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2)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2)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5.04.21 15: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합원 자격이 인정되는 한 조합원의 권리인 임원 피선출권을 제한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맨날 물어보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 주십시오.”


강치호 변호사는 늘 이런 식이었다. 바쁠텐데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설명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의문이 풀리는 듯했다.


공짜 자문이라 한편으로 미안했지만 언젠가 보답할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부담이 덜했다.


“회장님, 조합설립동의서를 내지 않았다고 해서 출마자격을 제한하면 안된다는데요?”


“누가 그래?”


“강치호 변호사님이요.”


“왜 그런다는데?”


“재건축과 달리 재개발은 조합설립동의서 제출 여부를 떠나 토지등소유자라면 모두 당연 조합원이 되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수원에서 그런 제한을 두었다가 총회개최금지를 당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음...”


이동호의 답변에 민익선이 고민에 빠진다. 출마자격을 제한해 두면 분명 동의서 걷기가 수월할 것이다.


게다가 추가구역을 중심으로 조직화되고 있는 비대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요즘 걸핏하면 소송을 걸어오는 판국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 부장, 국회에서 도정법을 개정한다는 이야기 못들었나? 창립총회에 무슨 제한을 둔다고 하는 것 같던데? 이상한 규정 만들어지기 전에 빨리 총회해서 조합설립인가를 내버리자고.”


“예.”


2009년 1월 20일 용산사태 발발 이후 재건축재개발은 야당의 총 공세를 받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이 재건축재개발로 흥행몰이에 성공한 것이 내심 못마땅했던 야당은 재건축재개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야당은 재건축재개발을 개발논리로 포장시키기 시작했다. 재건축재개발사업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립의 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때마침 발생한 용산사태는 이러한 논쟁에 불을 붙였고 야당은 재건축재개발사업에 규제를 가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동호 부장도 만전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조합창립총회에서 다루어져야 할 안건들을 추렸다.


조합창립총회는 말 그대로 조합을 만들어 내는 총회이다. 조합운영의 근간이 되는 조합정관, 조합운영규정, 선거관리규정 등을 확정하고 조합장, 감사, 이사, 대의원들을 선출해야한다.


조합정관, 조합운영규정, 선거관리규정 승인의 건

조합임원(조합장, 감사, 이사) 선출의 건
대의원 선출의 건

또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사용한 모든 비용들을 결산하고 새로 설립될 조합 운영예산안을 확정해야 한다.

추진위원회 결산보고의 건
조합 운영예산안 수립의 건


조합임원들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선거관리규정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입후보등록공고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동호 부장은 밤을 새워가며 자료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추진위원회의를 개최하였다.


제1호안건 선거관리규정(안) 승인의 건
제2호안건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의 건
제3호안건 조합창립총회 개최의 건


역시 예상대로 박두수가 조합장 출마를 선언하고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것은 단일후보구도를 만들어 만장일치 추대형태로 사업을 끌어가는 것이다.


민익선은 박두수를 설득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전혀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벌써부터 조합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세력을 결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를 어쩐담.’


박두수는 권력의 맛을 아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새마을금고 이사장을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반면, 김현수는 그런 면에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업자들과 술 한 잔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두수같은 사람이 조합장이 되면 엄청 피곤해진다. 이것저것 챙기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지. 어떻게든 김현수를 당선시키는 수밖에...’


그날 밤 민익선이 김현수를 찾았다.


“위원장님, 아무래도 박두수가 딴 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바탕 결전을 치러야만 할 것 같습니다.”


박두수 측의 견제가 심했다. 신경전은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는 단계에서부터 벌어졌다.


선거관리위원 모집공고문


조합창립총회에서 앞으로 조합을 이끌어갈 조합장, 이사, 감사를 선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조합 임원 선출 절차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하여 토지등소유자님들로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자 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   음


선출인원 : 5명
자    격 : 토지등소유자 본인에 한함 
신청기간 : 2009년 1월 25일 09:00 ~ 2009년 1월 31일 17:00
선출방법 : 추진위원회의에서 투표에 의하여 선출 


“어떻게든 우리 쪽 사람을 3명 이상 당선시켜야 합니다.”


송기호와 박두수가 당선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까지 신경써야 하는 건가요. 선관위야 공정하게 절차만 진행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하, 모르시는 말씀. 선관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관위를 장악하면 반은 이미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송기호의 말에 박두수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우선 믿을 만한 사람들로 선관위를 장악해야 합니다. 선관위원 후보자로 가능한 많이 등록시키세요. 그리고 우리 쪽 사람들이 선관위원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사전에 추진위원들을 작업해 둬야 합니다. 특히 선거관리위원장이 문제입니다. 선거관리위원장은 선거관리위원들이 호선으로 선출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최소 3명은 선관위원으로 만들어야 우리 쪽 사람을 선거관리위원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치열한 신경전속에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선거관리위원장이 선출되었다. 다음날 입후보자 등록공고문이 나붙었고 2주일 뒤 입후보등록이 마감되었다.


예상대로 조합장 후보로 김현수와 박두수가 등록하였고, 조합 감사 선출 부문에는 2명 선출에 3명이, 조합 이사 선출부문에는 7명 선출에 8명이 등록하였다. 각 부문별로 한명씩 떨어지는 구도였다.


2009년 3월 22일.


“조합설립동의서가 조금 모자라는데 어쩌죠?”


“몇 장이나 모자라는데?”


950명의 75% 이상이므로 713장은 걷어야 한다.


“15장 모자랍니다.”


“총회개최공고 내.”


“아직 모자라는데 개최공고를 내도 될까요? 총회 당일까지 채워지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총회개최공고가 나가면 동의서가 더 들어오게 되어 있어. 일단 개최공고부터 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