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원의 국토이야기>글로벌시대 국토관리 조건
<김의원의 국토이야기>글로벌시대 국토관리 조건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11.27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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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7 13:17 입력
  
김의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흔히들 21세기의 특징을 국제화, 정보화, 고령화 등으로 꼽는다. 서구라파나 다른 선진지역에서는 국경이란 것이 이미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돼 버렸고 위성통신의 발달로 정보화도 가히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국제화란 무엇인가=국제화라 할 때 우리가 잊어서 안될 것은 우리를 향하여 ‘한국인이란 뭐냐?’ ‘한국의 문화는 뭐냐?’ 하는 것을 정립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더욱 21세기 우리가 접촉해야 할 사람들은 전통의 유럽,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 인도, 이슬람 세계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긴 역사와 더불어 고대 인류문화 발상지이다. 국운이 없어 산업혁명에서 낙오된 이들 국가들은 그 인구가 30억명을 넘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민족들과의 접촉에서 우리가 독자적인 문화를 갖지 못한다면 그들과의 교류는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한 나라가 국제화하는 데는 자기 것에 대한 확인과 긍정이 있어야 한다. 또한 남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뜻에서 국제화란 것은 호혜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할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모근 분야에서 우물안의 개구리였다. 특히 일부 배타적 민족주의자들은 민족 안에서의 ‘나’는 보면서 ‘세계 속의 나’는 보지 못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도 그렇다. 우리나라 안에서의 ‘나’는 보고 있지만 세계 속의 ‘나’, ‘세계 속의 우리나라’를 보지 못한다.
 
외국인 투자를 노동자의 착취나 내국인 박대로 보는 시각 등이 그것이다.
 
우동이나 자장면을 팔아 먹고사는 몇 안되는 화교들에 대한 보호정책 하나 써주지 않고 미국으로 쫓아버린 우리가 재일교포 문제를 가지고 일본정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세계 최대 고아 수출국인 우리나라가 월남의 한국계 고아들은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글전용도 문화쇄국주의다=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를 통해 중국과의 관계로 언제나 대륙지향적인 국토정책을 써왔다.
 

그러나 대륙중심의 국토정책을 썼을 때는 국세가 크게 뻗어나지 못했다. 고려가 그러했고 조선조가 그랬다. 특히 조선시대는 500년간의 쇄국정책 때문에 결국은 남의 나라에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2차대전 후 38도선(휴전선)으로 대륙으로의 발전이 차단되자 부득이 해양지향적인 국토정책을 쓴 결과 우리는 단군이래 최대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요즈음 국제화를 한다니까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데 물론 그것도 좋다. 그러나 외국어에 앞서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한글 전용을 폐지하고 빨리 한자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것이 국제화를 위한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머지않아 중국은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이 된다는게 정설이다. 일본도 경제대국에다 기술대국의 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동양삼국이라 하는데 동양삼국이란 것은 같은 한자권이란 뜻과 젓가락을 쓰는 나라란 말인데 이 동양삼국 가운데 중국이나 일본은 계속 한자문화권을 한자경제권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우리만 한자를 안썼을 때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21세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자를 몰라 중국이나 일본의 서적을 봐도 읽을 수 없다면 기술섭취가 되겠느냐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한자를 몰라 14억 한자생활권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 뻔하다.
 
우리는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연간 수십만대의 자동차를 남의 나라에 팔고 있다. 그러면서 남의 나라 자동차의 수입은 이런 저런 트집과 행정적 장벽을 만들어 방해하고 있다. 외국은행에 예금한 사람을 비난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세계인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익혀야 한다.
한글을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국제사회와 담을 싼 국수주의 사고는 버려야 한다. ‘한국적인 것’, ‘우리의 것’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기본이다. 이 기본적인 틀 위에 국제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자기자세의 확립이 필요하다.
 
이것은 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가 국제사회에 진입할 자세를 만드느냐 못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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