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부담 사항 구체적 정하지 않은 재건축 결의는 무효”
“비용부담 사항 구체적 정하지 않은 재건축 결의는 무효”
  • 최영록 기자
  • 승인 2008.03.26 0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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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6 11:24 입력
  
법원 “비용분담 구체적이지 않다” 잇딴 판결
고법·대법서도 같은 결론땐 사업에 ‘빨간불’
 
법원이 매도청구소송에서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재건축결의는 무효’라는 이유로 잇따라 조합 패소판결을 내리고 있어 전국적으로 혼란이 예상된다. 특히 정부가 정해준 〈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운영규정〉 상 조합설립동의서 양식을 그대로 준용했는데도 패소판결을 받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조합설립동의서 양식 중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을 법원이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최근 대구에 이어 서울 은평구 소재 S재건축조합도 매도청구소송에서 패소함에 따라 이같은 현상은 지방에 이어 서울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도 역시 법원은 재건축조합이 조합설립인가 당시 조합설립동의서에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재건축결의가 유효하지 않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민유숙)는 “조합설립동의나 미동의자에 대한 최고 시점에는 이후 재건축의 실행단계에서 다시 재건축 비용분담이나 신건물 소유권 등에 관한 합의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기준이 정하여져 있어야 한다”며 “조합설립동의서나 최고서에는 토지등소유자가 이를 기초로 조합설립 및 재건축에의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한 내용이 기재되지 않은 서면에 의한 동의는 효력이 없다”며 “나아가 이를 기재하지 아니한 최고는 부적법하다”고 조합 패소판결을 내렸다.
 
또 법원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정 이전의 재건축사업에 있어서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7조제3항에 의하면 재건축의 결의를 할 때에는 건물의 철거 및 신건물의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과 신건물의 구분소유권의 귀속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위 사항은 재건축 결의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으로써 재건축의 실행단계에서 다시 비용 분담에 관한 합의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분담액 또는 산출기준을 정하여야 하고 이를 정하지 아니한 재건축 결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고 구 〈주택건설촉진법〉 당시 재건축결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조합 측에서는 “건설교통부가 고시한 운영규정대로 조합설립동의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재건축결의가 유효하지 않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또 재건축 전문가들도 “이번 하급심에 이어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에서도 같은 결론이 내려질 경우 전국의 재건축사업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서울 은평구 S조합은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할 당시 건교부가 고시한 추진위 운영규정 별지3호 양식을 그대로 준용했다.
 
S조합은 이 양식에 따라 비용의 분담사항을 △조합정관에 따라 경비를 부과하고 징수하며, 관리처분계획인가 후 분할징수·지급하고, 조합청산 시 청산금을 최종 확정함 △조합원의 소유자산의 가치를 조합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산정하여 형평의 원칙에 의거 조합정관에서 규정한 관리처분기준에 따라 비용 및 수익을 균등하게 부담·배분함 △시공사에 지급할 공사금액 및 사업 관련 제반비용은 주택 및 부대복리시설의 일반분양 수입금과 조합원총회에서 결의되거나 서면동의한 조합원분담금으로 우선 충당하고, 부족금이 발생할 경우 조합정관 및 관리처분기준에 따라 공평하게 분담함 등으로 정했다.
 
이후 S조합은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은 토지등소유자들은 물론 건축물 또는 토지만을 소유한 자들에게도 최고장을 발송하고 회답이 없자 이들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소송을 제기했다. 그럼에도 서부지법은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할 당시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확정짓지 않았다며 매도청구 패소라는 철퇴를 내린 것이다.
 
이같은 추세의 판결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다. 〈도정법〉에 따라 추진되는 재건축에 대해 〈주촉법〉 당시의 대법원 판례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다. 〈도정법〉이 시행되면서 종전의 재건축결의는 조합설립동의로 갈음되고 있는데 법원은 여전히 〈집건법〉의 재건축결의와 혼동해서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똑같이 결론내려질 경우 전국의 모든 조합이 매도청구소송에서 패소할 수도 있어 사업에 빨간 불이 켜지게 됐다.
 
실제로 전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재건축의 경우 지난 2003년 7월 시행된 〈도정법〉을 적용받고 있으며, 건교부가 고시한 추진위 운영규정 별지3호 서식에 따라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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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 불가피… 시행령 격상도 한 방법
 
■ 대안은 없나
 
전문가들은 조합설립동의서 양식 중 비용분담에 대한 이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현행 〈도정법〉을 개정하거나, 시행령까지 격상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주택재건축사업의 경우에는 〈집건법〉 제47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운영규정 별지서식의 조합설립동의서 양식대로 동의서를 징구하여야 한다’라는 조문을 넣으면 된다는 얘기다. 또는 조합설립동의서 양식을 단순히 법률의 하위규정이 아니라 시행령의 별표까지 위치를 격상시킨다면 해결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김조영 변호사는 “일선 재건축조합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법 개정작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법 조문에 운영규정 별지서식대로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삽입한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한중의 홍봉주 변호사는 “조합설립동의서를 지침이나 운영규정처럼 하위규정에 놓지 말고 시행령으로 격상시키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동의서를 새롭게 징구하는 게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법무법인 동인의 맹신균 변호사는 “아직 하급심 판결이긴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선 관리처분 단계에서 재건축동의서를 새로 징구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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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해도 패소” 억울
 
■ 조합 입장
 
일선 재건축조합들은 “법대로 동의서를 걷고,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는데도 패소하게 됐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든, 운영규정이 잘못됐든 그로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이 보게 됐다며 제도개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매도청구 소송에서 패소하게 되면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재건축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정부정책이 바뀐다든지, 각종 심의과정에서 용적률이 줄어든다든지 하는 등 사업계획 변경은 통상 있기 마련이다. 또 사업계획이 변경되면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 또한 그에 따라 바뀌게 된다.
 
S조합 관계자는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은 관리처분계획수립 단계가 돼야 비로소 구체적인 윤곽이 잡히게 된다”며 “사업초기 단계인 추진위 단계에서 징구하는 동의서에 어떻게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재건축에 대한 몰이해에서 이같은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조합설립동의서 양식은 추진위 운영규정에 있는 것인데 법대로 절차를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면 억울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현재로써는 어떻게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지 막막한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법을 개정하거나 확실한 지침을 내려줘야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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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청구는 절차 이행 규정한 것”
 
■ 전문가 입장
 
전문가들은〈도정법〉상 매도청구는 〈집건법〉의 절차를 준용하는 것인데도 법원이 이를 과도하게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국토의 김조영 변호사는 “현행 〈도정법〉이나 시행령, 시행규칙 어디를 보더라도 ‘재건축결의’라는 용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며 “오로지 법 제39조 매도청구소송 조문에 있어 〈집건법〉 제48조 규정을 준용하면서 재건축결의를 조합설립동의로 본다고 할 때만 재건축결의라는 용어가 나올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도정법〉 제39조(매도청구)는 “사업시행자는 주택재건축사업을 시행함에 있어 조합설립의 동의를 하지 아니한 자(건축물 또는 토지만 소유한 자를 포함한다)의 토지 및 건축물에 대해아여 〈집건법〉 제48조의 규정을 준용하여 매도청구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재건축결의는 조합설립의 동의로 보며, 구분소유권 및 대지사용권은 사업시행구역안의 매도청구의 대상이 되는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권과 그 밖의 권리로 본다”고 규정돼 있다.
 
김 변호사는 “〈집건법〉 제48조는 재건축결의에 관한 조문이 아니라 매도청구의 절차에 관한 조문”이라며 “재건축조합이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면 유효한 재건축결의가 성립했다고 해석해야 옳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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