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원의 국토이야기>기술삼류국, 실패 기록이 없다
<김의원의 국토이야기>기술삼류국, 실패 기록이 없다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10.28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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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8 16:42 입력
  
김의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1992년 8월 1일의 일이었다. 일본 건설성 도로국장과 토목학회 회장을 지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서울에 와 있는데 점심을 같이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선약을 취소하고 그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물었다.
“한강에 공사중인 신행주대교가 무너진 사실을 아느냐? 당신은 이 방면의 전문가인데 이런 사고의 기록을 아느냐?”
“내가 알기에는 지구가 생긴 이후 최대의 사고라고 생각한다”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아찔했다. 그런데 같은 해 10월 21일 아침 한강의 성수대교가 또 붕괴했다.
 
 
월남과 중동에서 배운 건설기술=‘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선진국이라 해서 전혀 실패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빈도가 적을 따름이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토목기술이 도입된 것은 1910년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서 비롯됐다. 그로부터 90여년이 지났지만 실질적으로는 해방후 60년 아니 1960년대부터의 40년 역사에 불과하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동안 우리 건설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다.
 
6·25후에는 전재복구사업의 일환으로 교량복구와, 자유당때의 저수지 건설공사기를 거쳐 5·16혁명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토개발사업에 힘입어 댐 건설과 고속도로 공사를 통해 시공을 경험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월남과 중동으로 진출해서 기술도 익혔고 돈도 벌었다.
하지만 우리는 해방이후 건설공사에서 수많은 실패를 해왔다.
 
80~90년대 교량에 관한 큰 것만 추려도 1983년 6월의 대구 금호대교, 89년 4월 서울의 올림픽대교, 91년 3월과 92년 5월의 팔당대교, 92년 7월의 경남 남해의 창선대교와 그 하루 뒤에 있은 서울의 신행주대교 붕괴사건 등이 있다. 교량은 토목시공의 대표적인 구조물인 동시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복리시설이다.
 
그런데 같은 성격의 수많은 실패가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실패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고가 나면 쉬쉬하면서 사고에 관한 기록들을 은폐하기에 바쁘다.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는 재발하지 않게 하려는 의지도 노력도 부족하다.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다는 것을 면밀히 규명해서 관계기관이나 업계에 널리 주지시킴과 동시에 대학에서는 산 교재로 후진들에게 가르쳐야 된다.
 
1971년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대연각 빌딩 화재사건때는 세계 각국에서 조사단이 몰려왔다. 신행주대교 붕괴때도 많은 나라에서 조사단이 왔다는 것을 깊이 음미해야 할 일이다.
 
 
건설사고 관련 기록 은폐 급급=일반적으로 토목이나 건축에는 몇가지 단계가 있다. 기본구상→조사→실시설계→시공→감리→시운전→조업→유지관리가 그것이다. 토목과 건축공사는 이러한 과정에서 어느 한 단계가 잘못돼도 부실공사가 된다.
 

모든 기계가 조그마한 부속 하나만 빠져도 기능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뜻에서 기술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기본구상과 감리 및 사후의 유지관리를 소홀히 해 왔다. 특히 기본구상(기본설계)은 아예 빼 먹는다. 가령 한강에 다리를 하나 놓는다 할 경우 기본설계에서 다리의 구조와 형식은 어떤 것으로 할 것이냐, 교량의 기능에 따라 4차선으로 할 것이냐 6차선으로 할 것이냐, 건설기간은 얼마로 잡을 것이냐 하는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건설업을 ‘노가다’로 업신여겨=기본구상 단계에서 실패한 대표적인 것이 지금은 철거돼 사라진 용산 삼각지로터리라 할 수 있다. 도대체가 이 고가 로터리는 무엇 때문에 가설했는지 알 수가 없다. 27년간 교통소통을 방해만 해 온 웃음거리 시설이었다.
 

1994년 이전에 건설된 한강의 다리는 17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3개를 뺀 나머지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 3개중 하나로 1937년에 일제가 가설한 한강대교는 아무 탈이 없다 한다.
 
우리나라의 연이은 대형사고의 원인은 건설업을 기술로 인식하지 못하고 ‘노가다’로 생각하는 국민들의 의식과 안일한 행정제도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건이 나면 만만한 몇사람 처벌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누구의 책임이라고 꼬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분야마다 제 구실을 못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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