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8)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38)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
  • 승인 2015.08.06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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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형 반대파는 인간관계로 풀어야 합니다. 감정싸움이 사업반대로 이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풀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화해를 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리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분담하여 같이 가는 겁니다. 조합장, 부조합장, 총무이사, 관리이사 등 상근 임원으로 함께하는 거죠. 실제 이런 방법으로 화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것보다 주민들을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고 보람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권개입형입니다. 이들은 금전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화해나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존 집행부를 몰아내고 자신들이 조합 집행부가 되어야만 하는 입장이라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좋은 게 좋다라는 생각으로 섣불리 대화나 타협을 시도하다가는 오히려 틈을 주고 끌려가게 됩니다. 이들의 활동을 그냥 좌시해서도 안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것 봐라, 구린 데가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토지등소유자들을 선동하기 일쑤입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민형사상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형사상으로는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로, 민사상으로는 손해배상이나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강치호 변호사가 지우개를 들어 화이트보드 한쪽 면을 지운다. 판서를 하며 설명하다 보니 어느새 빈 공간이 없게 된 것이다.

“이상 세 가지 유형의 반대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이들 반대파들은 재건축재개발 내지 현 집행부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 연합하기도 하고 성격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권개입형 반대파들은 검은 속내를 숨기고 생계형 반대파나 명예형 반대파와 결속하여 사업을 방해하고 토지등소유자들을 선동합니다. 임원들이 각종 비리를 통해 이권을 챙기고 있다며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조합운영정상화를 명분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반대활동을 주도하는 것이지요. 또 명예형과 이권개입형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명예감정이 작용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권에 개입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2010년 8월 20일 안암예식장 웨딩홀.
안암6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임시총회가 진행중이다. 식순을 보니 안건은 모두 4가지이고 강치호 변호사가 사회를 맡고 있다.

제1호 안건 조합정관, 조합운영규정, 선거관리규정 인준의 건
제2호 안건 조합임원 선출 인준의 건
제3호 안건 대의원 선출 인준의 건
제4호 안건 조합설립변경인가 신청의 건

“자, 그럼 제3호 안건 심의를 마쳐도 되겠습니까?”
“예.”
“이의 없으십니까?”
“네.”

“그럼 3호 안건 심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조합원님들께서는 제안사유와 발언하신 분들의 의견을 심사숙고하시어 찬반의 의사를 결정하시고 투표로써 명확하게 본인의 의사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제4호 안건 조합설립변경인가 신청의 건에 대한 심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안사유를 보겠습니다. 조합원님들께서는 총회책자 198페이지를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조합은 2009. 5. 1. 조합설립인가를 득하고 현재 건축심의를 득하기 위하여 노력중입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말 일부 토지등소유자들이 조합설립동의율이 75%에 미달된다는 사유 등으로 서울행정법원에 조합설립인가취소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소송이 진행중입니다.

조합은 재건축재개발 전문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하고 있습니다만 원고들이 제기한 취소사유가 워낙 많아 그 중 하나라도 받아들여진다면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 조합은 조합설립변경동의서를 징구하여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득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로 방침을 정했고, 조합원님들께 상황을 설명하고 조합설립변경동의서를 징구해 왔습니다.

조합원님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로 동의서 징구를 시작한 지 불과 2개월여만에 75%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합은 2009. 4. 10. 창립총회 당시 조합정관, 조합운영규정, 선거관리규정을 확정하고 조합임원 및 대의원을 선출한 바 있습니다. 금일 임시총회에서 모든 안건들이 가결되면 즉시 성북구청에 조합설립변경인가를 신청하고자 합니다.

“본 안건의 법적 근거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6조 제1항, 동법 시행령 제22조의2이고, 의결 주문은 제4호 안건 조합설립변경인가 신청의 건에 대하여 찬성 또는 반대의 의결을 한다라는 내용입니다. 이상 사회자의 제안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본 안건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사항이나 의견이 있으신 조합원님은 발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강치호 변호사가 제안설명을 모두 마치고 조합원들을 바라본다. 웨딩홀에는 약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하고 있다. 셋째 줄에 앉아 있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조합원이 손을 든다. 강치호 변호사가 보고 안내 멘트를 한다.

“여성분이 손을 드셨군요. 앞으로 나오셔서 마이크를 잡으시고 지번과 성함을 말씀하신 뒤 조합원님들을 향하여 발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손을 든 여자 조합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앞으로 나와 진행요원이 건네주는 마이크를 잡고 발언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1543-21번지를 소유하고 있는 김숙희라고 합니다. 질문이 있어서 나왔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했는지도 궁금하고요. 또 어떤 문제를 제기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아울러 조합설립변경동의서를 징구하는데 홍보요원 일당 등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조합에는 제반 행정업무를 대행해주는 정비업체가 선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당초 조합설립동의서를 걷을 때 잘 했더라면 이런 비용이 들어갈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받는데 들어간 비용은 정비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닌지 궁금합니다.”

질문이 끝나자 ‘옳소’하며 박수치는 조합원들이 다수 있다.

“이 문제는 제가 답변을 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조합을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답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누가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는지, 조합설립인가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업무를 잘못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가 비용을 부담하여야 하는 것 아닌지. 맞습니까?”

강치호 변호사가 질문한 여성을 바라보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맞습니다.”

“순서대로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조합설립인가취소소송은 조합원 7명의 이름으로 제기되었습니다. 공개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모든 재건축재개발 현장에는 사업을 반대하시는 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분들은 어떻게든 사업추진을 막아야하기 때문에 절차상의 하자를 찾아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조합원님들께서도 매스컴을 통해 보셨겠지만 이런 소송이 제기된 현장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서울 시내 대부분의 현장들이 이런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재건축재개발사업은 도정법이 정하고 있는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매뉴얼이 완비된 상태는 아닙니다. 비대위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면서 과거에는 문제시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업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절차가 잘못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된 권리이기 때문에 이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법원에서도 비대위가 제기하는 소송은 합법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답변이 되셨습니까?”

강치호 변호사 웨딩홀을 둘러본다. 많은 조합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하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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