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익 정비기획원 이사
김태익 정비기획원 이사
“요즘 조합 총회 분위기는 카오스 상태 어설픈 출구전략이 주민 갈등만 조장”
  • 김병조 기자
  • 승인 2012.09.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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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익  
정비기획원 이사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사업하지 말자는 얘기가 총회장에서 논의되는 시대다.”

사업 중단 여부를 결정짓는 중대 사안들이 총회장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김태익 정비기획원 이사는 요즘도 꾸준히 한 달에 한두 번 씩 총회 사회자로 활동한다. 그는 예전에 비해 총회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총회 사회자가 전하는 최근 총회장 분위기를 들었다.

▲총회장 분위기, 예전에 비해 뭐가 달라졌나=사업 중단 얘기가 총회장에서 자주 거론된다는 점이다. 정비사업에 훈풍이 불었던 2007년만 하더라도 이런 주장은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그때도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사업을 추진한다’는 대전제는 결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에는 동의하되 사업 추진 방향과 관련해 이러이러한 점은 반대한다’는 게 논쟁의 대상이었다. 여기서 ‘이러이러한 점’이란 공사비가 될 수도 있고, 마감재 수준일수도 있고, 조합집행부에 대한 개인적 감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공사비 및 마감재 수준과 조합집행부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사업추진 여부라는 가장 본질적인 내용이 논의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총회장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카오스다. 사업을 중단하려고 해도 중단 이후의 수습방안이 없고, 추진하려고 해도 분양경기 침체로 추진동력을 잃었다. 때문에 총회장에서 어떠한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명쾌한 답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정부의 출구전략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공허한 출구전략 정책의 폐해가 총회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현재 정부의 출구전략 정책은 그 작동 시기를 가늠할 수 없다. 단적으로 매몰비용 지원 문제가 대표적 사례다. 법적 취지는 좋다. 사업을 중단할 경우 공공에서 비용을 보전해주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구체적인 작동 시기를 알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이 모호한 상황은 조합 내에 분쟁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사업중단 여부를 놓고 두 패로 갈려 매몰비용이 충분히 지원된다는 측과 현실적으로 지원되지 않는다는 측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에서는 비용 지원을 자치단체 조례에 위임해 놓았지만 자치단체에서는 재원 문제로 명확한 지원 규모와 시기에 대해 입다물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합 내 논란은 계속 커지고 있다.

▲출구전략 부작용의 다른 사례는 뭐가 있나=어설픈 출구전략은 도시계획의 기반까지도 흔들고 있다. 최근의 정비계획은 단위 사업장 별로 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구역을 감안해 계획이 수립된다.

 

우리 구역만의 계획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구역과 인근 구역을 모두 포함해 서로 연계된 계획이 수립된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우리 구역만 사업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컨대 우리 구역과 인근 구역 사이에 넓은 도로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계획돼 있고, 그로 인해 우리 구역의 아파트 층수가 결정된다.

 

그런데 출구전략 정책 상황 속에서 우리 구역은 사업을 추진하는데 바로 옆 구역은 사업을 포기했다고 치자. 기존에 광역적으로 계획된 도시계획은 무효가 되고, 사업을 중단한 인근 구역과 달리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우리 구역은 우리 구역만을 대상으로 별도의 정비계획을 새로 수립해야 한다. 현재의 좁은 도로가 존치되고 사선제한으로 우리 구역 아파트 층수가 낮아질 것은 물론이다.

 

당초의 사업계획 자체가 틀어지게 된다. 현행 출구전략 정책은 이런 피해 상황에 대한 고려가 돼 있지 않다. 현행 출구전략 정책은 한 마디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렵게 만들고 사업을 중단하기는 쉽게 만들어 놓았다. 3/4의 동의를 얻어 사업을 추진하자는 취지의 정비사업조합이 설립됐다면 사업을 중단하는 것도 동일한 동의율을 충족시켜야 하는 게 상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총회장 단상에 서면 그날 진행될 총회 상황이 미리 예상되나=예상할 수 있다. 청중석의 조합원 열기의 정도가 좋은 잣대가 된다. 자리를 메운 조합원들의 참석 정도를 유심히 본다. 또한 서면결의 숫자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서면결의가 적은 곳은 총회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서면결의가 많다는 것은 조합원들이 조합집행부의 추진방향을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서면결의가 적다는 것은 총회장에서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의사다. 조합집행부의 추진 방향에 대해 이의가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 경우 총회장에서 찬반을 놓고 활발한 토론이 벌어진다.

 

총회 진행은 100~300가구 규모의 조합 총회가 가장 어렵다. 오히려 1천가구가 넘는 대형 사업장은 총회 진행이 쉽다. 서울에서도 1천명 수용할수 있는 공간이 드물다. 때문에 대형 사업장의 총회는 해당 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개최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이동의 불편으로 서면결의서 접수가 많아진다.

 

또한 대형 사업장은 투자자 비율이 높아 외부 거주자가 많은 관계로 서면결의서 제출비율도 높다. 반면 100~300가구 규모의 정비사업 총회는 구역 인근 교회나 주민자치센터 같은 곳에서 열린다. 조합원 직접 참석률이 높고 원주민 비율도 높아 그만큼 안건에서 벗어난 다양한 ‘동네이야기’들이 넘쳐나면서 총회 진행 속도는 느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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