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겨자먹기식 ‘착한분양가’ 허와 실
울며 겨자먹기식 ‘착한분양가’ 허와 실
  • 심민규 기자
  • 승인 2011.12.07 0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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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7 14:28 입력
  
재건축·재개발 분양가 인하… 조합 ‘울상’ 건설사 ‘방긋’
 
 
 
건설사들 ‘공사 불가’ 압력에 줄줄이 인하
대부분 도급제 현장… 조합원 부담만 증가
 

최근 ‘고분양가=미분양’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분양가격을 인하해 일반분양에 나서는 재건축·재개발구역들이 늘고 있다. 부동산시장이 침체됨에 따라 미분양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착한 분양가’를 통해서라도 분양률을 높이겠다는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분양가 인하 바람에 편승해 시공자가 조합에 분양가를 인하하도록 강압적으로 요구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분양가가 하락하는 만큼 조합원들은 분담금이 높아지게 되지만 도급제로 공사를 수주한 건설사의 경우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건설사 입장에서는 분양가 인하로 분양률이 높아지면 공사비 회수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일부 건설사들은 시공자 지위를 이용해 조합에 분양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분양가 낮춘 재건축·재개발 급증=서울 성동구의 A재개발구역. 이 구역은 일반분양가를 관리처분계획 수립 당시보다 3.3㎡당 약 50만원 인하하기로 시공자와 협의했다.
 

당초 조합에서는 ‘일반분양가 인하’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일반분양가를 인하할 경우 수입이 줄어들게 되고, 그 차액은 고스란히 조합원의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공자는 부동산시장 침체를 이유로 일반분양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이러한 이견으로 인해 조합과 시공자는 협의점을 찾지 못해 1년 이상 협상이 계속됐다. 하지만 최근 조합은 일반분양가를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분양가를 인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사를 중단하는 것은 물론 사업비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시공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이주비 금융비용 등으로 조합의 손해가 커졌기 때문이다.
 

분양가 인하폭을 50만원으로 선방한 A구역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최근 서울 동대문구의 B구역 역시 최근 분양가격을 낮춰 일반분양을 마쳤다. 이 구역은 당초 1천600원~1천700만원선에 일반분양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공자인 C사가 분양가를 1천500만원 이하로 인하해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조합과 대립각을 세웠다. 결국 B구역 조합 3.3㎡당 300만원을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이 길어질수록 조합원들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마포구의 D구역도 지난 8월 일반분양가를 인하해 분양을 끝마쳤으며, 은평구의 E·F·G구역도 최근 분양가를 인하했거나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자, 분양가 하락 안하면 ‘공사 불가’ 조합 압박=최근 분양가 인하 바람은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이 자발적으로 분양가를 낮췄다기보다는 건설사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낮췄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일반분양가가 높을수록 이익이 많이 발생하고 일반분양 가격이 낮아질수록 조합원의 부담금은 올라가는 구조다. 따라서 조합에서는 일반분양가격 인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설사들의 주장은 다르다.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건설사는 물론 조합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양가격을 인하해서라도 분양률을 높이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물론 최근 부동산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일정 부분 분양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점은 조합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시공사가 분양가 인하 압력을 넣고 있는 재건축·재개발구역들은 대부분 도급제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한 곳들이다. 즉 분양가 인하로 인한 피해는 전적으로 조합의 몫이라는 것이 문제다.
 
도급공사는 건설사가 공사를 진행하고 공사비를 받는 방식이다. 분양가가 낮아진다고 해도 시공자에게 손해가 될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공사비를 현금 대신 미분양 아파트를 현물로 받게 되기 때문에 시공자 입장에서는 고분양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공자가 분양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경우 현실적으로 조합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일반분양 가격은 ‘갑’과 ‘을’이 협의하여 결정하는 방법으로 공사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문구상으로는 조합과 시공자가 일반분양 가격에 대해 협의한다는 내용이지만 사실상 협상 주도권은 시공자가 쥐게 된다. 일반분양 가격에 대한 협의는 조합원들의 이주가 진행된 이후에 진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시공자 입장에서는 ‘공사 중지’ 또는 ‘착공 불가’를 무기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분양 가격을 놓고 공사가 늦어지는 경우 조합입장에서는 이주비 금융비용이나 공사비 상승에 따른 손해가 발생해 시공자의 분양가 인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분양가인하를 결정한 대부분 구역들은 시공자가 공사를 중지했거나 중지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사비 협상을 마친 한 재개발조합장은 “분양가 협상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주비 금융비용이 크게 늘어났다”며 “분양가 인하로 조합원들의 부담금 증가가 불가피하지만 금융비용과 사업비 등이 천문학적으로 늘어 시공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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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경쟁율 되레 하락… 분양시장 찬바람 여전
 

