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원의 국토이야기>낙동강 개수·運河계획
<김의원의 국토이야기>낙동강 개수·運河계획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5.11.23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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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3 14:57 입력
  
 
김 의 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압록강 다음가는 큰 하천이다. 유역면적의 22%가 농경지인데 특히 남강 합류점인 삼랑진 남쪽 지방에 비옥한 농토가 많을 뿐만 아니라 수리시설도 잘 발달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 농산물의 3분의 1이 낙동강 유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하천 가운데 가장 홍수가 잦고 피해가 큰 두통거리 하천이 또한 낙동강이다. 낙동강 하류는 구배가 완만한데다 조석의 영향으로 밀물 때는 물금까지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온다. 여기에 물금에서 삼랑진까지 19㎞ 구간은 강폭이 780m로 좁다.
삼랑진 상류와 물금쪽 하류의 폭 1천500m의 절반밖에 안되기 때문에 낙동강물이 이 구간을 빠져 나가는데 근 한달이 걸린다. 더구나 이 협소구간은 양쪽이 암석으로 형성되어 있다. 
낙동강 개수공사는 본류 연안공사와 남강 방수로계획, 하구(河口)에 해당하는 부산의 운하계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계획은 어느 하나의 독립적인 것이 아니고 상호 연관성을 가진 계획이라는데 특색이 있다.
낙동강 하구는 원래 네가닥의 하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하천 조사의 결과 이것을 한가닥으로 통합정리하려는 이른바 일천식(一川式) 개수방법을 채택했다.
이것은 하천유지의 효율화와 인근토지 이용적 측면에서 내린 결정이다. 그 내용은 구포 건너편인 대제면 지선에서 서낙동강을 가로막고 강물의 유입과 선박의 항행을 가능케 하는 수문과 갑문을 설치했다. 동시에 하류에다 배수문을 설치하고 구하천부지는 저수지로서 연안일대의 수리와 관개에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오른쪽 제방은  명지의 진동으로부터 하동의 목촌리에 이르는 24㎞와 명지를 둘러싸는 약 8㎞의 방조제를 축조했다. 왼쪽 제방은 사상의 엄궁리를 기점으로 하여 구포리까지 11㎞의 제방이 이루어졌다.
낙동강은 수위측정 시설을 설치한 이후에도 몇차례의 대홍수를 겪었는데 이 중 유사이래 낙동강 최대 홍수는 1936년이지만 1934년의 홍수 때는 진주가 유사이래 최대 피해를 입었다.
이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총독부에서는 낙동강 본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남강의 홍수량, 즉 유역면적의 66%에 해당하는 홍수량 전부를 진주의 상류 4㎞ 지점에서 사천만으로 분기방류하는 계획을 세운다. 진주 시가지의 안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낙동강 본류의 홍수위를 50-70m 저하시켜 하류의 일천식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서 였다.
당시 이 방수로 계획에는 3개 안이 있었으나 그 중 하나가 채택되어 1937년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방수로의 폭은 평균 40m, 깊이 4m이고 길이 20㎞로서 도중에 2.5m의 낙차를 이용하여 1만5천㎾의 발전까지 계획했던 것인데, 1945년 해방당시의 공정은 70%였다.
남강댐 공사와 방수로 공사는 1949년 우리정부에 의해 다시 착수됐으나 이듬해 6.25전쟁과 함께 중단됐다. 이후 1962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사업으로 다시 착수하여 1970년초 62억200만원의 투자로 완공을 보았다.
이 역사적인 사업은 일제에 의해 착공된 후 34년이란 시간이 걸렸으나 이것이 완공된 후 홍수조절 4천200만톤과 용수공급 760만톤, 연간 4천만㎾의 발전을 하고 있다.
낙동강 하구의 모래섬은 수심이 얕아 1m 미만이었다. 그래서 홍수 때는 이동의 염려도 있어 선박의 통행도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낙동강 하구에 운하를 개설하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에는 두 개의 안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낙동강과 부산항을 연결함으로써 항행시간의 단축으로 수송이득을 얻음과 동시에 항행의 위험을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낙동강에서 부산항에 도착하려면 40㎞를 돌아야 했다.
운하 예정선을 보면 감전의 동낙동강 본류에서 서면의 분수령을 거쳐 경부선 철도의 북쪽을 따라 부전동에 이르러 남하하여 부산항에 연결되도록 계획되어 있다. 계획당시 운하의 최대 통과 선박은 30톤이었다.
또 다른 운하계획안은 제1안인 낙동강-부산진간 운하계획의 대안으로 낙동강 하단리에서 감천을 거쳐 부산 남빈해안에 이르는 6㎞ 구간이다.
일본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이 계획들은 그후 기술검토를 거친 바 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운하의 장점이 감소되어 가는 추세에 있었기 때문에 착공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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