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하자” “리모델링하자”… 사업장 곳곳 주민 충돌
“재건축하자” “리모델링하자”… 사업장 곳곳 주민 충돌
노후단지 조합·추진위의 복잡해진 셈법
  • 최진 기자
  • 승인 2023.03.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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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안전진단 완화에 용적률 규제 풀리자
대부분 리모델링현장 노선변경에 주민갈등 심화
일부에선 ‘반대동의서’ 등장 정부 교통정리 서둘러야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리모델링 업계에 한파가 불어 닥치고 있다. 조합설립을 목전에 둔 현장들은 동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미 조합이 설립된 현장에도 리모델링 반대동의서가 등장하며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빠졌다.

소유자들은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과 상한용적률 등 각종 도시·건축규제를 완화해주는 상황에서 굳이 리모델링을 할 필요가 있느냐며 사업에 제동을 걸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6일 재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내놓으면서 1기 신도시를 비롯한 전국 노후단지들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일부 리모델링 조합과 추진위원회는 정부의 재건축 지원책을 분석해 리모델링과 실익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사업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리모델링 추진단지 곳곳에서 ‘리모델링 vs 재건축’ 의견 충돌

최근 수도권 리모델링 추진단지 곳곳에서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놓고 주민 간 의견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6일 재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표하면서 일부 소유자들이‘이번 정부에선 재건축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기도 고양시 최초로 리모델링 조합설립에 성공한 강선마을14단지에서는 소유자들이 리모델링 반대동의서를 징구하고 나서면서 사업노선에 대한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강선마을14단지는 지난 1월 현대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하면서 리모델링 청사진을 그려냈지만, 일반분양이 적은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조합원 분담금을 낮춰야 한다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천광역시 최초이자, 최대 리모델링 현장으로 주목받은 부개주공3단지 리모델링도 소유주들의 사업 반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리모델링 반대 모임은 조합의 사업안내 현수막 위에 리모델링 반대 현수막을 내걸며 노골적으로 리모델링 반대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조합 측은 지난해 11월부터 안전진단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반대모임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이밖에도 지난 7월 포스코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평촌 한가람신라 등 그동안 리모델링으로 순항하던 노후단지 곳곳에서 주민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있고, 성동구 대림1차와 강동구 프라자의 경우 리모델링 조합이 해산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더불어 금리인상에 따른 금융부담, 분양시장 침체 등을 이유로 정비사업 자체를 유보하자는 주장까지 겹치면서 리모델링 시장에 때 아닌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리모델링 1위 건설사로 꼽히는 쌍용건설은 성동구 신동아와 군포 설악주공8단지의 시공자 선정과 관련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내려놓고 시공권을 반납해 리모델링 시장의 급격한 침체상황을 드러냈다.

▲재건축 규제에 막혀 우회한 리모델링 선택지, 상황 달라졌다

조합설립을 위해 동의율을 높여가던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도 동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일산과 안양 등 수도권 신도시는 물론, 부산 해운대·화명 신도시 등 지방 대도심에서도 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율이 올해부터 멈춰선 수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의 한 리모델링 추진위원장은 “주택시장 침체로 지난해부터 조금씩 동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올해 초 정부의 재건축 관련 정책발표 이후 동의율은 멈춰선 상황”이라며 “우리 단지는 재건축 규제가 완화되더라고 사실상 재건축이 불가능하지만, 소유자들은‘정부의 지원이 계속되면 우리도 조만간 재건축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모델링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재건축 전환을 기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요인은 바로 ‘용적률 500%’다. 국토교통부는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도심에서 공공기여를 하는 조건으로 특례 범위를 넓혀, 용도지역 상향과 상한용적률 500%를 약속했다.

해당 요건은 역세권·준주거지역·용도지역 여건 등 세부적인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지만, 소유자들에게는 ‘용적률 500%’라는 파격적인 혜택이 각인되면서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폭등했다는 것이다. 

또 재건축 진입장벽으로 꼽히던 안전진단 평가가 대폭 완화되면서 정부가 판을 짠 사업방향으로 서둘러 노선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용적률과 안전진단은 그동안 리모델링 추진위원회가 조합설립 동의율을 확보하기 위해 부각시켰던 재건축의 단점이었는데, 이 규제가 폐지되는 수준으로 완화되면서 오히려 사업전환의 명분이 돼버린 것이다.

리모델링 반대모임의 한 소유자는 “그동안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던 모든 조건들이 뒤집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1기 신도시 대부분에서 재건축 추진 바람이 거세질 것”이라며 “현명한 조합이라면 집행부 스스로가 빠르게 사업노선을 변경하고 남들보다 빨리 재건축을 추진해서 건축심의 병목구간을 통과하려는 움직임을 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 “정비사업 메커니즘 감안한 정책설계 필요”

정비업계는 정부가 공동주택 리모델링에 대해서도 규제를 정상화하고 리모델링 특별법 등 미흡한 정책설계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또 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소규모정비사업에 대한 교통정리를 통해 각각의 사업이 현장 상황과 맞물려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리모델링 업계에서는 대표적인 ‘대못’ 규제인 '수직증축’과 ‘내력벽철거’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리모델링과 재건축은 객관적인 분석과 현장 상황에 따라 명확하게 노선이 정리될 수 있다”라며 “일부 단지들은 정부의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리모델링에 대한 규제정상화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건축 규제 정상화라는 상징적인 지원책도 필요하지만, 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소규모정비사업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정비사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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