■ 분양가 인하 효과는
 

최근 업계에 분양가 인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서울·수도권의 분양시장은 여전히 침체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양가 인하가 반드시 분양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부동산 포털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27일까지 수도권에 공급된 아파트는 3.3㎡당 1천156만원으로 지난해보다 약 67만원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천794만원에서 1천520만원으로, 경기도는 1천149만원에서 1천43만원으로 각각 274만원과 106만원이 각각 떨어졌다. 다만 인천은 지난해 3.3㎡당 1132만원에서 1179만원으로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분양가가 하락했음에도 청약률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수도권에서 신규 분양한 아파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1.2:1로 지난해 2.4:1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분양가 인하 폭이 가장 컸던 서울이 작년 2.5:1에서 올해 2.9:1로 경쟁률이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인천은 작년 4.1:1에서 올해 1.0:1로, 경기도는 지난해 1.9:1에서 올해 0.9:1로 각각 하락했다.
 
실제로 최근 분양가를 300만원 이상 인하한 파격적인 가격으로 분양에 나선 동대문구의 B구역도 분양 성적이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이 구역에는 1~3순위 청약 접수 결과, 일반분양 466가구 모집(특별공급 제외)에 1천240명이 접수해 평균 2.66: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서울시의 청약경쟁률이 2.9:1인 점을 감안하면 분양가 가격 인하 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최근 분양시장 상황은 분양가는 하락한 반면 청약률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며 “분양가 인하가 청약률을 높이는데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분양가를 낮추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입지조건이나 시세에 맞춰 적정 분양가를 산정해 분양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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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들 잇속 챙기기? 조합들 “고통 분담해야”
 

■ 현장 반응은

최근 일반분양가 인하를 놓고 시공자와 갈등을 겪는 재건축·재개발조합들이 늘고 있다. 특히 조합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공자가 무리하게 분양가 인하를 압박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분양가 인하 압박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조합에게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강북의 한 재개발 조합장은 “분양가 인하로 인한 손해는 조합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은 공사비만 챙겨가겠다는 것 아니냐”며 “분양가가 낮아진 것도 문제지만 협상이 늦어지면서 발생한 이주비 금융비용만해도 수십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공자 수주 당시에는 조합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바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역의 재개발 관계자는 “이번 분양가 인하 협상으로 사실상 조합원들의 추가부담금은 1천만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며 “분양을 모두 마치긴 했지만 분양가 인하가 조합원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최근 부동산시장 침체로 손해가 불가피한 사정임을 감안해 건설사들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사업추진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만큼 시공자도 조합의 피해를 일정부분 감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현장에서 조합과 시공자의 관계를 보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모를 정도로 건설사의 권한이 강력하다”며 “특히 사업비용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사업이 건설사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부동산시장 침체로 대부분 구역들이 당초 관리처분계획 수립 당시보다 많은 손해가 예상되고 있다”이라며 “건설사가 사업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만큼 공사비 인하 등을 통해 고통분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구역에서는 최근 분양가 인하로 인한 손해의 일정금액을 건설사가 책임진 구역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북의 한 재개발구역에서는 일반분양 가격 하락으로 인한 피해액의 절반을 시공자의 공사비에서 제외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구역들은 건설사들의 잇속 챙기기로 조합이 고스란히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의 최태수 사무국장은 “최근 건설사들의 압력으로 분양가를 인하해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건설사들이 조합의 파트너임을 강조해 온 만큼 조합과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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