자 입찰시 수백억원 보증금 요구

신탁방식은 지난 2016년‘도시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지지부진한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하나의 대책으로 도입됐다. 신탁방식은 조합설립 없이 신탁사가 직접 사업시행자로 사업을 추진하는 신탁사 단독시행방식, 조합의 업무를 대행하는 신탁 대행방식이 있다.

신탁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신탁사의 자금력으로 사업비와 공사비를 조달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사업추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시공자로부터 사업비를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조합은 건설사에게 휘둘리지 않고, 건설사 입장에서는 리스크 없이 단순도급 공사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신탁방식 도입 5년이 지나지만 초기 사업비 조달이라는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합방식과 마찬가지로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입찰보증금을 받아 이를 사업비 대여금으로 전환해 사실상 초기 사업비 조달을 신탁사가 아닌 시공자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신탁방식 도입초기부터 지금까지 시공자 선정 시 입찰보증금 조건이 당연시 여겨지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신탁사 단독시행방식으로 사업을 추진 중인 신길10구역 재건축사업은 같은 해 4월 시공자를 선정했다. 당시 입찰 공고에서 입찰보증금 50억원을 요구했다. 서울에서 최초로 신탁대행방식으로 재개발사업을 추진한 흑석11구역 재개발사업은 지난 2020년 시공자 선정 당시 입찰보증금 400억원을 납부토록 했다.

또한 주거환경연구원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0년 11월까지 신탁단독시행 혹은 신탁대행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현장 8곳 모두 시공자를 선정할 때 입찰보증금을 요구했다. 나아가 이들 중 2곳은 현장보증금까지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인천 송월아파트(입찰보증금 10억원, 현설보증금 3억원), 미아동3-113(입찰보증금 10억원, 현설보증금 10억원), 대전 삼성1구역(입찰보증금 100억원), 대전 장대B구역(입찰보증금 200억원), 대구 78태평상가아파트(입찰보증금 20억원), 청주 사직1구역(입찰보증금 20억원), 천안 사직구역(입찰보증금 50억원) 등이다.

현설보증금은 입찰보증금 중 일부를 현장설명회 참석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변칙적인 제한경쟁입찰로 수의계약을 유도한다는 논란이 커져 지난해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개정되면서 금지됐다.

올해에는 지난 8월 DL이앤씨를 시공자로 선정한 북가좌6구역은 입찰보증금으로 500억원을 납부토록 했다. 이밖에도 현재 시공자 선정을 앞두고 있는 불광1구역(30억원), 관악미성아파트(50억원), 신림1구역(300억원) 등의 현장 모두 입찰보증금을 요구했다. 

▲신탁방식은 곧바로 시공자 선정 가능… 신탁사 사업비 조달 장점 무색해져

신탁방식 정비사업 현장들이 조합방식과 마찬가지로 시공자 선정 시 입찰보증금을 받아 사업비로 전환하면서 신탁방식 제도 도입의 의미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조합방식으로 추진 중인 구역에서는 내역입찰제도로 인해 시공자 선정을 사업시행인가 이후에나 할 수 있지만, 신탁방식은 사업단계와 관계없이 사업시행자 혹은 대행자 지정 이후에 곧바로 시공자 선정이 가능하다.

이에 조합방식보다 사업초기 단계에서 시공자를 선정해 입찰보증금을 사업비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신탁사의 사업자금 조달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신탁단독시행방식은 사업시행자 지정 이후, 신탁대행자방식 정비사업은 조합설립인가 후 바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기 때문에 북가좌6구역 재건축, 신림1구역 재개발 등 신탁방식을 추진하고 있는 대부분의 현장들이 신탁사 자금이 아닌 시공사의 입찰 보증금을 사업비로 조달하고 있다”며 “결국 남은 건 빠른 사업추진이라는 장점밖에 남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조합들이 시공자 선정을 빨리하는 꼼수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탁사는 입찰보증금을 받아 사업비로 활용하는 것은 건설사들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입찰경쟁을 벌이는 건설사들이 사업비를 ‘무이자 대여’하는 것으로 홍보하고 있고, 조합원들도 수백억원의 사업비를 무이자로 쓸 수 있다 생각하고 입찰보증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탁사 관계자는 “신탁사가 직접 자금조달이 가능하지만, 시공자 선정 시 건설사들이‘사업비 무이자 대여’라는 부분을 강조해 홍보하면서 조합원들의 그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며 “신탁사 입장에서도 사업비 조달을 하면 그에 해당하는 이자 수익까지 얻을 수 있어 신탁사가 자금을 조달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조합원들의 요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입찰보증금을 사업비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건설사가 무이자 대여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공사비에 이자가 포함돼 있다”며 “신탁방식의 장점은 사업비 조달뿐만 아니라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을 대신해 사업을 신속하고 투명하게 진행할 수 있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신탁방식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시공자 선정 시 신탁방식은 입찰보증금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탁방식은 신탁사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사업비를 조달하고, 시공자는 단순 시공만 수행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구조다. 조합이 시공자로부터 자금 압박 등으로 사업이 휘둘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업비를 시공자가 조달하는 순간 조합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는 지적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은 신탁수수료를 내면서 신탁방식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문적이고 건설사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투명한 사업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며 “단순 도급이라는 시공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신탁사의 장점과 본래 역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신탁방식은 시공자 선정 시 입찰보증금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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