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하나 못 넓히는 도시재생사업… 공공재개발 해달라”

2020-10-12     최진 기자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도시재생사업의 무용론·반성론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된 주민들의 목소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 시범단지로 야심차게 발표한 ‘서울 도시재생 1호사업지’ 곳곳에서는 주민들이 공공재개발을 추진해 달라며 정부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창신동은 지난 2007년 뉴타운지구로 선정됐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뉴타운출구전략에 따라 지난 2013년 구역해제 됐다. 이후 서울시는 뉴타운 사업의 대안을 제시할 목적으로 지난 2015년 2월 이곳을 도시재생 1호 사업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5년간의 도시재생사업 완료를 앞둔 창신동 주민들은 돌연 공공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동의서를 확보하고 나섰다.

주민들이 도시재생사업에 등을 돌린 이유는 주거개선 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공적자원이 투입된 사업내용이 오히려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저해한다는 불만 때문이다. 도로확장이나 기반시설 마련은 뒤로 한 채, 담벼락 벽화나 박물관 신축, 관광자원 설치 등에 사업비를 쏟아 주거환경 개선은 물론, 낙후지역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분통이 터져 나오고 있다.

▲주거지 재생예산 200억원…  문화·관광시설로 소모

서울시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봉제산업이 발달했던 창신동 일대를 되살리겠다며 2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다. 서울시의 도시재생 예산사용을 보면 백남준기념관·봉제역사관 등의 신축에 100억원, 벽화그리기 등 마을거리 정비와 CCTV 설치에 70억원을 집행했다. 이밖에도 마을회관이나 놀이터 등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롭게 단장했지만, 주민들은 주거환경 개선과 무관한 사용처에 예산이 집행됐다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주민은 “주민들은 정부가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도시재생사업이고 전국 1호 도시재생 선도지역이기 때문에 기대가 컸지만, 사업완료 시점에서 돌아보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면서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방치하는 사업이었다”라며 “정책을 내놓은 정치인을 붙잡아서 이곳에 일주일만 살게 해도 이런 엉터리 정책은 내놓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또 다른 주민은 “창신동은 도시재생 유형중에서도 ‘주거지’지원사업에 해당하지만, 예산 대부분은 문화·관광시설을 만드는 것에 사용됐다”라며 “정작 주거지 개선을 위해서는 집수리비 일부를 지원하는 수준이라서 결국 정비구역 해제 이후 창신동은 비좁은 골목길 하나 넓혀지지 않은 낙후된 지역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 위협받는 창신동 주민들 민원·청원 본격화

주민들은 태풍이나 폭우 등 자연재해로 인해 위험 건축물이나 낡은 담벼락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고 있다며 정부가 주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서라도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고집을 버려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현재 창신동 주민들은 공공재개발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공공재개발 참여를 위한 사전의향서를 작성·배포하고 있다. 준비위는 도시재생 중단과 공공재개발 찬성 성명서 1천300장을 모아 서울시와 종로구청에 제출하고 단체로 민원·청원에 나서고 있다. 

창신동과 마찬가지로 서울 도시재생활성화구역에 선정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들도 최근 공공재개발 추진을 위해 공공재개발추진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현재 위원회는 공공재개발 주민홍보방법 및 사업추진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미 도시재생사업 예산이 투입된 곳은 공공재개발을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서울시와 주민들 간의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도시재생사업에 불만을 느끼는 지역 주민들이 타 구역과의 연대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도시재생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