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재량에 맡긴 ‘학교용지부담금’… 전국 소송 ‘쓰나미’
지자체 재량에 맡긴 ‘학교용지부담금’… 전국 소송 ‘쓰나미’
주먹구구 부과기준에 재개발·재건축 대혼란
  • 문상연 기자
  • 승인 2023.03.1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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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면제기준 없어 지자체도 난감한 상황
청주 율량사천구역조합 시와 소송끝에 승소 
미추홀구 주안4구역 지역범위 해석 싸고 갈등

주민의사와 상관없이 지자체 판단에 사업좌초 
시간낭비·재정손실 막게 부과기준 명문화 급선무

 

[하우징헤럴드=문상연 기자]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문제를 두고 전국 곳곳의 재개발·재건축구역에서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합과 지자체 모두 각종 소송을 통해 사법부의 판결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법원에서 판결이 엇갈리는 등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 대법원에서 지자체 재량이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혼란을 더욱 키웠다. 이에 조합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명확한 기준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용지부담금 면제기준 지자체마다 제각각… 소송전 난무

관련 법에서 학교용지부담금 면제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지 않으면서 부과 문제를 둘러싼 소송전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교용지부담금은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100가구 이상 규모 개발사업에 대해 개발사업자에게 학교용지 확보와 학교시설 증축 등을 위해 ‘가구별 공동주택 분양가격×1,000분의 8’을 부담금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 제5조 제5항 제2호에서는 “최근 3년 이상 취학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학교 신설의 수요가 없는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시행하는 경우”를 임의적 면제 사유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령에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지자체 재량행위로 정하고 있고,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범위 기준이 없어 지자체마다 제각각의 판단을 내리며 정비업계에 혼란을 주고 있다. 

특히 학교 신설 업무를 하는 교육청에서도 학교의 신축이나 증축이 필요 없다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추후 벌어질 책임소재를 피하기 위해 학교용지부담금을 재량으로 부과하는 경우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청주시 율량사천구역 재건축조합은 청주시로부터 학교용지부담금 약 10억원을 부과 처분받으며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한 바 있다.

조합 측은 ‘해당 사업으로 인한 학교 신·증축 계획이 없다’는 청주교육지원청의 의견과 최근 3년 이상 취학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지역의 부과 면제 규정을 내세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시는 인근에 대단위 개발사업 등이 진행되고 있어 학교용지 부담금 면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지난해 5월 2심에서 고등법원은 “학교용지부담금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났거나 부과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아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해 조합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지역 범위에 대한 해석도 논란이다.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인 인천 미추홀구 주안4구역 재개발사업의 경우 조합은 실제 입주민의 생활 범위인 주안4동만 적용한다면 3년 동안 취학인구가 줄어 면제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추홀구는 구 전역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이 밖에도 경기도 광명시 광명14구역, 고양시 능곡1구역, 서울 서초구 신반포6차 등에서도 지자체의 학교용지 부담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소송이 제기돼 지난 2021년 법원에서 과도한 부담금 부과라고 판단한 바 있다.

▲재량행위인 학교용지 부담금 면제 여부에 지자체도 난감… 개선 요구 빗발

이처럼 지자체에 따라 서로 다른 면제기준을 내세워 전국 곳곳에서 갈등이 일어나자 현행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방식에 대한 개선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특히 대법원에서 면제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재량에 따라 명확한 근거 없이 부과된 학교용지 부담금 부과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법에서 ‘부담금을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면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행정청의 재량에 해당한다”며 “사업구역 인근 지역에 학교 신설의 수요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으로 지자체도 난감한 상황이다. 규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지자체에서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정확한 판단 기준이 마련될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재량행위를 인정하면서 조합과의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조합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인천시의회는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개선방안 마련 관계자 회의’를 열고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학교설립 업무는 교육청 소관이지만 학교용지부담금 여부를 결정할 때 교육청과 협의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지자체가 학교 신설 수요가 있는지 재량에 따라 판단하면서 소송으로 불거지는 경우가 많고 행정력을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천시의회에 따르면 현재 인천에서 학교용지부담금 관련 소송이 2건 진행 중이고 부평구는 앞서 6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인천시의회 행정안전위원회 김재동 의원(국민의힘, 미추홀구1)은 “학교용지부담금의 일관성 있는 부과 기준을 마련하는 게 시급한데도 시와 교육청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소송이 빈번히 발생하고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며 “부담금 부과에 대한 명확한 부과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서울시의 구역해제 여부도 재량행위로 판단해 지자체 성향에 따라 사업이 좌초되면서 갈등이 끊이질 않았고 결국 시간 낭비와 행·재정적 손해를 발생시켰다”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학교용지부담금 역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행정청의 임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지 않도록 법으로 명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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