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7)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7)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
  • 승인 2015.07.15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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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말씀은 알아듣겠는데, 구청에서 해줄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 의외로 완고하거든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리겠습니다. 의견서도 써 드리고 필요하면 방문해서 설명도 해드리겠습니다.”

이동호와 강치호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는 듯하자 김현수가 기다렸다는 듯 묻는다.
“시공사선정 결의 무효확인 소송은 어떻게 한대요?”

“그 건은 백두건설에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박남진 부장하고 통화했는데, 백두건설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동호의 대답이다. 시공사 선정이 무효가 되면 결국 타격을 받는 것은 시공사이다. 가계약을 체결하고 조합운영비와 사업비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대여해 왔는데, 자칫 잘못하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의 시공사인 대형 건설회사들은 중요한 소송이 제기되면 국내 1,2위 로펌에 사건을 의뢰하는 것이 관행이다. 중소 법무법인이나 아무리 전문가라도 개인변호사에게 맡겼다가 지게 되면 변호사를 잘못 선정해서 진 것 아니냐는 문책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동호의 대답에 김현수가 강치호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아니, 내 말은 시공사 선정이 무효라고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냐는 겁니다. 변호사님 그럼 돈도 빌려 쓸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백두건설이 현장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대응을 하기로 한 이상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시공사 지위가 유지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받은 후에 다시 시공사를 선정하면 됩니다.”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받고 나서 시공사를 다시 선정한다고요?"”

“예. 추진위원회에서 시공사를 선정한 것이 무효라는 것이니 조합에서 다시 시공사를 선정하면 다 해결됩니다. 다만, 조합설립인가취소소송이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니 안전하게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받고나서 시공사를 선정하면 됩니다.”

“요새는 시공사 선정 절차가 까다롭다면서요?”

“네. 국토해양부에서 제정한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기준’에 따라야 합니다.”

김현수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예전에 시공사 선정할 때 백두건설과 한라건설이 경합했는데, 한라건설은 박두수를 등에 업고 활동했었다. 시공사를 다시 선정한다고 하면 박두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동호는 얼마 전부터 주거환경연구원에서 강의를 듣고 있었다. 도정법이 자주 바뀌고 그 내용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혼자 쫓아가기에 벅찬 감이 있었는데, 마침 민 회장이 강의를 들으라며 수강료를 내준 것이다. 과정을 마치고 나면 주거환경정비사 자격증까지 준다고 하니 일석이조였다. 오늘은 강치호 변호사의 ‘반대파의 성향을 파악하고 대처하라’는 주제의 강의가 있는 날이다.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려면 토지등소유자 75%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80%였다가 75%로 하향 조정되었지요. 조합설립을 하는데 토지등소유자 100% 동의로 하지 않고 왜 75%로 했을까요? 그 이유를 아시는 분?”

강치호 변호사가 질문을 던지고 수강생들을 둘러본다. 40여명 정도 되는 수강생들 모두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을 해주셔야 수업이 진행됩니다. 하루 종일 일하시고 피곤하시겠지만 기왕에 하는 것 제대로 해야 아깝지 않지요.”

강치호 변호사가 주의를 환기하며 대답을 재촉하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수강생 한명이 용기를 내어 대답한다.

“동의서 걷기가 어려우니까요. 75% 걷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75% 걷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요. 그럼 왜 이렇게 동의서 걷기가 힘든 것일까요?”

강치호 변호사가 대답한 수강생을 바라보며 되묻는다.

“반대파 때문에 그렇지요. 요즘은 반대파 때문에 일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드디어 제가 원하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반대파! 어르신께서 일하시는 현장에도 반대파가 있습니까?”

“아, 말도 마세요. 비상대책위원회란 이름으로 유인물을 뿌리고 문자메시지를 날리고 플래카드를 내걸지 않나 보통이 아닙니다.”

“지금 조합설립동의서를 걷고 계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조합설립동의서를 내면 쪽박차고 쫓겨나게 되니 절대 동의서를 써주지 말라고 토지등소유자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OS를 동원해도 동의서 한 장 걷기가 힘듭니다. 이럴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추진위원장님이신 것 같은데요?”

“네. 부천 소사재정비촉진구역의 추진위원장입니다.”

“그 구역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비대위로 활동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냐니요? 당연히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지요?”

“반대파에는 크게 생계형, 명예형, 이권개입형의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생계형 반대파는 재건축·재개발이 되더라도 추가부담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거나 구역 내에서 장사를 하거나 임대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재건축·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질문을 통해 원하는 주제를 이끌어낸 강치호 변호사가 본격적으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반면, 명예형 반대파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사업을 반대하는 유형입니다. 재건축·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은 오랫동안 마을이 형성·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토지등소유자들 사이에 복잡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좋은 관계도 있지만 안 좋은 관계도 있고 경쟁관계도 있기 마련입니다. 명예형 반대파는 이런 감정적인 이유로 재건축·재개발에 반대하는 유형입니다. ‘재개발은 좋지만 저 놈이 앞장서는 재개발은 할 수 없다’는 식이지요.”

‘딱 우리 구역이네’

이동호가 강의 노트에 ‘안암6구역 박두수 - 명예형’이라고 쓴다.

“이권개입형 반대파는 말 그대로 리베이트를 목적으로 조합 집행부가 될 야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뒤에 업체들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지요. 생계형, 명예형, 이권개입형. 여러분들이 몸담고 계신 현장에는 어떤 유형의 반대파가 활동하고 있습니까?”

강치호 변호사의 질문에 수강생들 각자 자기 구역은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지 생각해 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대파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올바르게 대처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럼 각 유형별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까요?”

비로소 수강생들의 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생계형 반대파에 대해서는 재건축,재개발이 이들의 재산증식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매도청구소송이나 수용에 의하여 재산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해서 강압적으로 사업을 진행해서는 안 됩니다. 생계형 반대파는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기반이 흔들릴까 두려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압박하면 더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용산사태 같은 경우가 그런 사례입니다. 설명회를 자주 열어서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이들의 재산이 증식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중대형 아파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10평형 대의 소형아파트를 지어 추가부담금 없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아파트 일부를 임대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분하는 설계방식도 강구되고 있습니다. 현금청산절차 등에 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외에도 생계형 반대파를 끌어안을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이 많을 것입니다. 핵심은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강치호 변호사가 말을 멈추고 수강생들을 바라본다. 대체로 공감하는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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