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민원처리비 시공과 관련있다”… 판결에 업계 대혼란
재개발 “민원처리비 시공과 관련있다”… 판결에 업계 대혼란
부산고법, 대연8구역 총회결의 가처분신청 기각
  • 문상연 기자
  • 승인 2022.09.06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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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법의 판단
포스코의 3천만원 공약
조합원에 지급한게 아닌
조합에 대여하는 사업비

전문가들의 시각
개정 도정법 시행 앞두고
정반대 판단 내린 법원
다시 수주전 혼탁 우려 

 

[하우징헤럴드=문상연 기자] 오는 12월 시공자의 금품 제공행위를 금지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법원이 이사비 등의 명목의 대여금인 ‘민원처리비’를 시공과 관련이 있는 제안으로 판단하면서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이에 개정되는 도시정비법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업계에서는 결국 건설사의 추가 대여금 제안이 성행하고 있는 이유가 과도한 대출규제가 원인인 만큼 대출규제부터 완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 고법 “민원처리비, 시공과 관련있는 제안”

부산 고등법원이 대연8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위법성 논란이 일었던  포스코건설의 민원처리비가 시공과 관련이 있는 제안으로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8일 부산고등법원 제5민사부(재판장 김민기)는 대연8구역 재개발사업의 시공자 선정 총회에 대한 총회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에서 원심을 취소하고,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한다고 결정했다.

해당 소송의 가장 쟁점이 된 부분은 민원처리비의 위법성 여부다. 수주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가구당 3천만원의 민원처리비를 지급하겠다는 포스코건설의 파격 공약에 대해 조합원들이 총회결의효력정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인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제3민사부는 민원처리비가 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법원은 민원처리비가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서 금지하고 있는 시공과 관련없는 사항에 대한 금전이나 재산 상 이익 제공에 해당하고, 민원처리비가 시공자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민원처리비라는 명목을 가지고 있지만 사업제안서, 전단지, 합동홍보설명회 내용 등에 비춰보면 민원처리사유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조합원 개인당 3천만원을 획일적인 금액을 확정적으로 지급하며, 조합원 개인에게 상환책임이 없다는 것으로, 이는 시공과 무관하게 일괄 지급되는 재산상 이익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며 “수주전 당시 홍보과장이 조합원이라면 분양권 여부와 무관하게 3천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홍보하는 등 시공과 관련없이 제공할 것을 제안한 재산상 이익(민원처리비)이 시공자선정 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고등법원은 정반대의 판단을 하면서 원심을 취소하고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특히 포스코건설의 민원처리비가 시공과 관련이 있는 제안으로 보고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고등법원은 “민원처리비 명목으로 3천만원을 지급하는 용도를 주택 유지·보수, 세입자 민원처리, 상가 영업 민원처리 등으로 특정하고 있는데, 이는 객관적으로 시공과 관련이 있는 항목에 해당한다”며 “시공자 무이자 대여, 조합사업비 무이자로 명시하고 있는 만큼 개별 조합원에게 귀속되는 이익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은 “조합원들은 민원처리비가‘무이자 대여’임을 인식하고 있었고, 조합을 통해 대여하는 형식으로 지급되는 것으로 개별 조합원에게 증여하는 형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임시총회에 참석한 조합원들 과반수 찬성으로 시공자선정 결의가 이뤄졌고, 시공자선정 결의가 무효라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려워 가처분신청은 기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개정안 시행 앞두고 정반대 판단 내린 법원… 개정안 무용지물될까 우려

이번 법원의 판단으로 인해 오는 12월부터 시행 예정인 개정된 도시정비법이 무용지물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사실상 민원처리비의 합법성을 인정하면서 도시정비법 개정안의 실효성이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지난 6월 공포된 개정안에 따르면 건설사가 시공자 선정과정에서 조합에 이사비·이주비·이주촉진비 등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에 대한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제안하는 일체 행위가 금지된다. 

개정안은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12월 11일부터 시행된다. 기존 국토부 고시인‘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해당 내용이 있었지만 국토부 고시만으로는 건설사가 조합원에 민원처리비나 이주비 등의 불법 논란이 있는 금전적 혜택을 제공해도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을 통해 막지 못한다는 지적에 이를 법제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법원의 판단으로 민원처리비 등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이사비나 이주비 등을 제안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여러 재개발현장의 시공자 선정과정에서 건설사들이 민원처리비, 사업촉진비, 사업활성화비, 주택유지보수비 등의 제안이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주비 대출을 위해 특수목적법인까지 설립하겠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해당 제안들에 대해 위법성 논란이 일면 건설사들은 “건설사는 사업비를 조합에 대여하고, 해당 사업비를 조합이 이주비 혹은 민원처리비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부산고등법원 역시 “대여금으로 명시하고 있는 만큼 개별 조합원에 귀속되는 이익으로 볼수 없다”고 판단한 만큼 대여금에 해당되는 이주비와 이사비 역시 금품제공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다만 12월 시행하는 개정안에서는 이사비, 이주비, 이주촉진비 등을 명시했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통한 우회적인 제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금전적 혜택을 개정안에서는 금지했지만 위법성이 없다는 판례가 나오면서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해졌다”며 “치열한 수주경쟁이 펼쳐지는 현장에서는 이사비나 이주비의 불법 논란을 피하기 위해 민원처리비 등 다양한 이름을 빌려 우회적으로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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