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공사비·설계도서 없는 혁신설계… 구청장 나몰라라
재개발 공사비·설계도서 없는 혁신설계… 구청장 나몰라라
또 도마위에 오른 서울시 공공지원제 실효성
  • 문상연 기자
  • 승인 2022.11.17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합 자금난 외면하며
고집해온 내역입찰제
혁신설계로 무용지물

공공지원자 기초단체장
아무런 제재 취하지 않다
설계변경 과정에 이르러
인허가권 무기로 ‘발목’

 

[하우징헤럴드=문상연 기자] 서울시 공공지원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무분별한 공사비 상승을 막겠다며 조합의 자금난을 외면하면서까지 고집해온 내역입찰제도가 혁신설계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지원제 시공자 선정기준에서 경미한 범위를 벗어난 대안설계 제안을 금지했지만 혁신설계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대안설계를 제안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공사비, 설계도서조차 없는 혁신설계안을 제안하고 있지만 공공지원자인 구청장은 아무런 제재도 취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향후 혁신설계로 인한 설계변경 과정에 이르러서야 인허가권을 무기로 구청이 발목을 잡으면서 사업지연 및 공사비 상승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무분별한 대안설계 막았지만, 혁신설계로 이름만 바꿔 그대로 제안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과 서울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에서 건설사의 무분별한 대안설계를 제한하는 규정이 마련됐지만, 현장에서는 건설사들이 조합의 원안설계에 따른 사업제안과 별도로 혁신설계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대안설계를 제안해오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시공자를 선정할 때 공사입찰에 필요한 설계도서의 작성 및 공사원가를 산출하도록 일명 ‘내역입찰제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8년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에 대안설계 관련 규정을 강화해 건설사가 대안설계를 제안할 경우 정비사업 시행계획의 원안설계를 변경하는 ‘대안설계’를 제시할 때 정비사업비의 10% 범위 내 같이 경미한 변경만 허용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공사비 내역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혁신설계로 이름만 바꿔 여전히 무분별한 대안설계를 제안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나아가 건설사가 제안하는 혁신설계안의 경우 혁신설계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면 및 물량산출 내역서조차 제출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안설계는 수주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오히려 대안설계를 제안하지 않을 경우 수주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여 들러리 입찰이라는 오해까지 사고 있다.

2019년 4월 현대건설은 강서구 등촌1구역 재건축사업 입찰 당시 조합이 대안설계 제안을 금지하자, 조합이 제시한 원안설계에 따른 사업제안과 별도로 사실상 대안설계와 다름없는 ‘플러스 아이디어’를 추가적인 공사비 없이 제안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같은해 10월 한남3구역에서도 입찰에 참가한 GS건설과 DL이앤씨가 각각 혁신설계안을 제안해 논란이 된데 이어, 양사의 혁신설계안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던 현대건설까지 혁신설계안을 추가 제안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용산 한강맨션 재건축, 불광5구역 재건축, 노량진3구역 재개발, 한남2구역 재개발 등 정비사업 현장 곳곳에서 건설사들이 혁신설계를 제안했다.

▲현실 실현 가능성 검증안된 혁신설계 제안해도 공공지원자는 나몰라라

혁신설계 제안의 문제점은 건설사들이 실현가능성조차 검증되지 않은 일명 일단 따고보자식 제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대안설계 제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향후 조합과 건설사간 대안설계 적용 유무와 공사비 상승 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 때문이다. 

지난해 기존 시공자인 롯데건설과 시공계약을 해지한 흑석9구역 재개발사업의 경우 롯데건설은 2018년 수주 당시 최고 28층, 11개동의 대안설계를 내세워 시공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서울시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최고 25층’ 층수제한에 막혀 설계변경안이 인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결국 계약해지까지 이어졌다.

신반포15차 재건축사업 역시 기존 시공자인 대우건설이 대안설계 반영 및 설계변경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 문제로 조합과 갈등을 빚으면서 계약 해지까지 이르렀다. 

방배6구역 역시 기존 시공자인 DL이앤씨와 결별 과정에서 대안설계가 문제가 됐다. 조합은 DL이앤씨를 선정한 이후 입찰지침서 등에 따라 특화제시안에 대한 설계도서와 세부산출내역서 등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DL이앤씨는 인허가 제한으로 대안설계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제출을 거부해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수주전 당시 DL이앤씨는 구역을 가로지르는 15m 도시계획도로 폐도를 전제로 한 대안설계를 제시했다.

최근 시공자를 선정한 한남2구역에서도 혁신설계 제안으로 논란이 됐다. 한남2구역 등 한남재정비촉진구역 일대는 서울시 남산 경관을 위한 고도제한에 따라 최고 높이가 해발 90m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최고 높이 118m의 혁신설계안을 제안하면서 실현 불가능한 제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문제는 건설사의 무분별한 대안설계 제안에도 공공지원자가 나몰라라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남3구역 수주전 당시 서울시는 “특화설계 등은 현행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제30조와 ‘서울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 제9조를 위반한 것”이며 “도정법 제113조에 따라 행정청의 입찰무효 등 관리·감독 조치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지적해 공공지원자인 구청장이 충분히 제재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로 구청장이 혁신설계에 대해 직접 제재를 한 사례는 없다. 오히려 조합에게 엄중히 관리하라며 조합에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자세를 일관해오고 있다. 

이에 향후 대안설계 적용 과정에서 인허가권을 쥔 공공지원자에 발목을 잡혀 몇 년간 사업이 지연되면서 조합원들의 막심한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이다. 잠실 미성크로바조합은 지난 2019년 상반기 이주를 끝냈지만, 설계변경 과정에서 스카이브릿지 등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대안설계가 2년 6개월 이상 반려된 끝에 올해 1월 건축심의 문턱을 넘었다.

롯데건설은 수주전 당시  롯데건설은 당초 스카이브릿지 3곳과 미디어파사드·커튼월 등 대안설계를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분양가 인상, 도시경관 저해 등의 우려가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공공지원자가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나서 무분별한 대안설계와 다름없는 혁신설계 제안을 제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것”이라며 “이로 인해 내역입찰제도를 무색하게 만들고 그 결과 공사비 상승과 사업지연으로 조합원들의 피해만 더욱 키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