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기열>재개발 주민 동의율 80%의 부작용
<시론 유기열>재개발 주민 동의율 80%의 부작용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5.12.0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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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7 17:05 입력
  
 
유 기 열
엘림토피아 대표이사
 
정비사업은 ‘한 동네’라는 작은 공동체 속에서 오랫동안 같이 부대끼며 살아온 주민들이 서로의 의견을 모아 어려운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동네의 큰 일’이다. 그래서 정비사업에서는 사업성도 중요하지만 첫째도 주민화합, 둘째도 주민화합이라 할 만큼 주민화합이 가장 중요하며, 정비사업의 성공여부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은 주민, 즉 ‘토지등소유자’의 자발적 동의를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고, 정비사업 절차를 단계별로 세분하여 각 단계별로 엄격한 양식에 의한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도정법’의 일부 규정은 악용될 경우 다수의 선량한 ‘토지등소유자’에게 돌아가야 할 정상적인 이익을 침해할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랫동안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살아온 주민들 간의 반목을 조장할 소지를 갖고 있다.
 
그 대표적인 규정이 바로 지나치게 엄격한 동의율을 요구하고 있는 제16조 ‘조합의 설립인가’규정이다.
‘도정법’이라는 통합법의 제정 이전에는, 조합설립인가에 필요한 동의율을 △도시재개발법에 의한 재개발의 경우에는 3분의 2, △주택건설촉진법에 의한 재건축의 경우에는 5분의 4로 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규정한 것은 재개발과 재건축의 제반 특성을 감안한 것이었다.
 
그런데, ‘도정법’이 제정되면서는 재건축과 재개발 모두 ‘토지등소유자’의 5분의 4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조합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다. 재개발사업과 재건축사업은 사업특성이 많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동일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재개발사업과 재건축사업은 사업특성상 여러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재개발사업은 소유물건의 형태가 소유자별로 모두 다르다. 토지, 건물의 위치와 면적, 노후도, 이용상황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별조합원들이 출자한 토지 건물의 재산가치를 추산하기가 어렵다.
 
둘째, 재개발사업은 관리처분방식이 다르다. 재개발사업은 법 제48조의 규정에 따라 사업이익을 배분하는 관리처분방식을 종전토지평가와 종후토지평가 방식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준용하지 않을 경우 ‘토지등소유자’ 전원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재건축사업의 관리처분은 재개발방식을 준용할 수 있도록 하되, 개별조합 상황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셋째, 재개발사업은 청산조합원이 다수 존재한다. 재개발사업구역 안에는 극히 적은 면적의 토지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토지등소유자’는 분양권을 받기 어렵고 결국 청산대상이 되기 때문에 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 또한 재건축사업에 비해 동의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넷째, 재개발지역은 공동주택과 달리 오랫동안 개별적으로 물건관리를 해온 특성과 복잡한 지적 특성상, 원초적으로 동의서 징구가 어려운 ‘토지등소유자’가 현장마다  5∼10% 정도는 존재한다.
 
위와 같은 점들을 고려하면 재개발사업에서의 5분의 4 동의율 요건은, 동의서 징구가 가능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여 산정할 경우 사실상 100%에 가까운 동의율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불로소득을 노리는 극히 일부의 악의적 미동의자만 결집해도 사업 추진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재개발을 간절히 원하는 대다수 선량한 동의자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
 
재개발사업시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강화된 동의요건이, 현실속에서는 선량한 동의조합원의 이익을 악의의 미동의자에게 돌리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고, 이로 인해 주민간의 극단적인 갈등까지 유발시키고 있는 중이다.
 
불로소득을 노리는 악의의 ‘알박기’폐해는 정상적인 경제활동 및 개발행위를 저해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심지어 ‘범죄행위’로 까지 인식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알박기의 폐해를 심각하게 인식하여, 최근 주택법에서는 순수 민간주택사업의 경우에도 ‘매도청구’의 길을 마련하였다. 또, 개정예정인 도시개발법에서는 민간사업자의 수용요건을 ‘토지등소유자’ 총수의 2분의 1이상 동의로 완화하였다.
 
정비사업, 특히 재개발사업은 공익적 성격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재개발사업에서 만큼은 ‘알박기’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설립인가의 동의율을 예전의 도시재개발법과 같이 3분의 2로 환원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동시에 구역지정 후 조합설립인가 신청 시까지 일정기간 내에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는 ‘토지등소유자’에 대해서는 관리처분시 불이익을 주도록 하여 ‘악의의 미동의자’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도록 하는 전향적인 제도개선이 절실하다.
 
결론적으로, 재개발사업의 현실상 조합설립인가에 필요한 5분의 4의 동의율 요건은 불로소득을 노리는 극소수 투기세력에 의해 ‘알박기’로 악용되어 오히려 주민화합을 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게는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재개발·재건축사업의 발목을 잡고, 크게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라는 정책목표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요건의 완화와 악의의 미동의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며, 이에 대한 정책당국의 애정어린 관심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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