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손실평가 서로 대치
재건축사업 2년째 표류
평가사들 “법률근거 없다”
매번 감정불가 의견에도
법원 “감정료 제출” 고집
업계 “막대한 비용 발생”
분담금 치솟고 사업 지연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대구지방법원이 재건축사업도 상가의 영업손실을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권고가 나와 정비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사업성 급락과 조합장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가 영업보상은 공익사업법 대상인 재개발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재판부가 상가 매도청구 소송에서 상가 영업이익을 감정하라고 결정하면서 판결이 수년간 지연되고 사업도 2년째 표류하고 있다.
감정평가사들은 법리적 근거가 없다며 법원의 권고에 대해 수차례 ‘감정불가’ 의견을 냈지만, 재판부는 상가 측의 주장에 따라 지속적으로 예상감정료를 제출하라고 권고하면서 정비업계와 법조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황당한 재건축 상가 영업보상 감정권고… 평가사 “감정불가” 의견
대구 대현2동 강변재건축사업은 북구 대현동 417-1번지 일원 5만6,932.6㎡ 부지에 지상 36층 12개동 1,106가구 및 부대복리시설을 신축하는 프로젝트다.
조합은 지난 2017년 조합설립인가를 얻어 사업을 추진, 이후 2020년 7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분양신청에 나섰다. 조합은 당초 예정된 분양신청 기간을 2주간 연장하면서까지 조합원 분양신청을 독려했지만, 조합설립에 동의했던 상가 소유주가 분양신청을 하지 않으면서 조합원의 지위를 상실했다.
이후 조합은 대구 북구청으로부터 감정평가업자 2인을 추천받고 2021년 9월 감정평가액을 산술평균한 금액으로 상가 소유주에게 매수협의를 위한 요청서를 발송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 상가 물건을 대상으로 매도청구 소송을 진행했는데, 상가 소유주는 조합과의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감정평가 결과에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대구지법 재판부가 상가 영업손실에 대한 감정평가를 권고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재판부가 상가 측의 의견을 반영해 영업손실에 대한 감정평가를 결정했지만, 재건축사업은 영업손실 보상근거를 명시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대상이 아니다.
결국, 의뢰를 받은 감정평가업체들이 ‘감정평가 자체가 불가하다’는 의견서를 상가 측에 전달했고, 상가 측이 재판부에 새 감정인을 요청하는 식으로 판결 지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상가 소유자 측은 “감정인은 법원에서 채택한 감정사항에 대해 감정하면 되는 것이고 채택한 감정 결과는 법원이 판단할 사항임으로 감정인은 법리적 판단으로 감정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라며 법원에 새로운 감정인을 요청했다. 법원은 이러한 상가 소유자 측의 주장에 따라 재차 감정평가를 권고하는 상황이다.
▲분담금 우려에 결국 백기든 조합 “어떻게든 감정평가 해 달라” 호소
결국 조합은 3번째 감정평가 의뢰를 맡은 업체에 연락해 법리적인 판단 근거나 사례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감정평가를 진행해 달라고 사정하게 된다. 조합이 지난 2021년 11월 시작된 매도청구 소송이 무려 2년이나 지연됐고 현재 1심 판결조차 나지 않아 사업이 답보상태에 머물면서 결국 조합이 백기투항을 한 것이다.
하지만 새 감정인을 통한 감정평가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예상감정료를 산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상가의 수입과 지출비용 등에 대한 자료가 필요한데, 상가 측이 감정채택 사항을 감정평가사에게 전달하지 않아 감정평가 절차가 지연된 것이다.
결국 조합이 감정평가 진행을 위해 상가와 재판부, 감정평가업체 등을 오간 뒤 예상감정료 산정이 이뤄졌고 재판부는 오는 9월 25일 변론기일을 확정한 상황이다.
조합은 지난 2월 탄원서를 통해 “현재 전국적인 부동산 경기악화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공사비 증액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미 종전주택에서 이주한 조합원들의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라며 “상가 측의 의도적인 소송 지연으로 건물 철거조차 진행할 수 없고 늘어나는 사업기간 만큼이나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증액될 수밖에 없다”며 법원의 신속한 재판 진행을 호소했다.
▲민간사업 재건축이 재개발처럼?…“재건축업장 올스톱”
상가 영업보상이 명시된 재개발의 경우 공익사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수용재결이라는 공적장치가 가동된다. 토지등소유자와의 협의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공익을 위해 토지수용위원회가 보상금 또는 공탁을 조건으로 수용효과를 완성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손실보상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이 공익사업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보상절차가 명료하다.
하지만 민간사업인 재건축은 수용재결과 같은 공적장치가 없기 때문에 시세에 맞춰 소유주 물건을 매입해 토지사용권을 확보해야 한다. 만약 재건축사업도 상가 세입자의 영업손실까지 보상한다면 막대한 보상비용 증가로 사업성이 급락, 사실상 재건축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더불어 조합장의 배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재건축상가 영업보상 논의는 법리적인 검토단계에서 이미 좌절된 바 있다. 앞서 지난 2019년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재건축 조합도 상가의 영업손실을 보상하도록 명시한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법리적 토대가 민간사업인 재건축이 공익사업인 재개발처럼 상가 영업보상을 시행하면 도시정비법의 취지가 흐려지고 관계법률과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중단됐고 결국 폐기됐다.
한 법무법인 수석변호사는 “수용재결이라는 강제성과 공익사업법에 근거한 재개발도 상가 영업보상은 갈등의 쟁점이 되는 문제인데, 토지사용권을 소송으로 풀어가는 재건축까지 영업보상을 강제할 경우 사실상 재건축이 중단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법원 및 전국적인 판례가 쌓여있고 이미 현실적·법리적인 여러 문제로 입법까지 저지됐다는 점을 대구지법이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