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의 침체와 무기력증
정비사업의 침체와 무기력증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2.09.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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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일 규
변호사/H&P 법률사무소
www.parkhong.com


런던올림픽의 열기가 한창이다. 우리 선수들의 메달 소식에 환호하기도 하고 상식과 동떨어진 오심사태에 불같이 분노하기도 한다. 


일 년에 한 번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여름 휴가에 시기적으로 올림픽이라는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가 절묘하게 맞물리기는 했지만 새벽까지 눈을 부릅뜬 채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 지금의 열혈 시청 모드는 역시 이례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올림픽 이벤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극심한 무기력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스스로의 진단이다. 그렇다고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내내 올림픽에 온전히 빠져 들어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잊는 것도 아니다. 머릿속 한 귀퉁이에는 여전히 정비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무겁고 어둡기만 하다.

얼마 전 정비사업에 관한 두 번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하나는 ‘법정 대의원수에 미달한 상태에서의 대의원회 의결이 적법한 것이냐’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비구역지정 요건과 관련하여 노후·불량건축물의 판단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법정대의원수를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대의원회 결의는 대의원회 구성이 부적법한 것이므로 효력이 없다는 기왕의 법제처 해석이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는 정비사업조합의 운영 실무를 고려하지 않은 탁상공론이라는 취지로 여러 전문가들이 비판의 날을 세운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비록 그에 관한 법리를 직접 설시한 것은 아니지만 심리불속행 기각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법제처가 내세운 법리를 채택하였던 항소심 법원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정비사업 조합들에게 대의원회 운영에 관한 무거운 부담을 얹어주었다.

 

당장 법정대의원수에 근소하게 미달한 상태에서 대의원회 의결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의 조합원총회 결의가 이루어진 경우 대의원회 구성의 부적법성이 조합원총회의 결의 효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노심초사하고 있는 조합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정비구역 지정요건의 하나인 노후·불량건축물의 판단방법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 역시 앞으로의 정비사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안전진단이라는 절차적 요건을 제한적 범위에서나마 마련해 두고 있는 재건축에 관한 판결이기 때문에 주택재개발사업이나 도시환경정비사업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견해도 있었지만 결국 대법원은 뉴타운 사업에 관한 재정비촉진계획에 관하여도 동일한 법리를 적용함으로써 노후·불량건축물의 판단방법에 관한 법리가 모든 정비사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을 통하여 이미 지나칠 만큼 손쉬운 출구제도가 채택된 마당에 아무리 정비사업 반대론의 기세가 등등한 상황이라 하여도 굳이 대법원까지 나서서 정비구역 지정단계에서 행정실무와 동떨어진 판결을 통하여 또 한 번 정비사업을 위축시킬 필요가 있었는지 유감스럽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개인적으로 위 두 쟁점에 관하여 줄기차게 대법원의 결론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개진하여 왔던 터라 그 판결이 준 충격은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다.


새로 도입된 출구제도의 적용이 현실화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조합관계자로부터 조합설립인가 취소신청이 접수되었다는 비통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 상황도 맞닥뜨리게 되었다. 정비구역지정과 추진위원회 승인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얻어낸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정비사업을 염원하던 해당 구역의 조합임원과  조합원들의 심정은 또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정비사업이 중단될 경우 그 동안 투입되었던 이른바 매몰비용의 처리에 관하여 뚜렷한 해결방안도 강구하지 못한 채 조합설립인가 취소라는 극단적 선택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조합은 법인이므로 조합원 총회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비용분담 비율에 관한 결의를 하지 않는 이상 조합의 채무를 구성원인 조합원이 책임질 위험은 없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정비사업의 즉각적 중단을 원하는 사람들의 귀에는 달콤할지 몰라도 정비사업조합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어서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논리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조합관계자들과 서로 힘내자는 말을 수시로 주고받아 보지만 시공사들조차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공허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금메달을 잘도 따내는 우리 선수들이 그랬듯 서로를 격려하며 끝까지 참고 견디는 수밖에.
 〈문의 : 02-584-2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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