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임원의 해임 사유
조합 임원의 해임 사유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3.05.0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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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규
변호사/H&P 법률사무소
www.parkhong.com


정비사업조합의 조합장과 이사는 조합의 집행부를 구성하는 동시에 대의원회와 조합원총회에 상정할 각종 의안을 사전 심의함으로써 조합의 의사결정과정에까지 참여하게 된다. 의사결정과 집행이라는 조합의 양대 기능 모두에 관여하기에 그만큼 조합장과 이사에 대한 해임논의도 빈번하다. 


최근 수도권의 한 재개발구역에서 특정 이사가 조합장을 고소하고 조합원총회의 의결사항에 대하여 무효소송을 제기하는 등 조합의 업무집행을 집요하게 저해함으로써 조합에 부당한 손실을 끼친다는 사유로 조합원총회의 의결을 통하여 해당 이사를 해임한 사례가 있다.


해당 이사는 이에 불복하여 해임결의의 효력을 정지하여 달라는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하였다. 정관상 해임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조합정관 소정의 해임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조합원 총회의 해임의결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다”는 취지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법원의 결정에 대하여는 찬성과 반대의 양론이 모두 있을 수 있다. 조합임원에 대한 빈번한 해임시도를 차단함으로써 임원의 지위를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조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면 임원을 해임하기 위하여 반드시 그 정관상 해임사유가 엄격하게 증거를 통하여 밝혀져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할 것이다.


위 재판부 역시 이러한 입장에서 법리를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조합임원은 조합원들이 선임하여 준 것이고 만약 조합원들이 원하지 않을 때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그 직에서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정관상의 해임사유는 주의적이거나 예시적인 것에 불과하게 되어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순전히 직업적 관점에서 위 재판부의 결정을 음미해 보았을 때 재판관의 개인적 가치관 차원에서라면 모르되 재판전문가로서의 판단이라는 차원에서는 납득이 쉽지 않다.


거의 모든 조합이 별다른 수정없이 채택하고 있는 표준정관은 임원이 ‘직무유기 및 태만 또는 관계법령 및 정관에 위반하여 조합에 부당한 손실을 초래한 경우’ 해임이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관상 해임사유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조합임원과 조합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무엇이냐는 의문에서 출발하여야 정당한 답을 구할 수 있다.


우리 대법원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규정들이 재개발조합과 조합장 및 조합임원과의 관계를 특별히 공법상의 근무관계로 설정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재개발조합과 조합장 또는 조합임원 사이의 선임·해임 등을 둘러싼 법률관계는 사법상의 법률관계로서 그 조합장 또는 조합임원의 지위를 다투는 소송은 민사소송에 의하여야 할 것”이라는 취지로 판시하였다(대법원 2009.9.24. 2009마168 결정).


이때 대법원이 말하는 사법상의 법률관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는 서울고등법원이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조합(과 조합임원 사이)에는 민법의 법인에 관한 규정이 원칙적으로 준용되고, 민법상 법인과 그 기관인 이사와의 관계는 위임자와 수임자의 법률관계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10.11.11. 선고 2010나44639 판결).


조합과 조합임원 간의 법률관계가 본질적으로 위임관계에 해당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민법 제689조는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해지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다른 계약관계와 달리 유독 위임에 해지의 자유를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임관계란 본디 당사자 간의 ‘신뢰’를 기초로 하여서만 성립가능한 것이며 어떤 이유로든 신뢰가 파괴되었을 경우 더 이상 위임관계의 존속을 강제할 수 없다는 위임의 개념에 내재하는 근본적 전제 때문이다.

심지어 당사자 간에 일정기간 해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는 특약을 맺었을 때조차 신뢰 파괴를 이유로 한 해지권 행사 자체는 허용되며 다만 부당한 해지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여야 할 뿐이다(대법원 2000. 4. 25. 선고 98다47108 판결).


조합과 임원 간의 관계를 위임관계로 파악하게 된다면 정관상의 해임사유는 다만 예시적일 뿐 조합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언제든 임원을 해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조합장의 해임사유를 조합의 정관에서 제한하더라도 조합원들이 자치적인 판단에 따라 해임 여부를 표결로써 결정하면 충분하다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 정관에서 별도로 해임사유를 규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합원들의 자치적인 판단으로 해임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의 결정 등 신뢰관계가 파탄에 이른 이상 임원을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해임사유를 규정한 정관은 주의적 의미를 가질 뿐이며 정관에 열거한 해임사유가 아니라도 해임이 가능하다는 수원지방법원의 결정 등은 모두 조합과 임원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위임에 해당한다는 점에 천착함으로써 온당한 결론에 이른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 문의 : 02-584-2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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